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생부터 2010년생까지, 10대와 20대 초반의 Z세대는 무엇을 읽을까?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 독서 시간은 준다. 10대 학생의 절반은 아예 책을 읽지 않거나 월 1권 이하의 독서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나머지 절반은 월 2권 이상 책을 읽는다.
Z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할 건 없다. 앞선 세대도 책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량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책 읽기 습관이 들지 않았고, 또 시간이 없어 책을 읽을 수 없었다고 그들은 답한다. 사실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은 Z세대 입장에선 똑같다. 그들도 습관이 들지 않았고,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Z세대와 전자책
한때 전자책의 출현은 도서 출판 시장을 황폐화할 도전이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소형 서점은 줄줄이 폐업했지만, 대형 서점 위주의 도서 출판 시장은 살아남았다. 물론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 전자책 시장은 전체 출판 시장의 5% 이내에 머물고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책은 매력이 있다. 상당히. 전기가 없어도 어디든 들고 갈 수 있으며, 구기거나 메모를 할 수 있다. 또 눈의 피로는 스마트폰보다 덜하다. 수집할 수 있고, 집을 장식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선물할 때도 좋다. 무엇보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책엔 물씬 묻어 있다.
그러나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에게도 그럴까? 그들이 10대와 20대 초로 자라고, 또 사회의 주축으로 진입함에 따라 출판 시장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을 판매하는 '리디'를 살펴보자.
삼성전자 사내벤처팀을 다니던 리디의 배기식 대표는 음악, 영상 등 대부분 콘텐츠가 디지털화되었지만, 책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남아있다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창업했다. 창업 11년 만인 2018년, 리디는 793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의 회원은 무려 381만 명이다. 플랫폼으로서 상당한 규모에 이른 리디의 성장세는 여전하다. 리디의 2018년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점유율은 47%다. 2500여 개가 넘는 출판사와 제휴를 맺었다.
2019년 10월, 리디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하나벤처스, 컴퍼니케이, 한국투자증권, 대성창업투자로부터 시리즈 E 투자를 유치했다. 330억 원 규모다. 이 투자 라운드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5500억 원이다. 벤처캐피털은 리디가 앞으로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앞선 투자 라운드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리디는 다양한 콘텐츠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아웃스탠딩, 라프텔, 책끝을접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세 콘텐츠 스타트업 모두 Z세대 등 젊은 세대를 타깃팅하고 있다.
과감하게 기사체를 버리고 짧은 문장과 이미지, 그리고 친근한 어투로 IT 업계의 소식을 전하는 아웃스탠딩은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독자 역시 다른 뉴스와는 달리 연령대가 어린것으로 알려졌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인 라프텔은 주요 시청자 자체가 Z세대다. 넷플릭스처럼 시청자의 취향에 맞게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는 라프텔은 '구독 모델'로 사용자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61만 명의 페이스북 팔로워를 둔 책끝을접다는 카드 뉴스 형식의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책을 소개한다. 영상 콘텐츠도 있다. 주로 흥미로운 소설과 웹툰 등을 소개하는 책끝을접다는 짧은 콘텐츠에 열광하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서비스는 책과 멀어진 Z세대를 다시 책 곁으로 다가서도록 하고 있다.
텍스트 vs. 이미지
Z세대가 활자를 싫어한다는 말은 절반의 사실이다. 누구나 활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텍스트'와 함께 했다.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생김으로써 인류는 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따위에 비해 문자는 보관하기도 편했고, 또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했다. '굳이' 문자로 변환하지 않아도 우리는 생생한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장용량은 방대해졌으며, 더 이상 비용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누구나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 촬영도 가능해졌다. 즉,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정보를 축적하고 전달하는 데에 장벽이 매우 낮아졌다. 문자라는 매개체의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다.
유튜브는 직관적이다. 눈으로 보면서 자막을 통해 읽기도 한다. 영상과 문자가 합쳐져 정보 전달성은 극대화됐다. 10대의 경우 한 달 동안 무려 31시간 이상을 유튜브에서 보냈다. 메신저에서도 텍스트는 자리를 이미지에 내어주고 있다. 카카오톡은 이모티콘 사업을 강화하고 있고,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애플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제로 텍스트'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트렌드는 Z세대가 이끌고 있다.
책과 오프라인
이미지 중심의 디지털 서비스가 확장되고 있지만, 한편에선 상반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디지털 네이티브 Z세대가 독립서점에 들르고, 또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또 즐기는 Z세대의 특징 때문이다.
독립서점은 패니니즘, 경제, 소설 등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소개한다. 규모는 작지만 취향을 저격한다. 우리나라에는 수 백 여 곳의 독립서점이 있다. 이 독립서점에선 북 토크, 워크숍, 공간 대여, 전시, 공연, 낭독회 등 다양한 활용이 펼쳐진다. 단순한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문화공간으로 진화했다.
독서모임은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트레바리 등 전문적인 모임 플랫폼을 통하기도 한다.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방식이 독서모임이다. 매달 두 번씩 모여 사람들은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직장인뿐만 아니라 학생 등 Z세대도 이런 모임이 관심거리다. 특히 이런 모임은 '느슨한 연대'가 가능하도록 한다. 관심사를 공유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이런 모임의 특징은 Z세대를 관통한다.
온라인 독서실
Z세대는 독서실마저 디지털화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는 독서실을 찾는다. 그런데 굳이 오프라인 독서실을 가지 않더라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Z세대는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준수하며 공부에 몰입한다. 앱과 인터넷을 통해 서로가 공부하는 모습을 공유한다. Z세대에겐 일상화된 '온라인 독서실'이다.
이 역시 느슨한 연대를 선호하는 Z세대의 특징을 반영한다. 오프라인 독서실 혹은 스터디가 부담스럽고 물리적인 제약도 있는 반면, 온라인 독서실은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이다.
방식이 바뀌었을 뿐
Z세대가 생각이 없다고?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똑똑하다. Z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로부터 직접 지식을 전수받지 않아도 된다. 방대하게 축적된 정보의 보고가 이미 유튜브와 페이스북, 그리고 구글에 존재한다. 누구보다 정보를 검색하고, 우열을 가리는 능력이 탁월한 Z세대는 일시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오류를 수정한다. 마치 린 스타트업과도 같다.
Z세대는 책을 적게 읽는다. 하지만 이는 전 세대의 문제다. 그런데 Z세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Z세대로부터 다른 콘텐츠를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