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라는 최전선의 브랜드 백화점
지난 주말, 뉴진스의 새로운 노래 두 곡이 공개 되었습니다. 아마 이 글이 게시될 때 쯤이면 틱톡은 물론이고 온갖 쇼츠와 릴스에 Super Shy의 커버 댄스가 잔뜩 도배되어 있으리라 예상되는데요. 뉴진스가 지난 여름 어떻게 음악 시장을 공략했고 이윽고 파괴했는지는 많은 텍스트나 영상에서 많이 보셨을테고요. 또 그런 해석과 상관없이 몸소 느낀 팬들도 많을 겁니다. 대중 문화로서 뉴진스 의미를 차지하고도, 브랜드로서 뉴진스를 학습할 요소는 무궁무진 합니다.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든
상품인데 아무렴
할 수
있는 좋은
건 다
부어 넣지
않겠냐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하게도
다 부어넣을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다 부어
넣는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음악적인, 그리고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문화적인 부분은 생략하고 브랜드로서 뉴진스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하여 '상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트렌드세터의 정의.
앞서 뉴진스의 회사인 어도어(하이브 산하)의 민희진 대표는 몇몇 인터뷰에서 '정반합'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컨대 작금의 SM엔터테인먼트(민희진 대표의 전 직장이기도 하지요)식으로 제시하는 아이돌 컨셉에 이제 '반'할 상품을 대중은 원한다는 이야기인데요. 하지만 사실 트렌드라는 것은 이 파도가 왔으니까 다음은 이 파도가 올거라는 단순한 패션 경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트렌드를 잘 캐치하는 사람들은 마치 어떻게든 왔을 유행의 파도를 먼저 잘 구현한 사람으로 비유되기 쉬운데요. 제가 생각하는 트렌드세터란, 특히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결국 자신의 미적(예술적) 지향점에 얼마나 대중의 unmet needs를 잘 융합하느냐의 일로 정의됩니다. needs를 충실히 구현해내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의 좀 더 나은 것이 나올 뿐이지 소위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섬세하고 강력한 디테일링으로 unmet needs를 구현해내고 그것이 적확하게 대상에 꽂혀 들어갈 때 '새로운' 트렌드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특히나 민희진 대표는
기존 거대
기획사로 구분되는
회사들의 대표들이
가진 특정
음악에 관한
적극적인 편향
배경이 없습니다. 양현석 프로듀서가 원하는
힙합의 그것이나
유영진 류로
대표되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아이돌
음악 성향이나
세계관, 박진영 프로듀서
역시 자신의
음악 성향에
예리한 대중성의
요소를 부여합니다. 민희진 대표는 뮤지션
출신이 아니고
디자이너 출신입니다. 음악적으로 기어이 구현해야
할 자신의 '류'가 존재하지 않았죠.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저 프로듀서들의 상품보다도 추구해야 할 음악적 성향 또는 선택이 자유롭고 또 뮤지션으로의 자아실현 대신 그 자리에 대중의 unmet needs를 훨씬 강력하게 채워넣기에 유리합니다. 민희진 대표는
오히려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부터 강조해왔지요. 필시 그 음악은
자기 고집에
의한 음악이
아니라 unmet needs를 반영한 '음악'일 겁니다. (needs와 unmet needs의 차이는
이러합니다. - 링크)
새로운데 익숙한 것, 또는 익숙한데 새로운 것.
민희진 대표는 추구해야 할 본인의 음악적 성향이 없었기에 오히려 언젠가는 후져질 수 있는 몇몇 프로듀서들의 한계가 사라졌습니다. UK개러지+R&B, 드럼앤베이스, 저지클럽 등의
장르적 접근은
전세계적으로 최전선에
있는 음악들과
인터넷 도래
전 가장
강력하고 커다란
대중 문화를
경험한 80세대의 경험을
절묘하게 엮어
냅니다. 같은 하이브
계열의 아이돌인
르세라핌에서도 이런
음악적 공략은
보입니다. 이들의 전략
곡들은 현재
라틴 씬에서
가장 최첨단의
라틴 음악으로
만든 것이죠. 북미나 남미 쪽의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결과로 사려됩니다. 음악적으로 르세라핌이 인구로 대비되는 시장을 공략했다면 뉴진스는 시장을 넘어선 '세대'를 공략합니다.
