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까지 함께 일하던 구성원과 복도에서 마주친 A 팀장. 반가운 마음에 불러 세워 질문합니다.
A: “오랜만이네요~ 옮긴 팀에서는 좀 어때요?"
B: “네, 충분히 배려해 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A: “다행이네요...”
그러고는 딱히 할 말이 없어진 A 팀장.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최근 ‘커뮤니케이션’ 강의 때 들었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다시 대화를 이어갑니다.
A: (대화를 잘 하려면 질문을 하랬지) “아 참, 둘째 아들은 잘 크고 있어요?”
B: “아... 저 쌍둥이로 딸만 둘인데요... 하하”
A: “맞다 맞다. 내가 잠시 헷갈렸네... 허허... 이제 몇 학년이지?”
B: "아직 학교는... 이제 5살 돼요. 말씀처럼 빨리 좀 컸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몇 번의 어색한 질문이 오간 후, 대화는 끝이 납니다.
이 소통, 왜 이렇게 됐을까요? 사실 A 팀장의 대화 스킬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알맹이’가 없었다는 점이죠. 사람들이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소통을 ‘스킬’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질문법을 공부하고 경청의 원리를 배우곤 하죠. 이런 것들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앞서 준비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과연 뭐가 필요할까요?
상대에 대한 관심
‘실리콘밸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IT, 신기술, 높은 연봉, 치열한 경쟁 등 다양한 단어가 떠오르실 겁니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수많은 기술들이 나오는 그곳,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 구성원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는데요. 바로 이겁니다.
Are you happy?
그냥 의례적으로 ‘괜찮아?’라고 묻는 게 아니라. ‘Really' happy 한 지를 계속 묻고 또 묻는 게 이들의 문화라고 하네요. 이유가 뭘까요? 리더들이 착해서? 아닙니다. 그게 조직의 성과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2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 질문을 통해 ‘조직 생활에서의 행복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팀 동료와 마찰은 없는지, 다른 프로젝트 리더와의 갈등은 없는지, 혹은 업무량이 너무 많아 허덕이고 있진 않은지를 ‘행복한가요?’라는 질문 하나로 파악해 볼 수 있는 거죠. 이렇게 파악된 정보를 토대로 리더는 조직 내 갈등 해결에 나설 수도 있고, 업무 재분배 등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구성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 이슈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 있었다면, 혹은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자연스레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해. 회사에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일에 지장 주지 마’.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습니다. 회사는 나에게 급여를 주는 대신, 조직 성과 창출에 기여할 ‘시간’을 산 것이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람'이기에 공과 사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간밤에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다녀온 부모가 출근 후에 아이에 대한 걱정을 싹 잊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더 나아가 조직은 구성원 개개인의 상황, 거창하게는 ‘행복’을 챙겨야 합니다.
리더님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지금 우리 구성원의 가장 큰 고민은? 최근 뭘 할 때 가장 즐거움을 느꼈지?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면, 더 노력하셔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소통의 시작은 ‘관심’입니다.
문제 상황에 대한 호기심
상대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항상 그렇진 않습니다. 앞서 예를 든 상황으로 설명해 볼게요. 간밤에 아이 때문에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구성원. 이 얘기를 들은 당신의 반응은?
“어휴, 진짜 놀랐겠네. 우리 아이도 그 맘 때 응급실 몇 번 갔었는데,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더라고. 응급실 가 봐야 해 주는 것도 없고..."
혹시 이런 류의 대화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 얘기’를 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데 진짜 소통을 하고 싶다면, 내 얘기는 접어두고 이렇게 반응하시면 됩니다.
“어쩌다? 많이 아픈 거야? 지금은 어때?”
우리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정말 ‘궁금할 때’죠. 얼마나 아픈지, 아이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 궁금하면 묻게 됩니다. 그래서 소통이 되려면 경청 스킬을 발휘하기 이전에, 상대가 가진 문제에 대한 호기심이 필요한 겁니다.
조직에선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리더들이 구성원의 문제 상황에 호기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구성원에게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라고 하거나 ‘나는 더 힘든 일도 많았어’라는 꼰대 같은 잔소리만 하게 되죠. 왜 힘든지 진심으로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안 들어도 알 것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냐고요? 네 물어봐야 합니다. 상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맥락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이를 모른 채 대화를 시도하면 소통은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별문제 아닌 것 같은데 왜 힘들어할까?’, ‘점심시간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사라지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처럼. 호기심이 생기면 판단하지 말고 일단 물어보세요. 그리고 내 예상과 다른 답변이 나오면 그에 대해 더 깊이 물어보세요. 작은 호기심 하나가 대화를 이어주는 큰 물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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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도를 충분히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힘듭니다. 나에 대해 오해하며 반발하는 상대와는 마주 앉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죠.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설득적으로 말하기 위한 기술은 뭔지,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화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 하지만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나의 마음입니다. 상대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접근한다면, 비록 그 스킬이 서툴더라도 나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 것입니다.
>> HSG 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김한솔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