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약 대신 앱을 처방합니다📱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치료는 더 이상 병원과 약 봉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치료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생활 습관을 관리하며, 환자가 치료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의료 방식을 만들고 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가서 처방받은 약을 받는다. 치료의 시작이 병원이었다면 약은 치료의 끝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젠 치료의 영역이 달라졌다. 앱을 켜고, 데이터를 쌓고, 하루의 선택과 습관까지 관리하는 방식으로 치료는 조용히 범위를 넓혀간다. 지금, 처방전은 ‘무슨 약을 먹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알약’에서 ‘코드’로 이동하는 치료아파서 병원을 찾으면 우리가 받는 것은 의외로 단출하다.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손에 쥐는 건 검사 결과와 처방약이 적힌 종이 한 장. 의사는 몸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약을 정한다. 치료란 약을 통해 몸의 반응을 조절하고, 수치를 낮추며, 증상을 완화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의료는 이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이 익숙한 구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제 치료는 ‘무슨 약을 먹을 것인가’를 넘어 ‘어떤 앱을 쓰고, 어떤 데이터를 쌓으며, 어떻게 행동을 바꿀 것인가’까지 포함한다. 복용량 대신 알고리즘이, 치료 과정에는 사용자 경험이 더해진다. 치료가 ‘알약’에서 ‘코드’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이 변화를 대표하는 것이 DTxDigital Therapeutics, 즉 디지털 치료제다.
DTx는 질병의 예방·관리·치료를 목적으로 규제를 통과한 의료 기기 소프트웨어다. 흔히 ‘FDA 승인 앱’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의약품처럼 일괄 승인되는 구조가 아니다. 대신 의료 기기 규제 체계 안에서 드 노보De Novo나 510(k) 같은 절차를 거친다. 드 노보는 비교할 기존 제품이 없는 새로운 기술을 처음 인정받는 경로이고, 510(k)는 이미 시장에 있는 기기와 비슷한 수준임을 입증해 허가를 받는 방식이다. 결국 DTx는 ‘새로운 약’이라기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치료 도구에 가깝다.

FDA는 DTx를 의료 기기로 분류하고 허가·관리한다.
치료의 빈틈을 채우는 기술
“약 대신 앱.” DTx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이보다 훨씬 신중하게 움직인다. 2017년 FDA가 승인한 ‘리셋reSET’은 약물 사용 장애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 앱이다. 인지 행동 치료CBT를 통해 금욕 유지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디까지 하느냐’다. 이 앱은 약을 대신하지 않는다. 단독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도 아니다. FDA 역시 이를 명확히 했다. 약물을 대체하는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고, 특정 환자군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까지 분명히 선을 그었다.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 환자를 위한 ‘리셋-오reSET-O’ 역시 마찬가지다. 약물 치료와 함께 쓰이는 보조 요법으로 설계됐다. 결국 이 기술의 역할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약물 치료와 외래 치료 사이, 가장 흔들리기 쉬운 구간을 붙잡는 것. 약이 몸의 반응을 다루는 동안 소프트웨어는 행동과 습관, 그리고 재발 위험을 관리한다. DTx가 처음 자리 잡은 곳도 바로 이 ‘틈’이다.

페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 ‘리셋’ ©Pear Therapeutics
다른 사례들도 같은 흐름을 반복한다. 불면증 치료 앱 ‘솜리스트Somryst’는 수면 제한과 자극 조절, 인지 교정 같은 치료 과정을 통해 잠드는 방식 자체를 바꾸도록 설계됐다. ADHD 치료용 ‘엔데버알엑스EndeavorRx’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알고리즘이 난이도를 조절하며 아이의 주의력을 훈련한다. 형태는 새롭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기존 치료를 대체하지 않고, 그 옆에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점점 더 일상 깊숙이 들어온다. ‘나이트웨어NightWare’는 수면 중 심박과 움직임을 분석해 필요한 순간에 진동 자극을 주며 악몽을 줄이고, ‘블루스타BlueStar’는 혈당 데이터와 생활 습관을 연결해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치료는 더 이상 병원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잠드는 순간, 식사를 고르는 순간 등 하루의 반복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결국 DTx는 약을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약이 닿지 못하는 순간, 습관이 무너지고 선택이 흔들리는 그 지점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치료는 이제 ‘무슨 약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다루기 시작했다.

