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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엔터테인먼트

🌞🩴그림에서 여름 냄새가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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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6인의 화가가 그린 명화 6점에 담긴 정원과 피서지 등의 장면을 따라가며 저마다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름의 빛과 색을 감상한다.

여름은 ‘느낌’으로 남는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과일의 달콤한 향기, 식탁 위로 드리운 햇살, 바닷가를 걷던 발걸음처럼 계절은 지나도 그때의 온기와 색채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화가들도 계절에 깃든 감정과 빛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둔 ‘그해 여름’과 다시 만난다.

 

 

식탁에 차려진 계절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다. 그의 그림에서 햇살은 한층 눈부시고, 바다는 더 푸르게 반짝이며, 평범한 식탁은 축제처럼 변한다.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뒤피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와 항구, 활기 넘치는 시장 풍경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다. 인상주의의 빛을 익히고 야수파의 대담한 색채를 받아들인 뒤에는 더욱 자유롭고 장식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그는 형태를 정교하게 재현하기보다 색채와 선이 일으키는 리듬으로 삶의 생동감을 표현했다.

 

‘생선과 과일이 있는 정물’은 그런 뒤피의 감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차갑고 미끄러운 생선의 은빛, 햇살을 머금은 과일의 둥근 색감, 식탁보와 접시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질서가 한 화면에서 어우러진다. 이 장면은 평범한 식사 풍경을 넘어 여름 한낮의 감각을 한데 모아놓은 듯하다. 그림에는 창밖에서 밀려드는 바닷바람, 곧 누군가 자리에 앉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잔잔히 흐른다. 뒤피에게 식탁은 계절의 빛이 내려앉은 무대이자, 삶의 즐거움이 잠시 머무는 자리였다. 생선과 과일은 여름의 풍요를 상징하고, 화면을 채운 색채는 계절의 온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뒤피의 식탁에서 여름은 맛과 색, 빛과 바람이 함께 차려진 한 끼의 축제가 된다.

 

 

라울 뒤피, ‘생선과 과일이 있는 정물’  

 

 

야코프 판휠스동크Jacob van Hulsdonck, 1582~1647는 17세기 플랑드르 정물화의 황금기를 이끈 화가다. 당시 플랑드르는 유럽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고,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과일과 도자기, 은식기는 부와 교양의 상징이 되었다. 판휠스동크는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섬세한 붓끝으로 기록했다. 그는 특히 레몬과 포도, 복숭아처럼 계절의 결이 살아 있는 과일을 즐겨 그렸는데, 미세한 질감과 빛의 반사, 색채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레몬, 오렌지와 석류가 있는 정물’은 판휠스동크의 뛰어난 관찰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레몬과 오렌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석류는 풍성한 계절감을 전한다. 17세기 사람들에게 감귤류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수입품이었다. 세 과일이 한자리에 차려진 식탁은 그 자체로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판휠스동크는 화려한 부를 과시하기보다 계절이 선물한 결실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시간이 흐르면 과일은 시들고 껍질은 마를 테지만, 이 그림에서 여름은 가장 싱싱한 순간에 영원히 머문다. 판휠스동크의 식탁에서 여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자, 자연이 건네는 가장 달콤한 선물이다.

 

 

야코프 판휠스동크, ‘레몬, 오렌지와 석류가 있는 정물’

 

 

 

햇살 아래 파라다이스

 

핀란드의 ‘국민 화가’ 에로 얘르네펠트Eero Järnefelt, 1863~1937. 그는 조국의 숲과 호수, 들판을 화폭에 담으며 핀란드의 자연이 지닌 고요한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그림에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자연을 향한 애정과 경외가 녹아 있다.

 

그중 ‘초원의 사이미’에서 자연은 사람을 압도하는 대상이 아니라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는 파라다이스로 나타난다. 초록빛 초원에 누운 사이미는 현실에 아무런 욕심도, 갈등도 없어 보인다. 다만 햇살은 들꽃과 풀잎 위를 부드럽게 스치고, 여름바람이 초원의 결을 따라 천천히 흐를 뿐이다. 사람은 풍경의 중심에 있지만 자연과 구분되지 않는다. 마치 풀과 나무, 하늘이 사이미를 조용히 품어주는 듯하다. 얘르네펠트는 극적인 서사를 만들기보다 평범한 하루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은 화면 밖에 남겨두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은 여유…. 얘르네펠트는 말한다. 우리에게 휴식이란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같은 속도, 같은 자세로 하루를 느껴보는 일이라고.

