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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표 없이 바캉스 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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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휴가를 떠나지 못해도 괜찮다. 음악 한 곡이면 일상에서도 바캉스가 시작된다.

드뷔시는 바다를 사랑했고, 우리는 여름마다 바다를 꿈꾼다. 

하지만 바캉스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일에 있다. 

휴가지에서도, 집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클래식한 여름 음악이 있다면 일상은 잠시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가 된다.

 

 

 

 

“무제한 칵테일이 제공되는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비치 보이스의 ‘코코모Kokomo’ 같은 여름 노래가 자동 재생된다.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게으름이 허락되고, 머릿속을 잠시 비워도 되는 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는 계절, 일의 속도는 자연스레 더뎌지고 몸은 휴식을 요구한다. 휴가란 일상을 과감히 비워내고, 잘 쉬고 잘 놀다 돌아오는 일이다. ‘바캉스Vacances’라는 말이 비어 있음을 떠올리게 하듯 여름의 쉼은 도시와 일정,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잠시 비워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프랑스의 여름을 떠올리면 클로드 드뷔시의 한 장면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드뷔시는 노르망디의 휴양지 울가트Houlgate에서 가족과 여름을 보냈고, 부인 에마와 딸 슈슈가 해변에서 노는 동안 양산을 파라솔처럼 들고 앉아 있던 사진도 남아 있다. 일상의 가장 평범한 아버지 모습이지만, 그의 음악을 생각하면 그 장면은 더욱 사랑스럽다. 드뷔시는 바다를 유난히 사랑했다. 노르망디 해변의 호텔에서 마무리한 교향적 스케치 ‘바다’처럼 그의 음악에는 물과 빛, 흔들리는 감각이 자주 스민다. 휴가지든 휴가를 떠나지 못한 집이든 괜찮다. 한 곡의 음악이 파도와 바람, 느긋한 오후를 불러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클래식한 바캉스다.

 

 

 

비행기 없이 도착하는 여름 섬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이 있을까? 마치 공포 영화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피서지에서 마주친 사랑의 이야기다. 1959년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은 한때 사랑했던 남녀가 각자의 가정을 이룬 뒤 자녀들과 함께 찾은 섬에서 우연히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요트와 경비행기, 별장과 해변이 이어지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휴양지의 판타지’를 선명하게 품고 있다.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은 한여름 피서지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들뜬 공기를 클래식한 장면으로 남겼다.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영화가 가장 또렷하게 남긴 유산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영화 주제곡은 시작부터 휴양지의 공기를 불러온다. 목관악기가 부드럽게 리듬을 열고, 하프의 영롱한 울림 위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면 어느새 대서양의 한적한 섬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든다. 바쁠 것 하나 없는 휴양지의 여유로운 공기, 햇빛 아래 느슨하게 풀리는 마음, 모래사장 끝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가 음악 속에서 천천히 열린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장면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어쩌면 이 곡은 휴가지에 도착한 사람보다 휴가를 미뤄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상상 속 바캉스일지 모른다.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지는 동안 반복되는 리듬은 이국적 분위기를 더하고, 기분을 한층 가볍게 끌어올린다. 영화가 흥행한 뒤 가사를 붙인 노래 버전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감미로운 목소리 없이 바이올린 선율만으로도 충분하다. 브로드웨이와 영화음악에 평생을 바친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막스 슈타이너Max Steiner의 이 명곡은 여름의 색을 음악으로 번역한 듯하다. 하늘색과 바다색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곡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이다.

 

 

 

 

 

안단테가 데려오는 오후의 바람

 

1990년대 한국 대중가요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을 노래 속에 불러들였고, 덕분에 많은 이가 이 곡의 번호를 자연스레 기억하게 됐다. 가사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귓가에 떠올리는 악장은 대개 2악장 안단테다. ‘걷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안다레Andare에서 유래한 안단테Andante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걷는 듯한 빠르기를 뜻한다.

 

낮은 음역의 현악기가 일정한 박동을 만들고,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파-도-라-파-도’로 부드럽게 상승한다. 저녁 무렵 무더위를 식히는 산들바람처럼 선율은 실내 온도를 한 톤 낮춘다. 이어 목관악기가 화성을 넓히고, 피아노가 바장조의 청량한 주제를 오른손으로 받아 든다. 왼손은 앞서 들리던 리듬을 조용히 붙잡는다. 실내 온도를 낮춰주는 음악이라니, 이런 마법이 또 있을까!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으로 기억되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 초록빛 풀밭 장면은 사랑과 여름, 그리고 비극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Janus Films, Criterion Collection

 

 

모차르트 특유의 사랑스러운 1주제는 살짝 게을러져도 괜찮을 듯한 여백을 만든다. 이 곡은 ‘칵테일 사랑’ 이전에도 1967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쓰이며 널리 알려졌다. 영화는 서커스단 곡예사 엘비라 마디간과 장교의 비극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영화 장면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고, 영화는 이 명곡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혔다. 그래서 지금도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에는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앞서 들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의 주제곡과 모차르트의 이 협주곡이 유난히 겹쳐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곡 모두 느슨한 여름 공기와 시간의 여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떠나지 못했더라도 음악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걷는 속도의 안단테가 우리를 가장 멀리 데려가는 순간이다.

 

 

 

 

 

라틴리듬 위에 앉은 쇼팽의 고독

 

휴가의 묘미는 출근 시간표에서 벗어나 한시적 자유인이 되는 데 있다. 칵테일을 천천히 홀짝이며 물 위에 몸을 맡기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 휴양지에서는 보사노바, 라틴 팝, 레게처럼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마라카스가 모래알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흔들릴 때면, 마음은 이미 카리브해 어딘가에 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핑크 마티니Pink Martini는 바캉스와 잘 어울리는 밴드다. 클래식, 재즈, 라틴 팝, 영화음악의 감각을 우아하게 섞어내는 이들의 음악은 이름부터 한 잔의 칵테일 같다. 1997년 앨범 <생파티크Sympathique>에 수록된 ‘라 솔레다드La Soledad’는 라틴음악과 클래식을 세련되게 엮은 곡으로, 여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기 좋다.

 

 

핑크 마티니의 <생파티크>는 라틴, 재즈, 클래식, 프렌치 팝의 감각을 뒤섞어 낯선 도시의 휴가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 ©Heinz Records

 

 

이 곡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Op. 22’ 중 도입부인 안단테 스피아나토의 정서를 빌려온다. 스피아나토Spianato는 고르고 매끈하게 펼쳐진 상태를 뜻한다. 피아노가 쇼팽 특유의 아르페지오 반주를 잔잔히 깔고, 오른손이 서정적 선율을 이어가면 공기는 금세 느슨해진다. 그 위로 바이올린이 멜랑콜리한 선율을 얹고, 노래는 향수와 고독의 정서를 따라 천천히 깊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라틴 팝의 고독이 쇼팽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점이다. 고국 폴란드를 향한 애수와 향수가 쇼팽의 음악을 오래 물들였듯 ‘라 솔레다드’ 역시 멀리 있는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 곡은 휴양지의 들뜬 분위기를 한 겹 가라앉히면서도 품격을 더한다.

 

바캉스가 꼭 소란스럽고 반짝이는 기분으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다. 때로는 음악 한 곡이 남기는 고독과 여백이야말로 여름을 가장 깊이 쉬게 한다. 뜨거운 햇볕이 물러난 자리,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내려앉는 선율은 떠들썩한 휴양지보다 오래 남는 쉼이 된다. 어쩌면 진짜 휴가는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춘 마음속에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 안인모(피아니스트, 클래식 연구가)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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