1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료용 소프트웨어인 ‘엔데버알엑스’ ©Google Play
2 ‘나이트웨어’는 PTSD 환자의 악몽 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 시스템이다. ©NightWare
DTx 시장을 가르는 것은 접근성
FDA 허가가 곧 시장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리셋’과 ‘리셋-오’, ‘솜리스트’를 내놓은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2023년 파산 절차에 들어간 사례는 이 간극을 보여준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처방과 보험,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는 길은 따로 있었다. 규제의 문턱을 넘는 것과 의료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결국 DTx의 핵심은 ‘접근성’이다. 누가 처방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환자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가. 미국도 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FDA는 실제 임상 환경에서의 사용성과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파일럿을 추진하며, 이제는 승인 이후의 구조를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풀어낸 곳은 유럽이다. 독일은 디가DiGA 제도를 통해 의료용 앱을 처방 대상에 포함하고, 건강보험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설계했다. 이 순간 앱은 선택이 아니라 치료가 된다.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앱만이 목록에 올라가고, 효과성과 데이터 보호 기준까지 충족해야 한다. 환자가 스마트폰에 자신의 수면이나 혈당 데이터를 입력하는 순간, 그것은 의료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영국은 좀 더 신중하다. 나이스NICE, 국립보건의료우수연구소는 ‘슬리피오Sleepio’ 같은 디지털 치료를 일부 진료 경로에 포함시키면서도 근거가 부족한 영역은 연구 단계로 남겨둔다. 어떤 앱은 치료로 쓰이고, 어떤 앱은 아직 실험에 머무른다. 일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큐어앱CureApp’은 금연 치료에서 약물과 상담, 앱을 하나로 묶어 보험 적용 모델을 만들었다. 고혈압 관리 앱 역시 환자의 실제 사용과 데이터 입력까지 치료 과정으로 인정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프트웨어를 제품이 아니라 치료 행위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결국 흐름은 명확하다. 미국은 허가를 열었고, 유럽은 제도를 만들었으며, 일본은 사용 방식까지 설계했다. 그리고 그 공통점도 분명하다. DTx는 약을 대체하지 않는다. 대신 그 옆에서 작동한다. 지금 의료는 이미 약과 소프트웨어가 함께 작동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니코틴 중독 디지털 치료 프로그램 ‘큐어앱’ ©CureApp
치료,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DTx는 약을 없애지 않는다. 대신 환자가 치료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생활 습관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다시 악화되는 순간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등 약이 다루기 어려운 영역을 맡는다.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이 ‘행동 영역’을 데이터로 읽고 개입하는 방식이다. 이 흐름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AI는 환자의 반응을 학습해 개입 시점과 강도를 조절하고, 웨어러블은 심박과 수면,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이미 엔데버알엑스는 알고리즘으로 난이도를 조절하고, 나이트웨어는 수면 중 개입하며 다양한 디지털 치료가 행동 변화 자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경쟁은 더 강한 약이 아니라, 더 정확한 타이밍과 더 오래 지속되는 변화를 만드는 데 있다.
이 변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치료란 무엇인가? 단순히 수치를 낮추는 일인가, 아니면 생각과 습관 및 일상의 선택까지 바꾸는 일인가? 지금까지의 흐름은 분명하다. 치료는 이미 병원과 약봉지를 벗어나고 있다. 어떤 치료는 알약으로 시작해 앱으로 이어지고, 어떤 치료는 처방과 함께 다운로드로 시작된다. 원래 의료에서 처방은 약과 함께 식이, 생활 습관, 교육까지 포함하는 종합적 계획이었다. DTx는 이 처방을 다시 꺼내 디지털로 확장한 것이다. 몸의 신호는 기록되고, 행동은 관리되며, 그 과정은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공유된다.
결국 달라진 것은 하나다. 치료는 더 이상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능동적 과정이라는 점이다.
글. 김주한(서울대학교 연구부총장)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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