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에서 봐야 할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보고 싶은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짧고, 더 다양한 콘텐츠를 원한다. 효율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숏’ 문화생활은 이렇게 가성비와 시성비가 중요한 현대인에게 ‘숏확행짧지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짧아서 확실한 행복, 숏폼
‘짧아서 확실한 행복’, 숏폼 플랫폼 틱톡의 슬로건이다. 틱톡의 정체성은 해당 슬로건에 압축적으로 잘 녹아있다. 미드폼이나 롱폼 콘텐츠의 경우 여전히 제작에 대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틱톡은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제대로 파고든 것이다. 쉽고 빠르게 창작자로서 활약할 수 있다는 특징 덕분에 틱톡은 숏폼을 무기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 이후 인스타그램 릴스·유튜브 쇼츠 등 다양한 숏폼 서비스가 출시되었고, 일상을 파고들면서 숏폼 콘텐츠는 명실상부 대세가 되었다. 한국리서치가 2023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75%가 숏폼을 시청한 경험이 있고, 83%가 숏폼 콘텐츠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음악, 쇼핑 등 일상 전반에서 숏폼은 친밀하면서도 치밀하게 파고든다. K-팝 기획사들은 신규 앨범을 출시하면 숏폼 챌린지를 통해 신곡을 홍보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르세라핌의 ‘Smart 챌린지’는 아티스트 간의 협업, 다양한 커버 영상을 양산해내면서 효과적인 신곡 마케팅이라는 평을 받았다.
명품 패션 브랜드도 숏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찌 모델 챌린지#GucciModelChallenge가 대표적이다. 기존 명품의 경직된 이미지를 버리고 집 안의 다양한 옷으로 ‘구찌스러움’을 표현한 챌린지는 코로나19 시국에 폭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다양한 사람이 앞다투어 챌린지에 동참하면서 구찌는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조회 수가 2억을 넘는 엄청난 기록은 수치적 결과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상세한 제품 설명으로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온 홈쇼핑 업계도 숏폼의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1시간짜리 홈쇼핑 방송에서 상품의 핵심 내용만 담아 30초로 압축하는 ‘숏핑’을 지난해 6월 신설했다. 공영 홈쇼핑의 경우 1분 내외로 하이라이트 등을 담은 ‘숏찜’을 지난해 12월 오픈했다. 숏폼 포맷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는 기존 포맷 외에도 새로운 시도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대다. 앞으로 숏폼 포맷은 기업의 마케팅과 세일즈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 키워드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임 체인저의 가능성을 보여준 숏무비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그런데 이 공연, 어딘가 새롭다. 공연장이 아닌 실제 상점에서 연극이 진행된다. 여기에 기존과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공연 시간이 15분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대구 대명동 일대 상점에서 펼쳐진 연극 <대명동 스낵극>은 ‘15분 문화마실’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연극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영화, 애니메이션, 여행 등 우리의 삶 전반을 통해 ‘숏확행’이 유행하고 있다. 틱톡의 숏폼 콘텐츠에서 시작된 스낵 컬처의 유행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는 모양새다.
특히 2024년은 숏무비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비싸지는 푯값, 한국 영화의 낮아지는 점유율이라는 상황에서 숏무비는 묘수가 되었다. <밤낚시>, <4분 44초>와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이 대표적이다. <밤낚시>는 약 1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1,000원의 입장료라는 장점을 내세워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인상적인 점은 <밤낚시> 등 숏무비를 본 대부분의 관객이 같은 날 일반 영화까지 두 편을 본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숏무비가 기존의 영화 시장을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윈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2 네이버 인기 웹툰 <집이 없어>를 원작으로 한 8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 ©CGV
제작자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최근 스타 배우와 높은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바로 OTT로 공개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성비 높은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 한국 영화 시장의 새로운 시장을 연다는 측면과 가성비 높은 제작비라는 요소를 통해 숏무비는 한국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중국발 숏폼 드라마의 열풍, 숏폼 애니메이션 <씰룩> 등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숏확행의 유행 속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새로운 여행 트렌드, 퀵턴 여행
퀵턴 여행은 원래 승무원이 주로 쓰던 비행 용어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바로 출발하는 일정’을 뜻하는 이 용어는 이제 당일치기 등 짧은 여행을 주로 하는 여행객의 용어가 되었다. 특히 한국과 가격 차이가 나는 일본의 위스키 등 특정 상품을 사는 경우 그 차액만으로도 여행 경비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여행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 여행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로 휴가를 내지 않고 주말이나 쉬는 날을 활용해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이 늘었다. 빵집 투어대전, 해산물 먹방 투어속초, 닭갈비 투어춘천 등 특정 테마를 정해 압축적으로 떠나는 퀵턴 여행은 효율적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사람들의 특징과 연결된다.

시대의 키워드가 된 숏확행
숏확행과 컬처 스낵 키워드의 콘텐츠가 온라인 영상 플랫폼을 넘어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여행 등 오프라인까지 확장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효율적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경험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효율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성비’라는 단어가 있다.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 이 용어는 요즘 사람들의 특징을 요약해 설명해준다. 영화, 드라마, 여행 등 모든 경험이 시성비가 높아야만 이용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둘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 Z세대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장비를 자연스럽게 활용해 왔다. 디지털 기기의 특징에 따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다. 이러한 특징에 맞닿은 것이 바로 틱톡 등 숏폼 콘텐츠다.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곧바로 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해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숏확행이라는 특성을 대중문화, 여행 등 일상 전반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짧고 강렬하며 확실한 행복이라 할지라도 주의해야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다. 숏폼을 반복 시청할 경우 결국엔 강한 자극에만 반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숏폼을 잘 즐기려면 절제와 선택이 동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통해 요약된 드라마 정보를 보고, 그중 선택한 드라마만 롱폼 형태로 소비하는 것도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또 숏확행의 유행 속에서 영화, 연극, 여행 등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문화생활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절제와 선택을 통해 일상과 문화생활에 효율적으로 적용해 나간다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숏확행의 유행은 결국 나만의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니 말이다.
글. 선우의성(유크랩 대표, <대박나는 숏폼 콘텐츠의 비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