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 김초희의 매거진

나의 든든한 마케팅 자산이 되어준 '이 경험'

김초희

2020.10.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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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험한 ‘이것’을 내일 마케팅 재료로 쓰고 있어요

 

전략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역량,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활용한 컨텐츠 제작 능력, 광고 관련 자격증, 트렌드 캐치 능력, google analytics, adjust 같은 분석 도구를 다룬 경험 등. 마케터에게 요구되는 경험과 역량은 다양하지만 나는 “소비 경험”이야말로 마케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업무를 할 때만 해도 이 “소비 경험”이 아주 톡톡히 도움이 된다. 오늘의집 브랜드북을 기획하고 마케팅할 땐, 내가 책을 샀던 소비경험을 떠올렸다. 나는 책을 어디서 알게 되지?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인증을 보고, 친구가 추천해줘서, 서점에 갔는데 잘 보이는 매대에 메인 도서로 진열되어 있어서, 내가 팔로우하는 서점에 인기 도서로 소개되어서. 그 책을 더 사고 싶어진 이유가 뭐였지? 그 책을 사면 예쁜 컵을 함께 준대서, 딱 초판만 파는 도서라서, 초판은 특별한 띠지로 되어있어서, 작가의 친필 사인이 쓰여있어서.

 

프로모션 페이지를 기획할 땐, 내가 프로모션에 홀려 구매까지 한 경험을 떠올려본다. 아, 그때 A라는 브랜드에서 이런 프로모션을 했었지. 랜딩페이지 비쥬얼이 엄청 예뻤어. 인기 상품을 말도 안 되는 최저가에 내 놓고, 막상 들어가니 그 상품은 품절되었지만 다른 상품들을 둘러보다 보니 결국 2개나 샀었지. 기한이 딱 3일밖에 안 되는 스페셜 쿠폰을 주니까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서 샀던 기억이 나. 이렇게 소비 경험을 하나씩 꺼내어 답을 찾아본 경우가 많다.

 

그 순간엔 ‘그냥’, ‘좋아서’라는 이유로 물건을 산 경험이라도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것이 곧 나만의 마케팅 자산이 되어, 우리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터로 만들어준다. 소비 경험을 만들어야 하는 마케터가 소비 경험의 이유를 알고 경험을 설계하느냐, 모르고 설계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나에게 임팩트 있었던 소비 경험을 공유해본다. 왠지 언젠가 업무에도 써먹을 것 같은 포인트들이다. (철저하게 주관적이나 소비 경험을 나누면 굉장히 즐겁습니다 내 경험치가 두 배가 되는 느낌..!)

 

 

술담화 

술담화는 이색 구독 서비스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매달 전통주를 구독하는 서비스라길래, 당장 포털에 술담화를 검색했는데 "매달 찾아오는 인생 술"이라는 카피에 확 꽂혔다. 인생 술 찾기도 아니고 찾아오는 인생 술이라니! 이 9글자만으로 매달 돈을 지불하고 술을 배송받는 구독 서비스임을 단번에 캐치할 수 있음에 감탄하면서 결국 구독까지 했다. 

 

보름 정도를 설레면서 기다리고, 첫 구독 상자가 배송 왔을 때 그 경험도 너무 좋았다. 일단 구독료 39,000원을 내고 4병의 전통주와 간단한 스낵, 술 설명이 요목조목 적힌 가이드가 함께 왔는데 일단 가격적으로도 꽤 혜자스럽게 느껴졌고, 매달 특색 있는 술을 골라서 예쁜 선물 박스에 보내주니 마치 선물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마치 와인을 알아가듯, 전통주도 어떤 맛이 있는지, 어떤 음식과 페어링해서 먹으면 좋을지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선물 받는 기분이라 좋았던 술담화 소비!

 

 

구성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쉬어가기’를 할 수 있어 부담 없이 호로록 결제했는데 구독을 해지할까 말까 고민할 새도 없이, 벌써 11월 술담화 박스 예고가 인스타그램에 떴고, 나는 또 11월 박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재결제를...

 

 

월간 가슴

월간 가슴은 친구한테서 얘기를 듣고 알게 된 서비스다. 속옷 정기구독 서비스인데 일단 개념 자체가 새로웠다. 사실 첫 결제는 궁금함에 해봤다. 어차피 속옷을 새로 사야 할 때가 되었는데 처음 3개월은 9900원 할인가에 구독할 수 있대서, 새로운 소비 시도도 해볼 겸 결제를 했다. 

 

바로 10월 월간 가슴이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여니까 위에는 "가능하다는 믿음만이 불가능을 이길 수 있어"라는 앨리스 동화 속 한 문장이, 아래에는 FAQ, 카카오톡 채널 QR코드가 있다. 그리고 노오란 안내문이 있었는데 빽빽한 설명이 아니라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월간 가슴이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는지 친절하게 쓰여있었다. 패키지가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자엔 속옷과 함께 줄자 & 종이봉투가 들어있는데, 이게 정말 센스 있다고 생각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속옷을 살 때, 직원이 여성이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슴 사이즈를 재는 게 다소 민망할 수 있는데 월간 가슴은 이 포인트를 콕 찝어 그런 감정을 공감해주고 줄자를 넣어줌으로써 스스로 본인의 사이즈를 잴 수 있게끔 한다. 그리고 새로운 속옷을 샀으니 오래된 속옷을 버려야 하는데 그냥 쓰레기봉투에 넣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투명한 쓰레기봉투 안에 담긴 속옷이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간 가슴은 이 점을 또 콕 집어서 종이봉투를 하나 넣어주어, 속옷을 버릴 때 이 봉투에 넣어버리라고 커뮤니케이션한다. 정말 섬세하고 예리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월간 가슴은 정말 건강한 속옷 교체를 도와주고 있구나, 싶었다.

