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ENFP후배에게 글쓰기를 코칭하는 과정을 날것으로 담은 연재물입니다.
P님의 세 번째 글
나와 남을 돕는, 묘한 기브 앤 테이크
살면서 성격검사, 두뇌유형검사 등 내 성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검사를 네다섯 번 정도 해본 것 같다. 검사 결과 중 항상 나오는 것 중 하나는 ‘누군가를 돕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추천 직업군 중에 ‘사회복지사’, ‘상담사’가 나오곤 했다.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자처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는 나에게 잘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 전, 학교 취업지원센터에서 취업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차분하고 친절하며 소통을 잘하는 것 같다며 비서직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기업교육회사의 인턴으로 일했을 때에도 마지막 면담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일은 그의 일이 더 잘 되게 하는 보람도 있고 그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나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직업이라는 점이었다.
어릴 적 내 장래희망은 아나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를 맡아, 교실마다 하나씩 있는 큰 TV에 내 얼굴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아나운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교 교내 아나운서로 학교 캠퍼스의 스피커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건 정말 짜릿한 일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20대 초반부터 줄곧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리포터 경력도 쌓았다. 교환학생 시절에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교양 과목으로 성악을 배워 공연을 했다. 평화방송 주관 성당 노래자랑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타인을 돕는 것을 선호하고 잘 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그에 국한된 직업을 갖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런 앞에 서기 좋아하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지금은 교육담당자로 3년째 일하고 있다.
“교육이 잘 맞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었다. 일하는 동안 시간이 빨리 가면 잘 맞는 걸까? 일하는 것이 괴롭지 않고 재미있으면 잘 맞는 걸까?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래도 잘 맞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타인에게 유익한 내용을 제공한다는 보람과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희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담당자는 앞에 나서는 일이 많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그래도 이 직무가 재미있는 점은 직원들 앞에 나와 교육을 진행하고, 사내강사로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교육 제작물 등을 직원들에게 보이고 알리는 것 또한 나에게는 흥미롭고 짜릿한 일들이다. 교육 직무는 흥미로운 일임과 동시에 어쨌든 직원들을 돕는 의미의 일이다. (바빠 죽겠는데 교육을 들어야 하는 직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코웃음을 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영어의 education과 프랑스어의 é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e’의 ‘밖으로’와 ‘ducare’의 ‘끌어낸다’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누군가를 돕기를 좋아하는 성향도 갖고 있다. 이것은 물질적으로 돕는다는 의미가 아니라(그럴만한 물질도 없다) 누군가에게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힘을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제공하는 교육을 통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느꼈다’ 거나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교육후기를 보면 기분이 정말 좋다. 어쨌든 내가 기획한 교육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건 나에게 정말 보람찬 일이다. 덤으로 교육 대상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다른 업무로 연락을 하게 될 때도 한층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로 나는 그래도 교육 직무가 잘 맞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을 하는 의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일의 의미를 따지자면, 나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이 중요한 것 같다. 남을 돕는 것 같지만 내가 얻는 것이 더 큰 묘한 기브 앤 테이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