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만든 사람을 궁금해할까?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사람들은 왜 결과물이 아니라 만든 사람을 궁금해할까. 안원잘부와 나영석 사단이 보여준 제작자 캐릭터화 현상에서, AI 시대 브랜드가 가져갈 오리지널리티의 조건을 짚어본다.
리센느의 성공신화를 만든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의 인기가 여전히 대단하다. 안원잘부 채널은 26년 9월 현재 콘텐츠 4개가 천만 뷰를 기록하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시리즈가 되고 있다.
안원잘부 콘텐츠를 보다 보면 리센느 멤버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피디니무'라고 불리는 솔파스튜디오의 윤성원 PD다. 화면 안에 대놓고 출연하진 않지만 출연자들과 소통하고 콘텐츠를 이끌어가기 위해 윤성원 피디는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안원잘부의 인기가 높아지며 채널의 설계자 윤성원 피디에게도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튜브에 윤성원 PD의 웃음 리액션만 편집한 콘텐츠가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은 윤성원 PD를 단순히 화면 밖 연출자가 아니라 콘텐츠 캐릭터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안원잘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유튜브 중심의 웹 예능 콘텐츠에서 자주 관찰된다. 레거시 미디어의 대표주자였던 나영석 PD도 그중 한 명이다. 최근 나영석 사단의 콘텐츠를 살펴보면 연출자나 스태프를 캐릭터로 자주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오락실'시리즈의 예슬 PD나 현용 PD, 그리고 채널 십오야에 출연하는 많은 스태프들은 이미 채널 내에서 본인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콘텐츠만 소비하지 않는다. 콘텐츠가 좋다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진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캐치한 기획자들은 스태프를 캐릭터화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는 이런 현상이 AI가 발달하면서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드는 비용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누가 만들어도 비슷한, 저점이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는 훨씬 많아지고, 어느 정도 잘 만든 결과물만으로는 특별해지기 어려워진다. 결국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 냄새가 나는 지점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제작 과정의 서사다.
완성된 콘텐츠 뒤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누구를 섭외했는지, 어떤 장면을 살렸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같은 판단들이다. 콘텐츠가 크게 성공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판단을 한 사람까지 궁금해한다. 윤성원 PD가 여러 인터뷰와 콘텐츠에 등장하고, 성공한 기획자들이 강연이나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과물에 대한 관심이 만든 사람과 그 사람의 판단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예전에 KBL 관련 채널을 운영을 시작할 때 콘텐츠의 방향을 경기장 뒤편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로 채널 방향성을 정했다. 경기 결과나 선수의 공식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콘텐츠는 이미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팬들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그 너머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선수와 현장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 콘텐츠가 100만 조회를 넘겼던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미 잘 정리된 결과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브랜드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장에서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서사가 필요하다. 다만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브랜드에는 이미 이야기가 있는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브랜드를 처음 만들었던 순간, 작은 사무실을 열었던 순간, 첫 제품이 실패했던 순간, 고객의 반응 때문에 무언가를 바꿨던 순간. 하나씩 보면 사소하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쌓이면 다른 브랜드가 그대로 가져갈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대행사에서 여러 브랜드의 캠페인을 만들다 보면 이 지점을 자주 느낀다. 브랜드 내부에서는 너무 익숙해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제품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 왜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는지 같은 이야기다. 정작 외부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제품의 장점을 한 줄 더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울 때가 있다.
내부에서 평범한 일이 소비자에게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안원잘부 제작진에게 평범한 촬영 현장이 시청자에게는 궁금한 콘텐츠가 되는 것처럼, 브랜드가 제품을 만들고 결정하는 과정도 소비자에게는 처음 보는 세계일 수 있다.
회사 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마케터에게는 늘 하던 제안서이고, 개발자에게는 수없이 반복한 샘플이며, MD에게는 여러 제품 중 하나다. 매일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기록하거나 보여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는 거창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브랜드가 똑같은 제품을 만들고 비슷한 광고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제품을 만들기까지 거쳐온 과정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했던 판단까지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브랜드는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 제품을 만든 개발자, 상품을 고른 MD, 캠페인을 만든 마케터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물론 담당자를 억지로 인플루언서로 만들거나 회사의 열정을 자랑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이 가진 판단이다.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 왜 다른 선택지는 포기했는지, 무엇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는지. 이런 이야기는 잘 정리된 제품 소개만으로는 알 수 없다. AI가 더 많은 콘텐츠와 제품을 만들어낼수록 이런 차이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어느 정도 괜찮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점점 쉬워지겠지만, 그것을 만들기까지 쌓인 경험과 판단까지 같아질 수는 없다.
사람들이 만든 사람을 궁금해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지 않을까.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만든 사람의 생각까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에는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아직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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