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발언 하겠습니다. 복숭아 이렇게 먹지 마세요.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복숭아 취향 경제, 행복한 고민일까? 나다움을 찾지 못한 불안 소비일까? 소비자, 생산자, 유통인이 각각 다른 욕망을 가지고 합세한 이 게임의 치트키를 알려드려요
납작복숭아부터 신비복숭아까지, 복숭아 신품종이 앞다투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복/딱복’ 또는 ‘백도/황도’로만 구분되던 복숭아가 점점 맛의 깊이를 더해갑니다.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도 합세하니, 맛과 향, 식감이 더욱 다양해 졌고요. 다른 식품들과 마찬가지로, 복숭아에도 취향 경제의 패러다임이 작용합니다. 취향은 소비의 새로운 이유가 됐습니다. 복숭아 취향 경제는 소비자, 생산자, 유통업자의 욕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죠.
소비자들은 다양한 선택지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이어갑니다. 유통서비스 업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출처: '여름과일의 왕' 복숭아, 더 맛있게 오래 먹는 방법
MD들은 기존 품종을 분류하고, 디테일한 스토리를 발굴하는 동시에, 신품종을 찾아 로컬로 향하고 있죠. 지자체에서는 품종 관리를 하면서, 재배 단계부터 농부들과 협업하며 독점적인 브랜딩으로 관리하기도 합니다. 넓고 깊어진 복숭아 세계관에서 소비자, 생산자, 유통업자가 플레이 하는 복숭아 취향 경제 게임에서 요즘 미묘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먼저, 세 개의 플레이어들이 가진 특징과 숨겨진 욕망을 분석하고, 변화의 움직임을 살포시 거들떠 볼게요.
복숭아 취향 열풍 왜?
🧭 소비자: “미각 탐험가”
- 성격: 호기심 많고 새로운 복숭아의 세계를 유영하는 탐험가.
- 특징: 달콤한 맛, 독특한 향, 식감 등 맛의 지도를 넓혀가기 위해 신품종 복숭아를 탐험하러 나감.
- 숨겨진 욕망: 세련된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어 함.
먼저 소비자들은, ‘탐험가’적인 기질로 게임에 참여합니다. 다양한 맛과 향, 식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 졌습니다. 기존의 단맛 위주의 복숭아에서 더 풍부한 향과 새콤달콤한 밸런스를 원하는 경향이 커졌죠. 특히 망고나 파인애플, 패션후르츠 같은 이국적인 과일을 익숙하게 접하면서, 플로럴, 머스키, 스파이시, 트로피컬한 향을 지닌 복숭아의 신품종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 졌어요.
또한 복숭아는 다른 과일보다 식감에 뚜렷한 차이가 나는, 재밌는 과일입니다. 아삭하거나 과육이 치밀한 품종(딱복), 혹은 과즙이 풍부한 물복을 각각 선호하는 소비자층이 뚜렷해져, 이를 맞추기 위해 새로운 품종 개발과 유통이 활발해지고 있죠. 특히 신품종은 미각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요. 세련된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며, 지갑을 열게 합니다.
👩🌾 생산자: “욕망의 마이스터”
- 성격: 꼼꼼하고 완벽주의적 성격으로, 최고의 과일을 키워내기 위해 땀 흘리는 장인
- 특징: 기후와 토양을 읽고, 병해충과 싸우며, 품종 선택부터 재배 관리까지 운과 과학과 경험을 총동원.
- 숨겨진 욕망: 일확천금은 나의 것!
생산자들은 재배 안정성과 수익성을 향해 움직입니다. 원래 생산자들이 다양한 품종을 재배했던 것은 조생종, 만생종 품종을 나눠 기르면, 노동력과 출하 시기를 분산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기후변화 요인이 작용합니다. 기후변화로 기존 품종이 꽃이 피지 않거나 과숙하는 생리 장해를 겪거나 각종 병해충에 취약해지기 시작했거든요. 품종을 개발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니즈뿐만 아니라 이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상품성이 높은 신품종을 선택하면, 농가 입장에서는 소득이 증대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어요. 소비자들이 복합적인 향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신품종을 찾는 농가도 늘고 있죠.
출처: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청도복숭아연구소
이에 따라, 신품종 열풍은 거의 도박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산자와 유통인은 아로니아나 샤인머스캣처럼 수요가 열렬했다가,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근 20년간 학습해 왔는데요.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팔기 위해 어린 나무에 무리하게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기도 하고요. 예쁘고 상처나지 않게 하기 위해 농약을 많이 뿌리기도 합니다. 신품종은 그만큼 작물의 재배 데이터가 잘 쌓여 있지 않아서, 농가들은 운에 맡기며 농사를 짓는 상황입니다.
🚚 유통인: “발빠른 전략가”
- 성격: 트렌드에 민감하고 대중의 마음을 잘 읽는 영업가형.
