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줄요약!
1. 퍼플렉시티가 구글의 크롬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서 화제예요.
2. 가능성은 낮지만, 반독점 압박을 받는 구글의 약점을 찌른 영리한 전략으로 평가돼요.
3. 잦은 도발성 제안은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지만, 자칫 '양치기 소년'이 될 위험도 있어요.
??? : 이제 저한테 크롬 넘기시죠
입사 4년 차 주니어가 대뜸 20년 차 시니어에게 "이제 해 먹을 만큼 해 먹었으니 핵심 프로젝트를 저에게 넘기시죠"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시니어는 황당하겠지만, 기업 입장이라면 세대교체 차원에서 한번 맡겨볼까? 고민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주니어가 다른 회사 소속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겠죠. 최근 미국 IT 업계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생성 : ChatGPT-4o
2022년 설립된 AI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가 구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크롬 브라우저 인수에 나선 것입니다. 제시한 금액은 무려 345억 달러(약 48조 원)에 달하는데요. 이는 자신들의 기업 가치인 180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IT 업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충격적인 제안은 발표 직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을 단순히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기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최근 미국 법원의 구글 독점 판결과 이에 따른 크롬 분할 가능성이 깔려 있고, 퍼플렉시티 역시 이를 교묘히 활용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승부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크롬 분할? 옳다구나!
구글은 지난 몇 년간 반독점 규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3년 미국 연방법원은 구글이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불법적인 독점을 유지해 왔다고 판결했는데요. 수십억 달러를 동원해 휴대전화 제조사, 브라우저 개발사, 통신사들과 검색 엔진 독점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부당하게 강화해 왔다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검색 시장의 약 90%에 달하는 점유율을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죠.
이 판결 이후 미 법무부와 규제 당국은 구글에 대한 강도 높은 시정 조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방안이 바로 크롬 브라우저 사업부의 분할·매각입니다. 쉽게 말해, 구글이 검색 시장 독점을 유지하는 데 크롬이 핵심 수단으로 활용됐으니, 아예 크롬을 구글로부터 떼어내라는 의미입니다.

출처 : Statcounter (편집 : 테크잇슈)
물론 구글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순다르 피차이 CEO는 법원의 이러한 분할 요구를 “광범위하고 비상식적”이라고 일축하며, 크롬을 떼어내는 것이 사용자 데이터 보안에 위험을 초래하고 자사 핵심 기술을 사실상 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구글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항소 절차가 진행되면 최종 매각 조치까지 수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렇듯 구글의 검색 독점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한창인 와중에 퍼플렉시티의 인수 제안이 등장했습니다. 법원이 크롬 분할 가능성을 언급하자마자, 옳다구나(?)하고 등장한 것이죠.
퍼플렉시티: 저 이 정도 되는 놈입니다
퍼플렉시티의 인수 대상은 구글의 웹 브라우저 크롬 전체 사업부이며, 인수 가격은 345억 달러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불 조건이 100% 현금이라는 것입니다. 퍼플렉시티는 서한에서 여러 거대 벤처캐피털 펀드들이 이 거래 자금을 전폭 지원하기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는데요. 투자자들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최소한 외부 자본의 지원 약속을 받아둠으로써 “실탄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퍼플렉시티가 밝힌 인수 조건 및 향후 계획도 흥미롭습니다. 퍼플렉시티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CEO는 크롬을 역량 있는 독립 운영자에게 맡겨 반독점 시정 조치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이번 제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는데요. 인수 후에도 크롬의 기반 엔진인 크로미움(Chromium)을 계속 오픈소스로 개방하고, 직원 대다수를 고용 유지하며, 향후 2년간 30억 달러(약 4조 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크롬의 기본 검색 엔진 설정은 그대로 구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요컨대 사용자들이 지금 쓰는 크롬의 경험을 해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크롬의 새 주인이 되더라도 구글 검색 등을 함부로 바꾸지 않음으로써 사용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반독점 문제를 풀면서도 사용자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관리해 보이겠다며 자신들을 규제 해소의 해법으로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안의 성공 가능성은 낮겠지만, 시점만큼은 절묘했습니다.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크롬 정도는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인데요. 