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
넷플릭스가 글로벌 OTT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최근 가장 주효했던 전략으로는 ‘오리지널 콘텐츠 강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역시 ‘오징어게임’을 꼽아볼 수 있는데요. 이 콘텐츠는 글로벌 콘텐츠 제작비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편(약 253억 원)에 속했지만, 이 작품이 공개된 2021년 3분기에 넷플릭스의 신규 가입자 수는 438만 명이 증가했고, 주가도 약 한 달 만에 약 17%가 상승하는 등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넷플릭스의 내부 문건을 인용해 오징어게임의 가치가 9억 달러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됐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징어게임 공개 이후 넷플릭스 주가 추이 (출처 : 인베스팅닷컴, 편집 : 이재훈)
이처럼 OTT 역사상 가장 큰 성공으로 기록된 오징어게임 뒤에는 흥미로운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을 2008년부터 구상했다고 하는데요. 잔인한 묘사와 극단적인 소재로 인해 10년이 넘도록 제작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품고 있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이 작품의 잠재력과 가치를 알아봐 주었고 적극적인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한 것은 아닙니다. 넷플릭스 초기에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성장했지만, OTT 시장이 확대되면서 디즈니와 같이 자체 콘텐츠 IP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점차 자체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넷플릭스에게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의 필요성을 촉진시켰고,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글로벌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한국의 콘텐츠라 할지라도 잠재력만 있다면 기꺼이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결국 오징어게임과 같은 큰 성공을 이루었고,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가 모두 윈윈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무신사의 중소 규모 브랜드 발굴 및 지원 전략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을 자세하게 분석해 본 이유는 최근 무신사가 실행하고 있는 전략이 이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무신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을 지닌 중소 규모의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 육성 전략은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로 플랫폼과 브랜드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목표를 지향하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소 브랜드 생산 자금 지원 2,000억 돌파
무신사는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입점 브랜드를 위해 생산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2015년부터 이어진 누적 생산 자금 지원은 2023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2,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중소 브랜드가 안정적으로 생산 및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음 시즌 생산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프로젝트로, 패션 산업 특유의 선생산 후판매 구조를 반영한 것입니다.
무신사 누적 생산 자금 지원금 추이 (출처 : 무신사 뉴스룸)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받은 브랜드들은 매출 증가로 보답했습니다. 2022년, 생산 자금을 받은 브랜드의 무신사 스토어 거래액 성장률은 전년 대비 80% 매출 성장률을 보였으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브랜드는 최대 8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참여사 중 과반이 5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2) 글로니, 무신사 라이브 4시간 만에 매출 3억 달성
글로니는 블로그 마켓을 시작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며, 브랜드 론칭까지 이뤄낸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브랜드 특성에 따라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했으나, 대중적 인지도는 이제 막 쌓아가는 단계에 있었는데요. 무신사에 입점한 뒤 이러한 약점을 하나둘씩 지워나갔습니다.
무신사 라이브에 출연한 최제인 대표와 방송 후 무신사 실시간 랭킹에 오른 상품들 (출처 : 무신사 뉴스룸)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그동안 제작하지 않았던 클래식 라인을 무신사 라이브에서 판매한 것입니다. 글로니의 최제인 대표조차도 그동안 판매해 본 적 없는 기본류 제품이라 큰 자신이 없었지만, 약 4시간 동안 진행된 무신사 라이브에서 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방송 종료 후에도 관련 상품이 무신사 랭킹에 오르며 후속 판매가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성공 뒤에는 글로니의 잠재력을 일찍이 인지한 MD의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무신사의 MD들은 경쟁사 대비 업계에 특화된 잠재력 있는 브랜드 발굴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니와 같은 유망한 브랜드를 자사 플랫폼에 빠르게 입점시키고 라이브 기획을 포함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세일즈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는 중소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패션 업계 선순환 생태계 조성
무신사의 중소 브랜드 육성 전략은 단순한 생산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동안 패션 산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쌓은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패션 전문 벤처 투자 기업 무신사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자금 조달을 비롯해 브랜딩, 운영, 마케팅 등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신사 파트너스의 피투자사 지원 범위(출처 : 무신사 뉴스룸)
이들은 일반 투자사와 다르게 피투자사의 성장을 돕는 기업형 벤처 캐피털로, 동반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적은 지분율을 유지해 피투자사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상생 관계를 만들고자 시드 단계부터 시리즈A·B·C 등 초기·중기에 걸친 투자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무신사 파트너스는 피투자 브랜드의 경영 전략 수립 조언은 물론 비즈니스에 필요한 데이터를 점검하고 관리 체계 구축하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재무 및 회계 시스템 개발을 통해 패션 비즈니스의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컨설팅을 통해 아이디어와 상품력은 있지만, 경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양한 브랜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패션 업계 선순환 생태계 구조 (출처/편집 : 이재훈)
이처럼 무신사는 ‘생산 자금 지원’, ‘무신사 파트너스’와 같은 전략을 통해 중소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며, 이를 통해 플랫폼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고, 건강한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무신사의 전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무신사가 온라인 패션 커머스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음에도, 패션 업계는 여전히 국내외의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와 타깃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주요 판매 채널을 선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판매 채널과 그 비중은 시장 점유율이 높은 대기업의 유통 채널로 집중되기 쉽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기업의 채널과 협업하는 것이 세일즈나 마케팅 등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넷플릭스와 무신사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강화해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활용했습니다. 반면, 무신사는 커뮤니티로 시작해 초기에 주목 받지 못했던 ‘온라인’ 패션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오리지널 콘텐츠’ 육성에 집중하며 점유율을 확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이 다른데요. 넷플릭스는 높은 시장 점유율 덕분에 오리지널 콘텐츠 개발에 있어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반면, 무신사는 제한된 자본력으로 브랜드 육성 전략이 쉽지 않았음에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무신사 성장세 (출처 : 기사 취합, 편집 : 이재훈)
특히, 패션 업계는 다른 산업에 비해 ‘선망성’, ‘브랜딩’이 더욱 중요한데, 무신사가 지속적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한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차별화를 만드는데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략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중소 브랜드를 지원하는 것은 즉각적인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 둘 성공하는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플랫폼의 신뢰도가 상승하고, 무신사와의 파트너십이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 확립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들을 유치하기 쉬워지며, 이는 플랫폼으로서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CEO는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공개를 앞두고 방한한 자리에서 향후 4년 동안 한국에 약 3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발전에 기여하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신사도 패션 시장의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며, 플랫폼-브랜드-소비자 간의 지속 가능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데 집중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Tech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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