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프로이직러 Mara입니다.
집 근처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는 걸 듣고 재택근무가 빨리 끝나는 날 방문해봤습니다. 가기 전에 네이버 리뷰를 찾아보니 인생 최고의 파나마 게이샤였다, 집 근처에 있으면 매일 가고 싶다 등 좋은 평이 많아서 커피에 대한 기대를 하고 갔어요.
공간 구성 & 동선
일단 공간이 엄청 쾌적하고 넓습니다.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시선 바로 앞에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공간이 위치해 있는데 여기서 카페 오너가 카페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만드는 공간이 메인으로 자리 잡고 그 왼쪽 편에는 드립백 제품, 원두, MD제품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가장 뒤쪽 공간에는 박사님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원두를 로스팅하고 계셨어요. 그렇다고 나머지 공간에 의자나 테이블을 놓지 않았습니다. 앉는 공간은 벽 쪽으로 등을 대고 앉으면 커피 바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도록 앉는 좌석을 배치했습니다. 굳이 일행과 앉아서 마주 보고 커피를 마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마시기에는 불편한 구조입니다. 가게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알 수 있는 공간배치였어요.
Pricing
커피를 주문할 때 직접 원두를 고르는 데 대부분 4,5천 원대의 평범한 가격대지만 9천 원과 12천 원 가격대의 원두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격이 높은 원두는 파나마 게이샤인데 카페의 공간 구성과 직원들, 브랜딩을 보니 왠지 좋은 원두를 마셔도 될 것 같아 제일 비싼 원두를 골랐어요.
그런데 커피를 주문하는 단계가 2단계입니다.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커피 추출 비용을 1~1.5천 원 받습니다. 저는 이런 과금체계를 책정해놓은 가게를 처음 봤어요. 일단 오너의 바리스타 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격만큼의 가치를 느끼게 할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구요. 카페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분해서 pricing 하는 건 익숙한 방식은 아닙니다. 다른 가게는 재화 단위를 커피 한잔으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추출 비용을 따로 명시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처럼 서비스에 대한 지불용이가 강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더욱 쉬운 커뮤니케이션은 아니죠. 카페의 타깃 유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가격정책이었어요.
고객 경험 1.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초개인화
주문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개별 포장된 원두를 하나 꺼내서 커피를 추출해주십니다. 그냥 단순한 포장이 아니고 브랜딩이 들어간 패키지에서 진공 포장된 원두를 꺼내서 만들어주는 거예요. 이름을 물어보고 계산이 끝난 후에는 역시 동일한 브랜딩이 적용된 종이 카드 홀더에 제 신용카드를 넣어주셨어요. 카페에 왔는데 호텔 컨시어지에 온 느낌. 서비스에 따로 가격까지 붙였으니 서비스 경험도 최대한 개인화하겠다는 일관성 & 개연성 있는 전개. 칭찬해.
고객 경험 2. right time, right place, right message
계산을 끝내고 원두랑 MD제품을 동선 따라 구경하고 있었는데 더워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더니 직원분이 오셔서 가게에서 파는 복숭아 홍차라고 시원한 음료를 주시더라고요. 엄청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이런게 타겟팅 광고아니면 무엇이 타겟팅일까 하는 느낌이었어요. 음료를 마시면서 기다리니 직원분이 커피를 자리로 가져다주셨어요. 컵에 붙어있는 라벨에 깨알같이 추출해준 바리스타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느껴지는 자부심&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서비스) 커피를 마셔보니 띠용.. 👀 이건 무슨 맛이지?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충격 충격 x 13
고객 경험 3. 인간 알잘딱깔센
잡지가 엄청 많아서 잡지를 또 엄청 좋아하는 저는 매거진 B를 집었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금방 닫았습니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점이 더 많았거든요. 여기까지 경험만으로도 저는 이 가게를 다시 오려고 했는데 그 다음 경험에서 이 가게의 FAN이 되었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오셔서 담요를 주셨어요. 와 이 가게 고객 경험 뭐야..? 담요는 왜케 이뻐..? 띠용 띠용..👀
제가 지금까지 한국 카페에서 경험해본 고객 경험 중에 가장 손에 꼽히는 매끄럽고 멋진 고객 경험이었어요. 마케터인 저에게는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모든 상점이 다 영감의 공간이지만 카페에서는 놀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하늘의 별만큼 카페가 많은 나라에서 이렇게 독창적인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를 만나면 마케터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어떤 시장이든, 경쟁 강도가 어떻든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이야’를 정의하고 그걸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 일인 것 같거든요.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일의 90%라는 걸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입니다.
얼른 날씨가 추워져서 따뜻한 라떼 마시러 가고 싶네요. 가로수길 왔다가 맛있는 커피+좋은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그레이 그리스밀 방문해보세요.
p.s 카페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 보니 브랜드 미션이 ‘한 사람을 위한 한 사람에 의한 한 잔의’이더군요. 브랜드 미션을 공간, 제품, 서비스의 모든 포인트에 이렇게 잘 녹인 조직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커피 한 잔 이상의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