26명의 직장인을 만나다

출근하지 않는 CEO

퇴준생 정소장

2022.04.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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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들만 회사에 남아있어요. 웃긴 건 팀장인데 팀원이 없어요. 다들 퇴사했거든요. 더 어이없는 건 이런 상황에도 대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요”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였다.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 재무상태를 설명하던 A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재무제표를 봤더라면 입사를 다시 한번 생각했을 거라며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대표가 출근하지 않는 것이었다. 

 

 “직원들과 소통하겠다며 대표실 만드는 걸 거절했거든요. 마케팅 부서 구석자리가 대표님 자리었어요. 그런데 위기상황이 닥치자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어요. 장기간 텅 비어있는 대표님 자리는 직원들 사기만 더 떨어트렸어요”

 

 대표실이 있었다면 원래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니 직원들의 불안감을 덜했을 것이다. ‘소통’을 외쳤지만 회사가 휘청거리자 자기 집으로 꽁무니를 감춰버렸다. 경영진들 중 누구 하나 나서서 사태를 설명하거나 진정시키지 않았다. A가 곰곰이 생각한 뒤 말했다.

 

 “경영진들은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였어요. 능력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꿰찼으니 회사가 이 사달이 났죠. 한때 대표는 회사에서 신화였어요. 지금은 말아먹고 있지만요.”

 

 갓 입사한 A가 OJT를 받을 때, 가장 눈길이 갔던 내용은 대표의 이야기였다. 일반 직원으로 입사해 고속 승진을 거쳐 지금의 대표 자리에 올라섰다. 능력과 열정 있는 사람이라면 이 회사에서 누구든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 회사는 이 스토리를 외부에 알려 브랜딩 했고 대표는 지상파 방송사와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다. A는 그 내용을 여러 번 읽으며 열정에 불을 붙였다.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죠. 아무나 했어도 분명 잘 됐을 거예요. 어쩌면 이거보다 훨씬 잘했겠죠.”

 

 A는 OJT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표가 일반 직원이었던 시절은 국내 비즈니스 의류 붐과 더불어 온라인 상거래가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중국에서 싸게 떼온 비즈니스 의류, 구두 등을 1군 업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저렴하다’, ‘싸다’는 문구가 아닌 ‘가성비’라는 네이밍을 사용했다. 그 시절 의류, 신발, 모자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모든 상품에 ‘가성비’ 카피가 붙었다. 회사도 흐름에 탑승했고, 운 좋게도 회사는 순식간에 돈을 끌어 모았다. 당시 직원이었던 지금의 대표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표’라는 직함을 달 수 있었다.

 

 “그 해부터였어요.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에서 ‘당기순이익’이란 단어가 사라진 날이요. 회사가 적자로 돌아섰죠. 올해로 6년째가 되겠군요. 대표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기존 사업 아이템이 시들해졌고 온라인 쇼핑 사업이 포화상태가 됐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거든요. 사업을 다각화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대표가 손대는 것마다 모조리 마이너스였어요. 이제 진짜 실력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죠.”

 

 하소연을 끝낸 A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깐 담배를 피우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회사와 대표를 좋아한 만큼 실망도 많은 듯했다.

 

 신규사업이 쓰러지며 적자가 계속되자 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밝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회사는 더 이상 비전이 없었다. 작년과 비교해 치킨 한 마리 더 사 먹을 수 있는 임금 상승률은 퇴사를 결심하기에 충분했다. ‘임금협상’이라고 했지만 협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어진 계약서에 서명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고액 연봉을 받는 팀장들은 불안감이 덜했다.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당시 파격적인 조건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동종 업계에서 꿀리지 않는 연봉이었다. 결국 팀원급만 줄줄이 퇴사했다. 종국에는 팀장이 실무를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A도 팀원급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차가운 커피를 들이켠 뒤 덧붙였다.

 

 “팀장들만 회사에 남았어요. 웃긴 건 팀장인데 소속 팀원이 없어요. 다들 퇴사했거든요. 더 어이없는 건 이런 상황에도 대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요.”

 

 답답함을 느낀 몇몇 팀장이 경영진에게 대표의 소식을 물었다. 그들은 대표가 위기를 타개할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해당 내용은 ‘대외비’라며 팀장들 입단속까지 신경 썼다.

 

 “대외비면 회사 사람들은 알아도 되는 일 아닌가요? 경영진은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한 것 같아요.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공유했다면 불안감은 더 커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대표가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나는 말을 마친 A에게 질문했다.

 

 

 “어느 날 상무가 대표의 지시사항이 하달됐다며 회의실로 직원들을 소집했어요. 그 사람은 유일하게 대표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었거든요. 소위 ‘문고리 권력’이라고 하죠.” 

 

 나는 적자를 탈출할 대표의 프로젝트가 궁금했다. A는 어이없는 웃음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회의실 스크린엔 대표가 보내준 압축파일이 있었어요. 알을 깨고 나온 파일이 뭔 줄 아세요? 다름 아닌 이미지 파일이었어요. 네이버, 구글, 카카오에 등록하는 광고 배너 말이에요. 사이즈 별로 있었죠. 프로젝트의 내용은 이거였어요. 기존 광고를 다 폐기하고 스크린에 떠있는 이미지로 광고한다는 거라고요. 말문이 막혔어요. 배너는 디자인 부서에서 만들었는데 그걸 한 달에 소형차 한 대 값을 받아가는 대표가 만들었더라고요. 그것도 광고 심의에 걸리는 내용이 보였어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고작 배너를 만들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혔죠.”

 

 큰 비전을 제시하고 앞으로의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기다렸던 직원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날 이후 A는 회사와 대표를 향한 믿음을 거두었다. 역시나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대표답게 배너 프로젝트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대표의 행방이 궁금했다. 혹시 대표가 집에서 자소서를 쓰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A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대표는 언제 출근했나요?”

 

 “모습을 드러낸 건 월급이 밀렸을 때에요. 그제야 나타났죠. 전보다 살도 많이 쪘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랐더군요. 프로젝트도 비전 제시도 아닌 ‘사과’를 하러 회사에 나왔어요. 너무 실망스러웠죠. 업계에서 대표의 별명이 뭔 줄 아세요? ‘타노스’에요. 직원의 절반을 날려버렸다고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직원이 절반 넘게 줄었잖아요. 며칠 뒤에 CEO 메시지가 올라왔어요. 자기 월급을 50% 자진 삭감하겠다고요. 그래도 엄청난 돈을 받아가요. 아마 신입 직원 네 달치 월급 정도 될걸요? ‘염치없다’는 표현은 이런 상황에 쓰는 것이 정확한 것 같네요.”

 

 얼마 뒤 A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다행히 그는 타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월급이 밀리거나 CEO가 집에 숨어있는 회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잘 된 일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행복한 소식을 알려준 A에게 축하인사를 전한 뒤, 타노스 대표의 회사 분기 재무상태를 살펴봤다. 올해도 어김없이 억 소리 나는 적자다. 무능한 대표는 회사뿐만 아니라 직원의 삶까지 망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대표도 알고 있을까? 출근하지 않는 CEO의 최후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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