 

 

에로 얘르네펠트, ‘초원의 사이미’

 

 

앙리 르바스크Henri Lebasque, 1865~1937는 인상주의의 빛과 야수파의 색채를 자신만의 온화한 화풍으로 풀어내며,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행복을 즐겨 그렸다. 가족과 친구, 정원과 해변, 햇살이 스며드는 실내와 테라스는 그의 화폭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다. 프랑스 남부의 생트막심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지중해 특유의 따뜻한 햇살과 맑은 공기가 그림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생트막심의 테라스에서 즐기는 오후의 차’는 르바스크가 사랑한 일상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테라스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는 차와 과일이 준비되어 있고, 인물들은 햇살 아래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부드러운 여름의 빛이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테이블과 의자, 인물 위에 고르게 내려앉고, 따뜻한 색채는 공간 전체를 포근하게 감싼다. 르바스크는 일상에 스며 있는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겼다.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 또한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치 계절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바쁜 업무는 잠시 내려놓고 햇살과 바람,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 그가 그려낸 여름은 이렇듯 느긋한 속도로 천천히 흘러간다.



앙리 르바스크, ‘생트막심의 테라스에서 즐기는 오후의 차’

 

 

 

기억 속의 피서지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 1859~1935은 미국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미국의 도시와 해안, 정원을 밝고 선명한 색채로 그려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하삼은 특히 여름 풍경을 사랑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 꽃이 만개한 정원은 그의 화폭에서 특별한 계절로 되살아난다. 하삼은 특정한 장소에 머물던 공기와 빛,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까지 화폭에 담아냈다.

 

‘셀리아 색스터의 정원’에는 미국 메인주 숄스제도의 애플도어섬에서 바라본 여름을 담았다. 셀리아 색스터는 시인이자 정원사로, 자신의 집 정원을 아름답게 가꿔 많은 예술가를 초대했다. 하삼 역시 이곳의 손님으로 머물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과 바다를 수없이 그렸다. 화면을 가득 메운 꽃들은 자유롭게 피어나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아련히 펼쳐진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따사로운 햇살이 만들어내는 색의 변화, 정원을 천천히 거닐 때의 느긋한 호흡까지. 하삼은 눈앞의 풍경을 넘어 그 풍경이 남긴 기억을 소환했다. 그의 정원은 실제 장소이면서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환상의 공간으로 오래 살아 있다.

 

 

차일드 하삼, ‘셀리아 색스터의 정원’

 

 

에설 캐릭 폭스Ethel Carrick-Fox, 1872~1952는 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호주를 오가며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다. 당대 여성 화가로서는 드물게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거리와 시장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즐겨 그렸다. 그의 화폭에는 햇살 아래 모여든 사람들의 웃음과 활기, 계절이 품은 생동감이 가득하다. 밝은 색채와 경쾌한 붓질은 평범한 일상을 축제처럼 바꾸고,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마저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맨리 비치, 여름이 왔다’는 호주 시드니의 맨리 비치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해변은 바다를 찾은 피서객으로 붐비고, 양산과 모자, 밝은 옷차림은 여름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푸른 바다와 하늘, 햇살을 머금은 모래사장은 선명한 색채와 함께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지만, 모두 같은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가 된다. 폭스는 여름의 기억이 특정 장소보다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분위기에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기억하는 피서지는 아름다운 바다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걸었던 사람,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 뜨거운 햇살 아래 흘렸던 땀과 웃음까지 모두 품고 있다. 그 소중한 순간을 붙잡아 둔 그림 덕분에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나만의 여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에설 캐릭 폭스, ‘맨리 비치, 여름이 왔다’

 

 

글. 이현(<아트인컬처> 편집장)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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