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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루틴인데 왜 외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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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우리는 혼자일 때조차 수많은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삶은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 때문에 생긴 어둠과 혼란까지 끌어안으며 넓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완벽한 하루는 결코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혼자 살아도 혼자가 아니고, 평온한 일상도 관계 하나로 쉽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삶이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짐까지 끌어안는 방식에 가까운지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 고독과 충만 사이

 

그러잖아도 외로운 게 인생인데, 오늘날은 아예 고립의 시대라고들 일컫는다.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명저 <고립의 시대>에 따르면 그 이전에도 이미 이 시대는 외로운 세기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세계화가 되고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한 초연결 사회가 될수록 사람들은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만은 아니고, 고독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 스스로 고독을 택한 이의 소박하지만 충만한 일상을 그린,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가 열연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라.

 

도쿄 변두리의 이른 새벽, 빗자루 소리에 홀로 눈을 뜨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 이부자리를 개고, 책과 안경을 정리한 뒤 세면을 하고, 화초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캔 커피를 들고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를 틀며 출근한다. 그의 일터는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그는 마치 장인처럼 구석구석을 닦는다. 점심에는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사진으로 남기고, 퇴근 후에는 목욕탕과 단골 식당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철저한 루틴은 출세나 성공을 위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지루하기보다 오히려 부럽게 느껴진다. 혼자 살아도 충만해 보이는 삶, 하루를 고요히 지켜내는 태도야말로 ‘퍼펙트 데이즈’처럼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오르고 나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는 흑백 쿠키 영상이 등장하는데, 마치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듯 자막까지 곁들이며 살뜰히도 설명해 준다. “고모레비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고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고모레비木漏れ日’는 이렇게 우리 시대의 문화어가 되었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고모레비는 카르페 디엠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저 나뭇잎 사이의 일렁이는 햇살이 그러한 것처럼 일상 또한 늘 똑같아 보이는 단조로운 반복의 연속인 것 같아도 정작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법. 히라야마가 매일 고모레비를 찍는 건 그의 대사처럼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날로그 문명에 대한 그리움과 별도로 이 영화를 보고 ‘소확행’ 혹은 ‘미니멀리스트’의 가치라든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반응이 넘쳐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겠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이 영화를 이렇게만 이해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결정적 장면, 출근길의 히라야마가 웃다 울다, 울듯 웃고 웃듯 우는 의미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일상의 루틴을 지키며 일이든 쉼이든 평안과 평온을 추구하고, 또 그걸 얻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혼자’ 사는 방식으로서만 유효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의 평정을 흩뜨리는 것은 언제나 타인, 곧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고할 수 없고 계획할 수도 없는 타인과의 만남에 의해 견고하던 그의 일상 루틴과 평화는 너무도 간단히 흔들리며 무너지고 만다.

 

과거의 구체적 사연은 알 길 없지만, 아마도 히라야마는 세속의 욕망을 멀리하고 은둔의 현자처럼 살기를 원해 스스로를 인내와 절제의 세계로 이끌고, 그에 길들여왔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히라야마는 스토아의 현인을 닮았다. 스토아철학의 중요한 원칙은 자연의 이치와 조화롭게 사는 것,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반면 그에게서는 에피쿠로스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되, 쾌락을 적극적으로 좇기보다 고통과 불안이 부재하는 평안을, 최대치의 욕구 충족보다는 소박한 자족을 더 강조한다. 화려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질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도 독서와 음악을 누리며 이른바 워라밸을 실천하는 히라야마의 삶이야말로 진실로 쾌락적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바위를 지향하는 스토아처럼, 잔잔한 호수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에피쿠로스처럼 그렇게 온전히 일상을 살아내기가 우리 같은 속인으로서는 쉬울 리 없다. 스토아처럼 현재를 중시한다 했지만 히라야마는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에피쿠로스처럼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고 마음의 평온을 추구했지만 사랑과 우정 같은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까지 억압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현인들은 우리에게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불평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오직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 하나만 통제한다고 평강과 행복, 희망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관계로부터 떠난 혼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바랄 일도 아니며,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고요한 루틴 속 삶을 이어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NEON

 

 

 

진정한 퍼펙트 데이즈의 삶이란

 

우리는 곧잘 “혼자 사는 건 외롭고, 같이 사는 건 괴롭다”라고 불평한다. 아니다. 이문재 시인은 혼자의 적은 정작 ‘혼자’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혼자 살아보니 혼자인 적은 없었던 것, 혼자 있어 보니 혼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고맙고 고마워서 미안한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노라 토로한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한 줄은 히라야마에게 건네는 경구처럼 들린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가 사랑하는 나무 또한 숲을 이루어야 사는 법이다.

 

어차피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 삶이라면, 우리는 혼자의 지경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다시 셈해봐야 옳겠다. 이문재 시인은 ‘혼자의 넓이’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해가 뜨면 / 나무가 자기 그늘로 /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 놓듯이 /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 한다.”(‘혼자의 넓이’ 일부)

 

나무 그늘이 어둠과 하나 되면 어디가 그늘이고 어디가 어둠이랴. 우리 모두 누군가와 스며들어 산다. 그러기에 일찍이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곳에 가고 싶다”(‘섬’ 전문)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밤 풍경을 떠올려보라. 조카와 누이를 만난 이후 히라야마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날 이후 그의 일상은 엉망으로 꼬이고 만다. 동료가 무단결근한 탓만은 아니리라. 그의 평정은 이미 무너졌다. 그뿐이랴. 그가 흠모하던 술집 여주인이 남자의 품에 안기는 장면까지 목도하고 만다. 바로 그날 밤, 그는 루틴을 깨고 캔 맥주를 들이켜며 담배까지 피워댄다. 그때 술집 여주인의 남자가 다가온다. 7년 전 이혼한, 시한부 암 환자가 되어버린 전남편이었다. 함께 고모레비처럼 강물에 일렁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다가 히라야마가 질문을 던진다.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 과학적으로는 우문일 테지만, 히라야마는 더 어두워질 거라고 억지를 부린다. 겹쳤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히라야마의 얼굴이 밝아지고, 그날 모처럼 그의 꿈자리는 어지럽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그다음 날 출근길에서 그가 울고 웃고 한 것은 혼돈이나 패배가 아니라, 포용과 고조의 상태로 이해함이 옳을 성싶다. 한 점 결함 없이 완벽한 날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온전히 품어내는 것이 진실로 완전한 날이리라. 어둠도 그림자도 실패도 낙담도 품고 사는 것, 나 혼자만 고립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부담까지 내 몫으로 기꺼이 챙기며 사는 것, 나의 지경과 경지를 타인의 속으로까지 스며들어 더 높이고 넓히는 것, 내 그늘이 이 지구의 온 어둠만 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퍼펙트 데이즈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산다면 오늘 하루 우리는 충분하고 또 충만할 것이다.

 

 

글. 정재찬(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퍼펙트데이즈 #고모레비 #스토아철학 #에피쿠로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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