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난 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
오픈런 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유명 명품을 살 때, 신규 출시되는 애플 제품을 살 때 또는 한정판으로 나오는 나이키 운동화를 살 때 오픈런을 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본 적은 있습니다. 문이 다 열리지도 않았는데, 문 아래로 비집고 들어가며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열정 대단하다’ 생각했죠.
근데 2개월 전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티셔츠를 사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슈프림과 같은 티셔츠냐고요? 아닙니다. 과일 이미지가 프린트된 티셔츠입니다. 근데 여기 콘셉트에 진지합니다.
진짜 과일을 팔듯이 빨간색 바구니에 과일 티셔츠를 올려둡니다. 골판지 또는 박스를 찢어서 투박한 손글씨로 티셔츠를 소개합니다. 지나가다 얼핏 보면 ‘저기 여기 딸기는 얼마에 팔아요?’라고 불어볼 정도죠. 온라인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만 그리고 판매 장소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립니다. 그다음 어떻게 되냐고요?
간단합니다. 줄을 서면 됩니다. 티셔츠를 사러 오픈런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줄을 서면서까지 김씨네 과일가게 티셔츠를 사려고 하는 걸까요? 그깟 티셔츠 한 장이 어떻게 MZ 세대의 인기를 끄는 티셔츠가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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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부터 좋아해야 팔립니다.
저는 만화 중에 슬램덩크를 정말 좋아합니다. 누군가 인생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슬램덩크가 나올 정도입니다. 뭐랄까 인생을 배운다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여러 대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강백호가 시합 중에 다친 뒤 일어나서 채소연을 앞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큰 부상을 입은 뒤 채소연을 앞에 두고 하는 강백호의 대사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채소연 때문입니다. 채소연을 좋아해서 농구를 좋아하는 채소연의 마음을 얻고자 농구를 시작합니다. 근데 어느새 농구가 좋아집니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됩니다. 그러니까 농구를 끝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게 된 겁니다. 강백호가 농구를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김씨네 과일 가게 시작은 5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플리마켓에 참여하면서부터입니다. 근데 알고 보니 9년째 티셔츠 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1~2년을 지속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무려 9년 동안 티셔츠를 만들고 판매한 겁니다.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티셔츠를 만들고 판매하는 게 좋았고 재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씨네 과일 가게를 이끄는 김도영 님은 2013년부터 *랩티(rap tee) 아티스트로 활동했습니다. 빈지노, 염따 등 힙합씬의 유명 인물로 티셔츠를 만들었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랩티 아티스트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결국 김씨네 과일 상품으로 나오게 된 겁니다.
*랩티: 허가를 받지 않고 팬들이 만드는 굿즈 티셔츠 같은 개념 (출처 디에디트)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은 좋아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채소연이 정말 좋아서 농구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농구가 정말 좋아서 심각한 부상에도 시합을 하겠다고 말하는 강백호처럼 말이죠. 그리고 꾸준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잘하려면 레퍼런스가 있어야 하는데, 레퍼런스는 꾸준히 할 때 생기기 때문이죠.
지금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또는 하고 있는 일을 ‘잘’ 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내가 먼저 그 일, 그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애정이 있어야 고민을 하고, 행동을 하며, 발전합니다. 시큰둥해서는 아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깟 티셔츠가 팔리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이 돼야 팔리기 시작합니다.
지난 글에 팔리는 콘텐츠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팔리는 콘텐츠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공감’입니다. 콘텐츠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근데 스토리 설명이 길어지면 사람은 흥미를 잃습니다. 공감은 이 스토리를 설명을 상당히 단축시켜 핵심 주제로 넘어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당근마켓 남편들’은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당근마켓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겪을 어색함, 가격 네고, 물건을 살펴보는 행동 등으로 가득하죠. 배경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콘텐츠에 집중하게 됩니다.
경영 저널리스트 데릭 톰슨은 《히트 메이커스》에서 히트하는 콘텐츠는 마야 MAYA: Most Advanced, Yet Acceptable 법칙을 따른다고 썼다. 히트하는 콘텐츠는 급진적이면서도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름’과 ‘공감’이다. 무조건 튄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책 /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에서도 설명하듯 히트하는 콘텐츠에는 공감이 필수적입니다.