국가나 인종에 따라
음악을 캐치하는
성향은 조금씩
다릅니다. 아시안은 주로
멜로디 위주로
음악을 먼저 '인식'하고요. 북미는 비트를 위주로
음악을 우선 '파악'합니다. 많은 한국의 대중들이
비트나 구성보다
멜로디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쉽게
파악하지 못
할 뿐, 왠지 모르겠는데 '익숙하고 듣기
좋은' 이유는 오래
전에 자신이
가장 밀접하게
들었던 음악들이었기
때문이죠.
파워퍼프걸. 낡고 오래된 칼을 갈아 가장 예리한 무기로 사용합니다. 돌고래유괴단과의 뮤직비디오도 Kpop 비디오로는 혁명적이었지만 'new jeans' 뮤직비디오도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new) 아이캔디가 가득합니다. <출처 - newjeans의 new jeans 뮤직비디오 중>
이번 new jeans 곡의 뮤비에는 파워퍼프
걸이 나옵니다. 8비트, 16비트 게임에서 3D로 상승하며
변화하는 비주얼이
모두 들어가
있죠. 단지 이
뮤비 뿐
아니라 뉴진스가
사용한 무기는
모조리 80년대 생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세대가 뉴진스의 1차 타깃이었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뉴진스가 '그때의 그것들' 또는 '그것들의 공식들'을 그대로 사용한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시 새롭게 만들어냈죠. 당연히 옛것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겠다고
세상에 없던
것을 발명하는
것보다도 옛것을
더 세련되게
재창조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unmet needs에 대한
어도어의 횡보는
확고해보였습니다. 80년대 생들에게
이 멜로디, 이 비트, 저 춤선, 저 그루브... 기억 속에
익숙한 것들을
모조리 호출해내죠. 잊고 있던 자신의
추억 속
최애의 것들을
가장 최신의
세련된 아이돌이
마치 자기
것마냥 즐기면서
선보인다? 이건 뭐랄까
상대방의 어릴
적 이야기를
미리 다
듣고 블라인드
데이트에 나선
상대나 다름
없습니다.
새로운 것의 정의가 아니라 올드한 것의 정의를 내리다.
이 모든 일련의
전략들이 단순히 '레트로' 유행에 편승하거나 단순한
추억팔이 수준일
리 없습니다. 이것은 가장 새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즉, 2000년대 생들과 그 이후 세대에게 주효해야만 합니다. 아니면 복고 열풍의 원오브뎀으로 끝날 일이죠. 돌아왔지만, 그래서 뉴진스의 1차 타깃은 Z세대입니다. 이들에게 후져보였다간 그 다음 전략의 챕터 같은 건 없습니다. 뮤직비디오 속
파워퍼프 걸을
밀레니얼들이 보고
반가워하기 전에 Z세대가 이게 쿨하다고
느껴야하는 것이죠. 그들이 쿨하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이어서 핵융합까지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이 80세대(기성세대)라는 매개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MZ라는 유니콘'에서 말한
것처럼 밀레니얼과
젠지는 다른
종의 동물
마냥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도어는 어렵지만 절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죠. 나름대로 민희진 대표는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아슬한 게임의
동력으로는 충분히
작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치마에 가까운 넓은 팬츠나 철 지난 스타일의 그래픽이 담긴 티셔츠, 거대하고 키치한 액세서리를 하더라도 이제 그들은 힙합니다. 말한대로 이 힙함은 밀레니얼이나 X세대 같은 사람들의 느낌이 먼저가 아닙니다. Z세대의 전언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이 세대 간의 핵융합에서 가장 코어에 있는 건 Z입니다. 그래서 단지 레트로 일환의 공포탄과는 다른 것이죠. 레트로의 코어는 7080세대이거든요.
