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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은 정말 능력일까?진짜 뇌🧠 효율은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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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인데, 기억력은 40대 수준입니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단순한 유전적 행운은 아니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슈퍼에이저Superager’는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40~50대의 인지능력을 유지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기억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과 사회적 활력도 함께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의 과잉 사용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하는 이른바 ‘디지털 디멘시아Digital Dementia’ 시대, 슈퍼에이저가 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멀티태스킹의 오해와 뇌의 기본 구조

 

현대사회는 빠른 속도와 다중 작업을 미덕으로 여긴다. 한 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은 경쟁력으로 간주되며, 이른바 ‘슈퍼 워커’의 상징처럼 소비되어왔다. 하지만 뇌과학은 이 통념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다.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멀티태스킹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뇌는 실제로 A 작업에서 B 작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 서식스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전자 기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뇌 회백질 밀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뇌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주의력과 정서 조절 능력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지털 환경에서 얻는 정보는 대부분 자극적이고 단편적이다. 뇌는 반복과 구조화 과정을 거쳐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과 스크롤은 사고의 흐름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기억력뿐 아니라 사고력·창의성·감정 조절 기능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혹은 ‘브레인 롯Brain Rot’이라고 표현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디지털 과잉 환경이 뇌의 본래 기능을 약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뇌의 구조적 한계를 무시한 채 멀티태스킹을 능력이라 착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뇌 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뇌 효율은 하나에 몰입하고, 천천히 사고하고, 반복적으로 기억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LG유플러스는 스마트폰 없이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노 폰 다이닝No Phone Dining’ 행사를 열어 디지털 기기 없이도 풍부한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LG유플러스

 

 

 

뇌를 깨우는 움직임과 언플러그 습관

 

현대인은 빛과 움직임이라는 두 핵심 생리적 리듬에서 멀어지고 있다. 태양 빛이 아닌 인공 빛에 과도하게 노출되고, 하루 대부분을 움직임 없이 보내며 살아간다. 뇌는 자극이 없으면 기능을 멈춘다. 움직임은 뇌 발달의 핵심이며 단순한 걷기부터 악기 연주, 정원 가꾸기, 일기 쓰기 등 오프라인 활동 모두가 뇌에 유익한 자극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바로 ‘언플러그 시크Unplug Chic’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는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디지털에서 분리된 감각 중심의 삶을 선택하는 태도다. ‘전원 끄기’는 단절이 아니라 회복이며, ‘느리게 살기’는 포기가 아닌 적극적 선택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같은 길이 아닌 낯선 골목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방향감각, 공간 기억, 시각 처리 등 다양한 회로를 작동한다.

  

 

하이네켄과 핀란드 스마트폰 제조사 HMD가 합작해 선보인 ‘보링 폰’은 언플러그 시크 트렌드의 상징적 제품 중 하나다. 통신과 기본 기능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설계한 것이 특징 ©Heineken

 

  

국내 최초 웰에이징 리조트로 알려진 힐리언스 선마을은 이 같은 언플러그 시크의 대표적 사례다. 강원도 홍천의 숲속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의도적으로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을 제한해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20분 정도 숲이나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활성도가 높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실제 뇌의 화학적 균형을 회복시키는 ‘자연 기반 처방’이다.

 

디지털 과잉 사회에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정보에 시달리며 지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임’과 ‘오프라인 자극’은 단순한 건강관리가 아니라, 뇌를 다시 인간답게 되돌리는 회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뇌는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 움직이고 반응할 때 가장 건강하게 작동한다.

  

 

자연 속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하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체득할 수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 ©힐리언스

 

  

 

해마와 뇌가소성, 뇌는 늙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뇌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뇌과학은 이 통념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러한 개념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런던 택시 기사 연구’다. 영국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신경과학자 엘리너 매과이어Eleanor Maguire 교수는 수년간 런던의 복잡한 도로망을 외워 운전하는 베테랑 택시 기사들의 뇌를 MRI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뇌에서 기억과 공간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의 크기가 평균보다 눈에 띄게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오른쪽 후방 해마가 두드러지게 발달해 있었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고, 방향감각과 공간 기억을 처리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또한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이 가장 먼저 침범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반복적 학습과 실전 적용이 장기간 이뤄질 경우, 뇌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은 ‘뇌는 쓰는 만큼 바뀐다’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 현상을 우리는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부른다. 이는 뇌가 외부 자극과 경험에 반응해 신경 경로를 새롭게 만들고, 기존 회로를 재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뇌는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평생 동안 변화 가능한 ‘살아 있는 회로망’이라는 뜻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가소성이 나이에 관계없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어떤 자극을 주느냐, 얼마나 반복하느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는 90세에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단순한 독서나 학습은 물론 낯선 환경 경험, 운동, 감정 자극, 창의적 활동 등도 모두 뇌를 자극하는 요소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뇌를 어떻게 쓰느냐다.

 

뇌는 방치하면 퇴화하고, 사용하면 강화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의 작은 실천이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 없이 길 찾기, 낯선 길로 돌아가기, 글씨체 바꿔 쓰기, 손으로 일기 쓰기 같은 행동은 모두 뇌 회로를 새롭게 연결해주는 ‘뉴로빅Neurobic’ 활동이다. 외국어 공부나 퍼즐 맞추기 같은 인지 자극 활동도 인지 기능을 활발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유산소운동은 뇌 혈류를 촉진하고, 명상과 요가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며, 숙면은 뇌세포 정리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하루 일정 시간 디지털 기기를 꺼두는 ‘디지털 다이어트’ 역시 뇌 기능 회복에 효과적이다.

 

 

 

슈퍼에이저, 뇌를 인식하는 삶

 

슈퍼에이저가 되는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특별한 유전이나 드라마틱한 기술이 아닌 ‘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뇌는 단순한 정보처리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고하고, 선택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다. 따라서 뇌는 방향성을 가질 때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 반대로 목적 없이 반복되는 자극과 소비에 익숙 할수록 뇌는 점차 무기력해지고, 퇴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는 사람일수록 뇌는 더 깊이 작동하고, 더 천천히 늙는다. 자기 인식이 있는 삶, 의미를 좇아 나아가는 삶은 뇌에 최고의 자극이자 훈련이다.

 

결국 슈퍼에이저란 기억력이 좋은 노인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목적을 통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다.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고, 손으로 일기를 쓰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는 일. 작고 단순한 선택 하나하나가 뇌를 깨어 있게 하고, 삶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우리가 오늘 뇌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내일의 삶이 달라진다. 슈퍼에이저는 ‘그렇게 살아온 결과’이자, 지금 이 순간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다.

 

 

글. 장래혁(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브레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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