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나이가 뭐가 중요해”라는 말이 진짜가 되었다. 배움과 도전 앞에 주저할 필요 없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이제는 보편적 가치가 된 것이다. 나이와 세대를 기준으로 사람을 규정하던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 그 중심에 나이를 초월한 삶을 살고 있는 퍼레니얼 세대가 있다.
세대 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
대기업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개한다. 당시 기업의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로 나누고 각 세대의 가치관 및 행동 양식을 비교한 뒤 세대 갈등을 넘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는 “왜 우리기성세대만 그들신세대을 이해해야 하나요? 그들도 우리를 이해해야 하지 않나요?”, “위로부터 눌리고 아래로부터 치이는 낀 세대는 누가 챙겨주나요?” 같은 질문 겸 푸념이 단골로 등장했다.
“Z세대 뒤에는 누가 오나요?”라는 질문도 흥미로웠다. 돌아보니 MZ세대도 왔고, 알파 세대도 지나갔다. Z세대와 알파 세대를 합친 잘파 세대도 잠깐 등장했고, 알파 세대 뒤를 잇는 베타 세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때는 30년 주기로 세대를 구분했지만,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이제는 15년 주기로 세대를 세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논의들을 뒤로하고, 세대 담론에 신선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퍼레니얼 세대Perennial Generation가 있다. 퍼레니얼이란 원래 다년생식물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를 세대 개념에 적용해 ‘자신이 속한 세대의 가치관, 규범, 행동 양식, 생활 방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세대의 경계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퍼레니얼 세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개념은 2016년 미국 기업가이자 작가인 지나 펠Gina Pell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은 “사람들을 연령에 따라 범주화하는 세대 정의 대신, 태도와 행동을 기준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주목받았다.

세대 간 평화를 위한 퍼레니얼적 사고
퍼레니얼 세대 개념이 출현한 배경에는 다채로운 이름과 함께 쏟아지는 세대 담론에 대한 피로감이 자리한다. 기존의 세대 담론은 세대 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해왔으며, 이를 통해 세대 갈등과 충돌을 부각시키고, 공존보다는 경쟁을 부채질함으로써 상호 배타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례로 한국의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는 산업화의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기술 적응력도 부족하고 변화에 저항하는 구세대, X세대1965~1979년생는 고도 소비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낀 세대, Y세대1980~1989년생는 경제 위기를 경험한 불운한 세대로 반항적이며 시니컬한 세대, Z세대1990~1999년생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디지털 원주민으로 정의된다.
각 세대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이러한 논의는 결과적으로 세대 간 간극을 강화하고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각 세대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한계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의 정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대를 불문하고 자기 성장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성장이 승진이나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다면, 이제는 성장이 마인드셋의 변화와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 세대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 또 하나의 배경에는 초고령화가 자리 잡고 있다. 초고령화와 급속한 기술 발전에 따른 지식의 노후화가 결합하면서 기존의 ‘놀이-공부-일-은퇴’라는 순차적 생애 주기 모형은 그 유효성을 상실했다. 미국에서 18~89세 시민 5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59세를 기준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나이가 실제보다 열 살 이상 젊다고 느끼는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령에 따른 고정관념이 점점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평균 기대 수명의 연장은 우리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최소 5세대, 더 나아가 10세대가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가오는 시대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제한된 자원 배분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세대가 조화롭게 공존할 기회도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퍼레니얼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세대 간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해답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퍼레니얼 세대
퍼레니얼 세대의 특성은 다년생식물의 이미지와 겹친다. 다년생식물이 매해 새롭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듯, 퍼레니얼 세대는 연령에 얽매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놀라운 역량을 지닌다. 다년생식물이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해가는 힘이 퍼레니얼 세대의 최대 강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충만한 호기심, 오픈 마인드, 넘치는 열정과 활력, 타인을 향한 풍부한 관심과 애정, 창의력, 높은 신뢰와 신망, 그리고 팀워크에 최적화된 역량 또한 퍼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요소들이다.
퍼레니얼 세대의 마인드셋은 쉼 없이 배우려는 자세와 유연한 적응력, 세대 구분의 고정관념을 거부하며 다양한 연령대의 동료와 기꺼이 협력하는 포용력을 포함한다. 이들은 세대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용인하지 않는 성숙함을 지녔다. 퍼레니얼 세대의 가치관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동질성보다 다양성을 선호하며,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일터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술 친화적 태도를 내면화하고 있으며, 훌륭한 멘토로서 솔선수범한다는 점 역시 이 세대의 특징으로 평가된다.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수의 경력과 직업을 추구하며, 다채로운 경험속에서 다양한 성취를 이뤄내는 퍼레니얼 세대의 사고방식은 모든 세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대 청소년은 한 번의 입시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제든 진로를 수정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경력 전환의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반면 60~70대는 육체적 부담이 적은 직종으로 전환하거나 재교육을 통해 은퇴 시기를 늦추며 경제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평생교육과 평생직업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며, 퍼레니얼 세대의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퍼레니얼 세대는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상에 가깝다. 하지만 모두가 퍼레니얼 세대가 되는 건 아니다. 출생 연도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끊임없는 탐구열과 학구열, 놀라운 적응력을 기반으로 한 헌신과 몰입에서 비롯된다. 베이비부머부터 MZ세대까지 누구나 퍼레니얼 마인드셋을 내면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세대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발전을 지원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문화를 통해 풍성한 나무처럼 뿌리를 깊게 내리고,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글. 함인희(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