전세계 팬들에게 이말년이 누군지 찾아보게 한 뮤직비디오. OMG 비디오는 그 안에 참으로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습니다만 특히나 이 마지막 쿠키 영상으로 뉴진스는 기존 아이돌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듯 했습니다. <출처 - newjeans의 OMG 뮤직비디오 중>
뉴진스는 여타의 걸그룹처럼 '아는형님'과 같은 TV프로그램에 나가서
틱톡조차 해
본 적
없는 아저씨들의
농담 따먹기를
맞춰주며 시청자들에게
세대를 아우르는
모습 같은
것을 보여주는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7080세대는 그런
올드한 포맷의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이돌이 재롱을
펼치는 것을
즐거워할지 몰라도 Z세대는 그것을 즐거워하지
않을테니까요. 아니 그런 TV조차 보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뉴진스는 간혹
말주변이나 예능감이
좋은 몇몇
아이돌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이들'이어서 리얼리티와
같은 포맷에서는
많은 것이
어색하고 서툴러
보입니다. 자체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스스로 미디어화하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들은
자신들만의 콘텐츠
카메라 렌즈
안에서만 비칩니다. 자신들만의 놀이터가 아닌
곳에서 이들은
어색하기 그지
없지요. 어울리지 않는
거죠. 그게 '아직 어려서'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역시나 위와
같은 이유로
계획된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진스가 데뷔했을 때
스커트 안으로
길게 내려
온 레깅스
패션을 보며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염없이 짧아지고 있던
여자 아이돌들의
스커트 아래로
그들의 속바지
역시 하염없이
짧아지던 때였습니다. 간혹 해외 페스티벌
무대라도 간다치면
쿨하지 못
하게 속바지를
입는 아시안
스타로 보이고
싶지 않던
여자 아이돌들은
한국 무대에서와는 '다른 수준'의 과감한
패션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뉴진스는
아예 대놓고
쇼츠를 치마
보다도 더
길게 내려
입고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런 패션은
이미 몇몇
패션 브랜드에서
실제로 선보이고
있는 스타일링이기도
했습니다만 뉴진스의 긴 쇼츠는 일종의 메시지로 보였습니다. 눈속임일 뿐인 짧은 치마로 판타지를 사겠다는 문화와 결별하고, 기존의 아이돌과 선을 긋겠다는 단호한 의지로까지 보였으니까요.
통상적인 섹시한 컨셉으로
어떻게든 치명적임을
강조하거나, 교복으로 대표되는
귀여움과 깜찍함을
표방하는 이
모든 판에
박힌 컨셉과
이미지들이 뉴진스를
보고 나니
참으로 올드하고
후진 것으로
보였던 겁니다. 물론 뉴진스도 교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달랐죠. 기존에 다른
여자아이돌들이 청순함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컨대 청순함과 깜찍함이
아니라 순수함이나
향수의 감정이
우선이었죠.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새롭다'라고 생각하거나 감탄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다름과 새로움을 게으르게 구분할 뿐더러 단지 좋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동일시하는 경우도 많지요. 정말 새로운 것은 그것을 본 순간 다른 것들이 올드한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뉴진스는 이러한
징후를 선사했습니다.
게이, 십대, 그 다음은 세상이 원한다.
뉴욕을 중심으로 네
명의 전문직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드, 섹스앤더시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사만다의 직업은 PR전문가입니다. 그녀가 극 중에서
모델계로 발을
들인 몸
좋은 어린
남친을 앱솔루트
보드카의 커버
모델로 세우고
이 파격적인
포스터를 각종
버스 정류장은
물론 브로드웨이
전광판에까지 올리죠. 하지만 이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여타의 섭외
연락도 오지
않아 실망스럽고
조급한 마음에
모델 남친이
사만다에게 토로합니다. "게이들이나 길거리의 포스터를
뜯어갈 뿐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러자 사만다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죠.
"자기야, 게이, 그 다음은 십대 소녀들, 그 다음엔 세상이 자길 원할거야."
여전히 근심어린 표정의 남자 뒤로 버스 정류장 앞의 포스터를 본 10대 소녀 무리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오면서 에피소드는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