김도영 대표도 공감에서 과일 티셔츠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티셔츠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과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품목 중 티셔츠에 새기기 좋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The JoongAng “싱싱한 키위 있습니다” 이 용달차에 요즘 MZ 난리 났다
저는 요즘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지역 시장에 가면 아직도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구니에 과일, 채소 등을 담아두고 박스나 골판지에 손글씨로 투박하게 가격을 적어놓은 장면입니다.
김씨네 과일 가게도 이와 같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원색 바구니에 과일 프린트가 잘 보이게 티셔츠를 접어서 올려두고 박스를 찢어 투박한 글씨로 키위, 하우스 딸기 등 써놓고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공감을 하게 됩니다. 티셔츠에 과일을 왜 넣은 거야?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됩니다. 공감이 됐기 때문이죠. 근데 한 가지 더 필요합니다. ‘다름’입니다.
김씨네 과일 가게는 달랐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 진열을 멋지게 해 놓고 판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온라인상에서 판매하지 않습니다. 다마스에 과일 티셔츠를 싣고 SNS 계정에(@waaaavyyy) 티셔츠를 판매할 일정과 장소를 올립니다. 오프라인에서만 살 수 있는데 기존의 오프라인과 다릅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와 기존의 판매 방식과 다르게 접근하니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콘셉트에 진심이면 팔리기 시작합니다.
콘셉트가 가진 뜻을 살펴볼까요? ‘어떤 작품이나 제품, 공연, 행사 따위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주된 생각’입니다. 정리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한 원천, 생각이 바로 콘셉트라는 거죠.
김씨네 과일 가게가 콘셉트에 얼마나 진심일까요? 멋있는 SUV에서 티셔츠를 빼내어 진열하지 않습니다. 택배 차량의 대명사, 이제는 단종이 돼버린 실용성의 끝판왕 바로 다마스를 끌고 다닙니다. 판매 장소에 도착하면 다마스에서 티셔츠를 꺼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빨간 바구니를 꺼내고, 그 위에 과일 프린트가 잘 보이도록 정리를 해서 올려둡니다. 박스를 찢어 그 위에 각 과일의 이름을 적습니다. 군데군데 풋! 하고 웃음이 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원하면 가지세요’ (가지 이름만 크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전단지도 동네 슈퍼에서 볼 수 있는 전단지처럼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과일 장수처럼 주머니가 엄청 많은 조끼를 입고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과일 가게입니다. 이처럼 콘셉트에 진심으로 하니까 브랜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진심 또는 진정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실행하는 곳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정성 있는 기업과 제품에 끌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찾기 시작했고, 무더위에도 줄을 서고, 오픈런을 하게 됐습니다. 팔리는 티셔츠가 됐습니다.
결국 스토리가 있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김도영 대표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김씨네 과일 가게의 인기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히 티셔츠를 하나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과정 자체를 경험으로 즐기는 것
The JoongAng, “싱싱한 키위 있습니다” 이 용달차에 요즘 MZ 난리 났다
누구는 ‘그깟 티셔츠’라고 할 수 있는 상품을 누구는 줄을 서며, 오픈런을 하며 삽니다. 왜 그럴까요?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에도 40분 넘게 줄을 서며 티셔츠를 사는 과정이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좋은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는 주변에 퍼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수천 년 전 종이도 연필도 없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았던 이유는 스토리 때문입니다. 모든 게 구전으로 전달됐죠. 과정 자체를 경험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좋은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김도영 대표가 9년간 티셔츠를 만들어 온 사람이며 동시에 랩티 아티스트입니다. 스토리 자체이죠. 다음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과일 가게로 접근했습니다. 스토리에는 공감이 필수적인데 공감할 요소로 가득한 과일 티셔츠죠. 마지막으로 재밌고 흥미로운 콘셉트를 갖고 있습니다. 다이소를 타고 누비고, 원색의 바구니에 티셔츠를 담아 팔고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깟 티셔츠를 사기 위해 오늘도 누구는 줄을 서고, 오픈런을 합니다. 결국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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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분들을 위한 오늘의 글 요약
1. 그 ‘무언가’를 좋아해야 합니다. 누구부터요? 바로 나부터 진심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고서 남을 좋아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2. 공감이 될만한 요소를 찾아야 합니다. 공감이 된다면, 사람들을 빠르게 몰입하게 됩니다.
3. 콘셉트가 있다면 진심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꾸준히 하면 사람들이 팬이 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