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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에서 마케터로 시작, 25년 만에 마케팅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습관연구소

2020.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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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LG생활건강에 입사해서 마케팅 업무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책을 내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등 원고를 준비한지는 꽤 되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업무 관련 자료 목록

 

위에 정리된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년 꼼꼼히 자료를 모으고 기록했습니다. 업무 노트와 PC 파일들 하루도 놓치지 않고 업무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저만의 히스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99년부터 갖고 있던 노트와 다이어리들

 

이 노트와 다이어리 안에는 당시 내가 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뒤지게 된다면 사원부터 대리, 차장, 부장, 실장까지. 각 직급과 직책에서 했던 일과 필요한 마케팅 지식들을 망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정리해서 책을 만들면 새롭게 마케팅을 시작하는 분들, 승진을 했는데 그다음 나의 일을 뭘까 하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으로 책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제가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막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잘 정리해서 잘 전달해보자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제 업무 노트의 메모들입니다. 치열하게 산 흔적입니다. ㅋㅋ 

 

그렇게 책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초보 작가의 과욕일까요? 자료를 정리하고 다듬다 보니 사원부터 임원까지 모두를 위한 책이 되고 있었습니다. 원고를 처음 본 출판사 사장님도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쓰는 거 완벽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쓰려고 했던 책의 목차. 과한 욕심이 드러납니다. 

 

위의 사진 보면 아시겠지만 이것저것 정말 필요한 내용을 다 담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학부에서 4년 동안은 배워야 할 지식은 물론이고, 실무 경험들까지 여기에 담고자 했으니 말 다 했죠. 출판사 사장님은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렇게 출판을 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고집을 세웠습니다. 

 

"나는 입문서는 쓰기 싫다. 마케팅 담당자에게 정말 필요한 지식을 진심을 다해 쓰고 싶다. 마케팅 지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뭐, 현실적으로는 보게 되면 이 정도의 내용이면 마케팅 원론 정도의 책을 써도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저는 한 권이 안 되면 세 권으로 진행해보자고 밀어붙였습니다. 

 

한 3개월 정도 밤을 새워가며 썼을까요? 얼추 전체 내용은 만들어진 것 같아서 출판사에 원고를 전달했습니다. A4용지로 3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더니 처음에는 내용을 좀 빼라고 하더니 대화체로 만들어 보라고도 했고, 이렇게 저렇게 쉽게도 하고 내용도 빼고 하더니 제 책은 무슨 마케팅 로맨스 책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입사원이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같이 근무하는 여직원과의 로맨스를 엮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죠. ㅎ (아래 그림은 그때 만든 캐릭터입니다. ㅋ)

 

(왼) 마케팅 부서 과장 (오른) 신입사원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원래 의도했던 마케팅 내용은 절반도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책의 내용이 너덜너덜 해질 무렵 출판사에서는 전자책으로 먼저 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맥도 빠지고 내가 이러려고 글을 썼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안 하겠다고,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책을 내기로 한 생각은 접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내용들을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브런치를 통해서 이번에 책을 내게 된 '좋은습관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되고, 시장 조사와 관련된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따라 결국엔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전부 잘못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원고를 써보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을까요? 물론 처음 책을 내려고 했을 때보다는 좁은 주제의 책을 쓰기는 했지만 출판을 접었을 때 경험했던 여러 출판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들이 바탕이 되었기에 오히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 사장님들 마음도 알게 되었고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방식들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저도 책을 쓰고 책을 내는 데 있어서는 나름 성장했나 봅니다. 독자분들께 모든 걸 드리려고 무진장 애쓰는 것보다 하나씩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준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자,라고 마음먹었으니까요. 

  

출판사 사장님들이 통상 말씀하시는 것들 중에 다들 비슷하게 말씀하시는 게 있습니다. 독자가 중학생 수준의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달라,라는 주문입니다. 이 말은 독자의 수준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책을 쓰겠다고 나선 작가라는 사람들의 젠체함, 자신이 모르면 더 공부해서라도 다 알려주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독자들 입장에서는 과잉 지식이 된다는 사실을 빗대어 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저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알려준다면 중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 수준으로 피아노 악보를 보는 것부터 공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무역 실무책이 있었습니다. 저자의 서문이 눈에 걸려서 슬쩍 읽어보니 정말 저와 비슷한 생각이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내가 처음 책을 기획할 때에는 나름 전문가의 20년 노하우를 전달하겠다는 큰 꿈을 갖고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독자의 눈높이를 생각하고 책이 너무 두꺼우면 읽다가 지치게 된다는 출판사의 이야기에 따라 내용을 바꾸고 줄이고 하다 보니 내가 기획한 내용을 다 담기에 어려웠다. 이번이 끝이 아니라 생각하고 다음 번 책에 좀 더 알찬 내용을 넣도록 하겠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분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책을 내는 입장에서 뭔가 아쉬운 듯 집필했지만 막상 현실은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저 역시도 이번 책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자부심이 있다면 제가 출판사 사장님을 설득해서 시장 조사의 기본이 되는 최소한의 분석 기법에 대해서는 넣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시장 리서치를 해야 하는 분들이나 통계학이나 소비자 조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기준이나 수준에는 전혀 못 미치겠지만 실무에서 마케팅을 해야 하는 분들이거나 이제 막 시장 조사를 배우기 시작한 분들, 시장 조사가 뭔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이번 책이 소비자를 이해하는데 첫걸음이 되기에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진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내용을 넣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바입니다. 

 

지금 책도 시장 조사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낯선 용어로 인해 일단 쉽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25년 마케터의 양심으로 그리고 선배 마케터로서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를 담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조차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제가 좀 더 친절하게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잘 풀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잘 안 팔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 보는 출판사 사장님이 졸도하실 지도... ㅜㅜ)

 

심지어는 이런 내용을 넣는 순간 사람들이 페이지를 건너 뛰고 안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책을 쓰는 입장에서 이것만은 그래도 넣어야 한다고 우겨서 넣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출판사 사장님을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에, 제가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 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렇게 후기랍시고 글도 적어봅니다.

 

 

  ▲  도서 보러가기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시장조사가 필요한데, 시장 조사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다가 맡겨서 하기에는 돈도 없고 그런 스타트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1인 기업가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제가 쓴 책이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소비자의 욕구와 마음을 읽어내고자 애쓰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이번에 책이 나오고 생각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작은 부분을 떼어서 어떻게 시급하게 필요한 분들을 도울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게 책을 쓰는 필자로서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 도움 없이도 신제품 기획을 해야 하고, 브랜드 론칭을 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제 노트에 적혀있는 당시의 고민들을 잘 버무리고 잘 담아 넣었습니다.(맨 위네 제 노트 보이시죠? ㅎㅎ)  

이것으로 제 후기를 마칩니다. ^^

 

 


제 이름은 김윤태입니다. 

소비자 마케팅 전문가. LG생활건강, CJ CGV, 삼성물산, 정관장에서 마케팅 담당자, 브랜드 매니저 그리고 CMO로 25년간 활동했습니다. 소비재 관련 서비스 전략과 브랜딩에 관한 수백 번의 시장 조사를 직접 진행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최근까지 겸임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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