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이제는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담는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SDV’이 있다. 특히 중국은 디지털 기술력과 자체 운영체제를 앞세워 테슬라를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고, 한국 역시 SDV 전환과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 SDV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핵심 키워드다.

자동차,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최근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일본 모빌리티 쇼, 오토 차이나 등 글로벌 모빌리티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는 단연 SDV다. 기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ver-the-Air Update, OTA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사용자에게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SDV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사용자 경험 향상. OTA를 통해 소비자는 최신 기능과 인터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처럼 앱을 설치해 기능을 추가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둘째, 차량 운영의 효율성. 전기차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의 보편화로 차량 내 연산량이 증가하고, 통합 제어가 필요해지면서 SDV 전환은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셋째, 새로운 수익 모델.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 지속적인 서비스와 콘텐츠 제공을 통한 수익 창출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기존 개별 전자제어장치ECU에 분산되어 있던 소프트웨어 기능이 점차 중앙 집중형 또는 영역별Zonal 구조로 통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차량 운영체제Vehicle OS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배선을 줄여 차량을 경량화하고 생산 및 유지·보수 효율을 높인다.
OTA 기반의 신속한 기능 개선과 리콜 대응 역시 제조사와 고객 모두에 이점을 제공한다. 이제 완성차 제조사들은 자동차의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자체 앱 생태계를 구축하고, 구독 경제 모델을 적용해 단발성 판매를 넘는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고 있다. 결국 자동차는 단순한 탈것이 아닌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SDV가 있다.

테슬라를 넘어선 중국의 도전
기존 차량의 사용자 경험은 대체로 인포테인먼트 중심이었다. 그러나 SDV 시대에 접어들며 사용자 경험은 차량 전체와 연결된 총체적 경험Holistic Experience으로 확장되고 있다. 차량에 탑승하기 전 스마트폰 앱으로 에어컨을 켜고 자동 주차, 배터리 교체, 디지털 비서의 일정 안내 등 차량이 제공하는 전반적 경험이 사용자 만족도를 결정한다. 대표 사례는 테슬라다. 테슬라는 자체 운영체제와 중앙 집중형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무선 업데이트, 자율주행, 스마트폰 연동 등 사용자 경험을 혁신해왔다. FSDFull Self Driving, 차량 호출 기능인 ASSActually Smart Summon 등도 OTA로 지속 확장되는 기능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도가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신에너지차 산업은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급성장했고, 초기의 과잉 공급과 경쟁을 정부가 품질 규제와 기술 고도화를 통해 정리하면서 프리미엄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의 ‘저가-저품질’ 이미지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력과 사용자 경험을 앞세운 프리미엄 브랜드로 탈바꿈중이다. 그 중심에는 니오NIO가 있다. 니오는 2023년 9월 ‘UX 정의 차량UX-Defined Vehicle’ 개념을 발표했다. 이 전략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고급화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제품과 경험 및 서비스를 통합한 장기 전략을 통해 브랜드 신뢰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를 강조하고, AI 기반 운전자 보조 시스템 NOPNavigate on Pilot, 자체 스마트폰, AI 비서 ‘노미Nomi’, 오프라인 공간 등 다각적 접근으로 사용자 경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차량 설계, 고객 서비스, 자율주행까지 전 생애 주기에 걸쳐 혁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AI 정의 차량’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떠오르며 효율성과 혁신, 사용자 중심성을 강화하는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SDV 경쟁, 변수는 중국?!
2023년 8월에 발표된 워즈 인텔리전스Wards Intelligence의 평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SDV 전환 수준에서 1위는 테슬라, 2위 루시드, 3위 리비안, 4위는 니오가 차지해 이들 네 기업은 ‘리더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평가 기준은 전략·연결성·전동화·포트폴리오 복잡성·재정 능력의 다섯가지 항목이며, 중국 기업으로는 니오 외에도 지커(6위), BYD(9위)가 상위권에 포함됐다.
2024년 9월에 발표된 ‘가트너 디지털 오토메이커 인덱스 2024Gartner Digital Automaker Index 2024’에서도 테슬라가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니오(2위), 샤오펑(3위), 리비안(4위)이 이었다. 이 인덱스는 소프트웨어의 수익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한 결과로, 두 조사 모두에서 테슬라가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약진 또한 눈에 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급성장은 단순한 기술력 향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 자동차위원회 위원장이자 전 크라이슬러 임원인 빌 루소Bill Russo는 그 배경으로 정부의 적극적 정책 지원, 민간의 강한 기업가 정신, 그리고 방대한 인터넷 경제 생태계를 꼽는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되며 중국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협력 모델 역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과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및 생산 역량이 결합되면 시너지는 극대화된다. 특히 SDV,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기술이 핵심이 되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이런 전략적 파트너십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은 자체 운영체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웨이, 니오, 샤오미, 지리자동차, 지커, BYD 등은 독자적인 차량용 OS를 개발·적용하며 생태계 확장에 주력 중이다. 특히 신생 전기차 제조사들은 설립 초기부터 테슬라 이상의 기능과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 아래 연구 개발, 영업, 고객 서비스에 집중해왔다. 니오의 ‘니오 라이프NIO Life’처럼 브랜드 자체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하려는 전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차를 넘어 플랫폼으로
자동차 산업은 이제 하드웨어의 성능 경쟁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기술력뿐 아니라 누가 더 유연한 서비스 구조와 사용자 중심의 수익 모델을 갖추는지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SDV 기술과 함께 오픈 생태계 전략을 공개했다. 핵심은 기술 플랫폼 ‘플레오스Pleos’를 중심으로, 차량 운영체제 ‘플레오스 비이클 OSPleos Vehicle OS’와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를 2026년 2분기부터 신차에 순차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차량용 앱을 개발하고 배포할 수 있는 오픈 생태계 플랫폼 ‘플레오스 플레이그라운드Pleos Playground’도 공개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SDV는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운영 구조와 수익 모델 자체를 바꾸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앱 생태계와 OTA 기반 구독 서비스를 통해 기존의 일회성 차량 판매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BMW가 열선 시트 기능을 구독 모델로 전환했다가 소비자 반발로 철회한 사례처럼 사용자 수용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참신하면서도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할 시점이다.
SDV는 이제 자동차의 기술혁신을 넘어 산업구조와 소비자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은 단순한 기술력보다 생태계 구성과 사용자 경험, 그리고 이를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연결하는 전략에 달려 있다. 누가 더 빠르고 유연하게 이 전환을 완성하느냐가 자동차 산업의 다음 승자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글. 차두원(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장, <포스트모빌리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