- 특징: 언제 어디에 어떤 과일을 내놔야 제값을 받을지, 어떤 스토리와 진열로 팔지 기민하게 움직임.
- 숨겨진 욕망: 취향? 그거 다 자본주의 마케팅이야
유통 업계는 차별화된 상품으로 마케팅이 용이하기 때문에 ‘디테일’이라는 무기로 품종 세계관에 합류합니다. 기존 복숭아는 세분화하고, 신품종은 발굴하면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죠. 잘 알려진 예로, 컬리는 2023년 천중도·금강수밀·백봉·아카스키·적월도·마도카까지 총 6종의 복숭아 샘플러를 출시하기도 합니다.
출처: 컬리
품종 중에서도 특히 과피가 단단해 운송이나 저장 중 멍이나 눌림 현상이 적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요. 꾸준히 새로운 품종을 선보이면 매출 유지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취향, 돈 주고 사는 거였어?
이렇게 소비자, 생산자, 유통 모두에게 각자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복숭아를 세분화하는 경향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품종도 지속적으로 연구, 재배, 생산, 소비되고 있고요. 다시 말해, 취향경제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가장 낭만적인 시스템이기도 한데요. ‘취향을 찾자’라는 미명 아래,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 젖히는 교묘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취향을 찾자’는 구호는 겉보기엔 개인의 행복과 자기 발견을 위한 여정 같지만, 사실 자본주의 마케팅의 달콤한 덫일 수 있어요. 기업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해 ‘취향 없는 사람은 뒤처진다’는 압박을 심어주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끊임없이 소비를 유도하죠. 결국 우리는 나만의 취향을 찾겠다며 더 많은 상품을 사고, 더 많은 서비스를 피상적으로 체험합니다. 취향은 소비의 언어로 치환되고, 개성은 지갑의 두께에 좌우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진정한 나다움은 과연 존재할까요?
나 소신 발언 할게…
그런데 요즘, SNS에서 묘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어요. ‘나 소신발언 할게. 나 사실…’로 시작하는 소신 발언 콘텐츠들이 늘고 있거든요. 요즘 소비자들은 취향 경제적 접근을 넘어서서 소신 경제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양상입니다. ‘소신 경제’는 취향 경제가 지나치게 팽창한 끝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흐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비자들은 지나친 선택의 다양성에 피로도가 극에 달했고요.
컬리에서 복숭아 샘플러가 나온 것은 2023년이었는데요. 소비자들은 2년의 시간 동안 복숭아의 디테일을 학습하고, Try & Error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미 충분히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탐색해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고용 불안과 경기 침체가 겹치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신중히 선택하려는 태도가 소신 경제로 건너가는 데 일조했죠.
이러한 Try & Error의 시간을 통해 좋아하는 품종을 기억해뒀다가, 농가와 직거래 하기도 하고요. 화려하지만 어설픈 신제품보다는, 복숭아 마이스터가 소신껏 공들여 키운 전통 품종처럼 검증된 가치를 지닌 것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소신 경제는 ‘더 많이’보다 ‘더 나답게’를 추구하며, 자본이 부추긴 취향 소비의 과잉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어요.
소신 경제는 '덜어내기' 게임
취향 경제가 ‘더해가기’의 게임이라면, 소신 경제는 ‘덜어내기’의 게임입니다. 취향경제는 더 많은 선택지에서 ‘나’를 찾는 여정이라면, 소신경제는 나의 원칙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선택을 덜어내는 여정이죠. 복숭아를 둘러싼 이 복잡한 게임에서, 우리는 더 깊게 맛보고, 더 넓게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나다운 선택’을 합니다. 소신 경제는 덜어내고 찾아낸 ‘나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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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경제 |
소신경제 |
소비 기준 |
다양한 선택지에서 ‘내 취향’ 찾기 |
불필요한 소비 줄이고 ‘내 기준’ 지키기 |
소비 태도 |
더 많은 경험, 다양한 시도 강조 |
검증된 가치 중심, 신중한 소비 |
동기 |
개성과 트렌드 표현 |
나다움과 신념 표현 |
감정 |
기대, 설렘, 때로는 피로감 |
안정감, 확신, 만족 |
시장 관여 |
자본이 만든 선택지 속에서 소비 유도 |
자본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율적 소비 지향 |
신조 |
더 많이, 더 새롭게 |
덜어내고, 더 나답게 |
‘취향 없는 사람은 뒤쳐진다’는 불안이 아니라, 소신 있게 소비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어 갑니다. 자본이 만든 취향의 덫은 ‘소신’이라는 치트키로 풀어 갑니다. 소비자는 소신대로 구매하고, 생산자는 신념을 가지고 생산하고, 유통인은 원칙을 지키며 좋은 복숭아를 소비자에게 유통합니다. 복숭아의 제대로 된 맛은 취향이 아니라 소신에서 나옵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