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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낡은 서랍장을 월급 주고 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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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시대, 빈티지 가구는 오래 남은 물성과 서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고 있다. 시간을 들여 고른 가구는 취향과 기억이 쌓인 공간을 만들며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빈티지 가구를 곁에 두고 살아온 지 20년이 흘렀다. 싱글이던 20대 후반, 월급을 모아 들여온 덴마크 서랍장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계가 내 삶 안으로 스며들었다. 유럽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온 가구들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이 아니었다. 단정한 형태와 비례,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밀도는 요즘 가구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것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각이 분명히 존재했다. 20세기 초중반,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탄생한 디자인에는 실험과 탐색의 시간이 함께 배어 있었다. 기능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그 태도를 이해하게 되면서 가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졌다. 결혼이라는 삶의 변화와 함께 가구는 더 이상 취향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쌓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1960년대 구니 오만의 사이드보드, 포울 헤닝센의 펜던트 조명, 아르네 야콥센의 세븐 체어가 놓여 있던 작은 아파트. 그곳의 공기와 빛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 빈티지를 선택하는 이유

 

최근 들어 빈티지 가구를 찾는 이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시대에 오래된 물건을 향한 이 역설적 욕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몇 초 안에 소비되는 콘텐츠와 즉각적으로 갱신되는 트렌드, 그리고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비물질성은 오히려 손에 잡히는 것, 실재하는 감각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카메라의 셔터감, 묵직한 LP의 무게, 빈티지 가구처럼 기다림과 축적의 시간을 전제로 만든 물건들과 마주하는 경험은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손에 쥐었을 때 전해지는 물성, 사용의 흔적이 만들어낸 질감은 쓰임이나 기능을 넘어 먼저 감각에 닿는다. 여기에 물건에 깃든 서사에 대한 감각도 더해진다.

 

새로 만든 제품이 기능과 상태의 완전함을 보여준다면, 빈티지는 그 위에 시간의 흔적과 맥락을 함께 품고 있다. 어떤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층위가 물건에 스며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유를 넘어 선택하는 사람의 취향과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도 작용한다. 결국 빈티지를 향한 관심은 과거를 향한 향수라기보다 현재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선택에 가깝다. 빠르고 가벼워진 세계 속에서 시간을 통과하며 남아 있는 것들이 오히려 더 확고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포울 헤닝센의 ‘PH 펜던트 조명’. 빛의 방향과 확산을 설계한 대표적 북유럽 디자인이다. ©SMOW

 

 

 

시간이 남긴 것들의 가치

 

그렇다면 누군가가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빈티지와 중고품은 무엇이 다를까? 일반적으로 중고품은 새것보다 저렴하게 거래된다. 사용 흔적은 감가의 이유가 되고, 시간은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빈티지는 중고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다. 어떤 제품은 빈티지이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저렴하게 책정되기도 한다. 생산된 지 30년 이상 지난 물건을 의미한다는 통상적 정의가 있지만, 시간만으로 그 가치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 중심에는 희소성이 있다. 특히 퍼스트 에디션이나 초기 생산품은 디자이너의 의도와 제작 방식이 가장 온전하게 반영된 시점의 결과물로, 이후의 변형이 개입되기 이전 상태로 주목받는다. 여기에 생산이 종료되었는지, 제작 방식이 달라졌는지, 특정 시기에 한정되었는지 같은 조건들이 더해지며 가치가 형성된다. 결국 빈티지의 가치는 희소성, 상태, 디자인, 그리고 시대적 맥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예를 들어 아르네 야콥센이 1955년 디자인한 세븐 체어는 초기에는 로즈우드를 포함한 다양한 합판으로 제작되었지만, 1960년대 이후 로즈우드가 보호 수종으로 지정되면서 같은 방식으로 생산될 수 없었다. 이후 티크 등을 거쳐 현재는 너도밤나무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초기 로즈우드나 티크 버전은 더 이상 재현될 수 없는 조건을 지니게 되었다. 이처럼 ‘다시 만들 수 없음’이라는 조건은 빈티지의 가치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세븐 체어’. 로즈우드, 티크, 너도밤나무 등 시대에 따라 다른 소재는 빈티지가 지닌 시간의 맥락을 보여준다. ©Arne Jacobsen

 

 

이러한 흐름은 특정 디자이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빈티지 가구가 지속적으로 선택되는 데에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재현하기 어려운 구조와 소재, 그리고 손의 흔적이 만들어내는 감각 때문이다. 1950~1960년대 유럽 가구는 지금과 다른 목재 수급 환경과 제작 방식 속에서 만들어졌고, 그 결과 시간이 충분히 스며든 질감과 수작업의 흔적을 지니게 되었다. 오랜 시간 사용으로 인해 생긴 표면의 변화, 이른바 ‘파티나Patina’나 ‘에이징Aging’은 단순한 노후가 아니라 시간이 더해지며 완성된 상태에 가깝다. 자연광에 의해 은은하게 변색된 가죽이나 손에 닿으며 형성된 미세한 흔적은 결함이 아니라 물건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 빈티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만들 수 없는 조건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감각을 생활 안으로 들여오는 일에 가깝다.

 

 

 

시간이 쌓인 취향의 공간

 

가구를 하나하나 만나게 된 계기와 집 안에 들여놓기까지의 이유는 나의 가장 사적인 기억 안에서 쉼 없이 재생된다. 인생 매 순간의 갈망과 동기가 깃든 가구는 기능을 뛰어넘어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나는 곧잘 “가구와 함께 살고 있다”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취향과 시간 그리고 기억이 공간 안에 스며드는 ‘공간의 자기화’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구들은 현재의 내가 지지하고 동의하는 미감, 존재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취향, 편애에 가까운 애착으로 여전히 곁에 머무는 어떤 집합체인 것이다.

 

인왕산 자락의 새하얀 집에는 현시점의 에센스라고 할 수 있는 것들만 모아두었다. 아침마다 앉아 차를 마시는 파란 소파는 우리 집의 유일한 컬러 포인트로, 그 볼륨과 선이 간결한 네덜란드 디자인이다. 40년은 족히 넘었을 오리지널 패브릭은 색이 한껏 바래고 군데군데 낡았지만, 그것만큼 마음에 드는 컬러와 질감의 패브릭을 찾지 못해 몇 년째 천갈이를 미루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오리지널 패브릭의 네덜란드 빈티지 소파 ©박선영

 

 

가로 2m가 넘는 사이드보드는 명료하게 수평선이 강조된 1970년대 독일 디자인으로, 양평의 한 빈티지 숍에서 한눈에 반해 어렵사리 내 것이 되었다. 대부분의 수납이 붙박이장이라는 시스템에 편입된 현재 한국의 주거 방식에서 이 육중한 가구의 존재는 다소 과하고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되레 이 사이드보드에 ‘집 안의 얼굴’이라는 역할을 부여하기로 했다. 든든하게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가구가 늘 그 자리에 우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일상이 단단한 잔잔함 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듯한 안정감이 든다.

 

침대 커버와 담요, 아끼는 책과 음반을 고이 쌓아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옆으로 드르륵 문을 밀어 꺼내는 한껏 느긋한 행위는 정감 어린 생활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시인 빌 벤턴은 이렇게 취향을 설명한다.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그리고 취향은 그 사람의 감성 풍향계라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지표 같은 것이죠.” 일생에 걸쳐 축적해 가야 하는 것이 취향이라면,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가구들과 생활의 궤를 이루며 머물고 있을까. 어쩌면 그 변화의 과정마저 조용한 기대로 남아 있다.

 

 

글. 박선영(칼럼니스트, <독일 미감> 저자)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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