 

월간 가슴 첫 배송 받았을 때! 디테일이 너무 섬세했다

 

 

속옷을 입어보고 안내문에 적힌 QR코드를 통해 체크리스트, 실측 사이즈, 평가를 입력하면 이 데이터를 통해 "AI 로라"가 매달매달 나에게 꼭 맞는 속옷을 골라서 보내준다고 하니 참 재미있는 컨셉이다. 실제로 입력 정보를 보고 누군가가 제품을 셀렉해서 보내겠지만 "AI 로라"라는 캐릭터를 만듦으로써 내가 똑똑한 인공지능한테 관리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구독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니스프리

나는 이니스프리에서 모든 클렌징 제품과 모든 기초 화장품을 이니스프리에서 살 정도로 이니스프리 찐팬이다. 이렇게 이니스프리의 충성고객이 된 건 이니스프리 멤버십 제도 덕이 크다. 

 

이니스프리 멤버십 제도는 등급을 올리기에 허들이 굉장히 낮으면서도 혜택이 빠방해서 이 멤버십 혜택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어서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6개월 동안 20만 원만 쓰면 최고 등급이 되는데, 사실 이게 어렵지 않다. 클렌징 오일, 폼클렌징, 스킨, 로션, 크림 등 매일 쓰는 제품들은 거의 한 두 달이면 꼬박꼬박 사줘야 하니까. 그렇게 엉겁결에(?) 돈을 쓰면 최고 등급이 되는데 매달 멤버십 데이에 30% 할인을 해주고, 또 매달 언제든 쓸 수 있는 30% 쿠폰을 준다. 10만 원어치를 사면 3만 원이나 할인받으니 이 혜택이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또 오프라인 매장 경험도 재밌다. 피부테스트를 해달라고 하면 모공, 탄력, 수분 등을 측정해주는데 내 상태를 분석해주고 필요한 제품도 추천해준다. 제주맥주, 토이스토리같이 재밌는 브랜드 콜라보 패키지를 보는 재미도 있고, 유튜브 추천템을 엮어 매대를 구성하거나 계절에 맞게 피부 관리 제품들로 진열을 잘해둔다. 강남점에서는 내가 원하는 향과 원료를 조합하여 맞춤 로션을 만들 수도 있었고, 명동점엔 카페를 함께 운영해서 폭신폭신한 팬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 자연주의라는 브랜드 컨셉에 맞게 에코백, 손수건 등 굿즈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이 경험이 재밌어서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지만 굳이 매장을 찾아가는 편이다.

 

재밌었던 경험은 인스타그램에도 기록해둔다

어느덧 매달 매장에 방문해서 피부테스트를 받고 > 매달 30% 할인을 해주는 시크릿 쿠폰을 써서 > 기초 & 클렌징 제품을 잔뜩 사고 > 샘플과 포인트를 두둑이 받는 싸이클(?)이 만들어졌다.

 

 

 

아무튼 시리즈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출간하는 아무튼 시리즈. 한 작가가 시리즈를 연재하는 형식이 아니라, 매 편마다 무언가에 빠져있는 사람이 작가로 섭외되어 ‘아무튼 00’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낸다. 00에 들어가는 단어는 정말 무한한데, 떡볶이 / 순정만화 / 비건 / 피아노 / 달리기 / 양말 / 술 등 재밌는 키워드도 참 많다. 어떤 한 가지에 푹 빠져서 몰입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참 특별한데, 책 한 권으로 그런 사람들을 바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큰 매력인 것 같다.

 

 

분명 6권 샀는데 1권은 어딨더라...

 

이번에 벌써 33번째 아무튼 시리즈가 나왔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던 분이 쓴 책이라 안 그래도 흥미로웠는데, 출간 소식이 들리자마자 아무튼 시리즈이기에 바로 서점에 갔다. 주제가 무엇이든, 작가가 누구든 간에 <아무튼 시리즈>라고 하면 콜렉터 기질이 발동한다. 33권의 아무튼 시리즈 중에 6권을 소장하고 있다. 전권을 다 모으고 싶을 지경이다.

 

+ 각종 브랜드 체험 공간

번외로 돈을 쓰는 소비 경험은 아니지만 내가 꼬옥 시간을 들여서라도 하는 소비 경험이 있다. 나는 정말 웬만하면 브랜드 체험 공간을 꼭 가본다. 시몬스 침대의 성수 팝업 스토어, 타다 1주년 브랜드 전시회,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전시회, 공간 와디즈, 이니스프리 명동점, 제주맥주의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팝업스토어 등. 팝업스토어 형태든, 전시회 형태든, 상시 공간 형태든 브랜드 소식이 들리면 어떻게 해서든 가서 그 브랜드의 경험을 온몸으로 체험해보려고 한다.


 

브랜드마다 주는 오프라인 경험이 모두 색다르고 재밌어서이고, 언젠간 우리 브랜드도 오프라인 공간을 꾸미게 된다면 이때의 경험을 살려 정말 잘해보고 싶기 때문! 이번주엔 배달의민족에서 을지로10년후체를 출시한 기념으로 사진 전시회를 연다하고, 11월 초엔 이케아에서 성수에 이케아랩 공간을 연다고 하니 부지런히 찾아가봐야겠다. 여기까지가 나의 뜻깊었던 소비 경험이다. 여러 브랜드의 마케터들이 고민의 고민을 거쳐 설계한 이 경험을 곱씹어보고, 느껴보고, 살펴보면 미래의 내가 고민할 때 큰 힘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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