이는 마치 공부는 잘 못하지만 서울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서울대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으로 포지셔닝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글: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구글은 공식 코멘트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알파벳 경영진은 퍼플렉시티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애초에 크롬은 매물로 내놓은 적조차 없는 핵심 사업이고, 구글로서는 이런 일방적인 제안에 대응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시장 전문가들과 업계의 시각도 대체로 회의적입니다. 여러 애널리스트들은 구글이 크롬을 선뜻 매각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크롬은 구글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자산이므로, 구글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분석인데요. 설령 법원이 매각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구글은 법적 대응을 통해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게, 크롬은 구글의 차세대 AI 전략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구글이 검색 결과에 AI 오버뷰(AI 개요)를 띄우는 기능을 선보였는데, 이런 신기능의 테스트·배포 역시 크롬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결국 구글 입장에서는 크롬을 넘긴다는 것은 '브라우저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 AI 전략의 출발점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도 이제 막 AI 시장에 등장한 스타트업이 달라고 하니, 속으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을 마시는 기업들은 퍼플렉시티 말고도 또 있습니다. OpenAI나 야후, 사모펀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등은 규제 압박으로 크롬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자 크롬 인수에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그만큼 크롬은 빅테크는 물론 투자자들, 심지어 정부 규제 당국까지 모두가 주목하는 전략 요충지입니다.
크롬은 왜 핫할까?
크롬이 중요한 이유를 조금 더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전 세계에서 크롬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30억 명이 넘습니다. 데스크톱과 모바일을 합친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에서 크롬은 약 68%를 차지하며 부동의 1위인데요. 우리가 매일 크롬을 열어 웹서핑을 하고, 주소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구글의 트래픽과 데이터로 연결됩니다. 이용자가 크롬을 통해 남기는 방대한 웹 활동 데이터와 검색 쿼리는 현대 디지털 광고 시장과 AI 개발 경쟁에서 핵심 자원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특히 검색 엔진과 브라우저의 결합은 구글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크롬 사용자는 별다른 설정을 바꾸지 않는 한 자동으로 구글 검색엔진을 기본 사용하게 됩니다. 예컨대 구글은 애플 사파리(Safari)의 기본 검색 엔진 적용을 위해 매년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 이상을 애플에 지급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크롬은 구글 자신이 만든 브라우저이기에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전 세계 사용자를 구글 검색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기본 검색엔진으로 설정된 크롬 (출처 : 크롬)
또한 크롬은 단지 검색 트래픽뿐 아니라, 웹 표준과 광고 기술의 주도권 측면에서도 전략적 무기입니다. 구글 크롬 팀은 웹에서 사용되는 기술 표준(예: 쿠키 정책, 자바스크립트 엔진 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크롬이 서드파티 쿠키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면, 전 세계 광고 업계와 사이트들이 이에 맞게 전략을 수정해야 합니다.
이처럼 브라우저 설계 방향 하나에 따라 온라인 광고 시장의 구조 자체가 출렁이는 만큼, 이를 손에 쥐고 있는 기업은 판을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AI 시대에 브라우저는 새로운 격전지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OpenAI와 퍼플렉시티 역시 자체 AI 브라우저 개발에 뛰어든 상황인데요. 이런 흐름 속에서 크롬이라는 플랫폼을 장악한다는 것은 곧 차세대 검색·AI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어쩌면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결국 이번 인수 제안은 '성사 여부'보다 '제안 자체'가 핵심이었습니다. 퍼플렉시티는 345억 달러짜리 공수표 한 장으로 자신들의 브랜드를 글로벌 테크 업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그것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이득을 봤습니다.
동시에 작은 스타트업의 도발적인 한 방은 크롬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금 조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칫 흐지부지될 수도 있었던 법원의 분할·매각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인데요. 아무리 거대한 코끼리라도 모기에 물리면 간지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리한 한 방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수표를 남발하면 시장의 신뢰도는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퍼플렉시티는 올해 초에도 틱톡을 인수하겠다며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는데요. 이런 찔러보기식 전략이 계속된다면, 나중엔 오히려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아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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