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이머시브의 매력은 관객이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며 이야기를 ‘나의 경험’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브랜드 역시 체험의 양보다 고객의 행동이 제품과 메시지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슬립노모어〉 공연 연습 | ©punchdrunk
지정 좌석도 없고, 티켓값은 16만 원이 넘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공연이 있어요. 2025년 서울 충무로 옛 대한극장에 문을 연 〈슬립노모어 서울〉이에요. 입구에서 소지품을 맡기고 하얀 가면을 쓰면, 수천 평 규모의 건물 안을 직접 돌아다녀야 해요. 대사는 거의 없고, 줄거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죠. 눈앞의 배우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놓치지 않으려 함께 뛰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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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시브(immersive, 몰입형) 공연이란? 관객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대신, 배우와 호흡하며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공연을 말해요. |
관객에게 이렇게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공연이지만, 반응은 뜨거워요. 초기 제작비만 약 250억 원이 들어간 〈슬립노모어 서울〉은 개막 첫 달 예매율 98%를 기록했어요. 더 흥미로운 건 이 공연이 등장한 시점이에요. 최근 국내 오픈런 공연 시장에서는 작품 수와 판매액이 모두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났어요. 판매액만 봐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 12% 감소했거든요.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덩달아 잘된 건 아니라는 거죠.
공연장 밖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보여요. 퍼즐을 푸는 게임으로 여겨졌던 방탈출에는 배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영화 속 세계를 실제 공간으로 옮겨놓은 콘텐츠도 생겼어요. 최근에는 브랜드 팝업에서도 방문객에게 미션을 주고 이야기에 직접 참여시키는 방식이 눈에 띄게 늘고 있고요.
편리하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인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행동을 요구하는 경험이 선택받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왜 편하게 보는 대신, 굳이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요?
요즘 방탈출은 ‘방’만 ‘탈출’하지 않아요
이런 변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방탈출이에요. 지난 10년간 방탈출이 달라진 과정을 따라가 보면, 국내에서 이머시브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도 알 수 있어요.
국내에 방탈출 카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15년 무렵이에요. 당시만 해도 방 안을 뒤져 열쇠를 찾고, 자물쇠를 풀고, 제한 시간 안에 빠져나오는 퍼즐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죠. 시간이 지나 2026년 기준 운영 중인 방탈출 테마가 약 2,000개로 늘어나면서, 업체들이 경쟁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문제의 난이도만큼이나 공간과 이야기가 얼마나 실감 나는지도 중요해졌죠. 공간은 커지고 세트와 장치는 정교해졌어요. 개별 문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데도 더 공을 들이게 됐고요.
여기에 실제 배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문을 열면 기다리던 배우가 먼저 말을 걸고, 내 행동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종이에 적힌 설명을 읽는 대신 배우의 연기를 보며 상황을 이해하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라는 안내도 이야기 속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예요. 업계에서도 배우와 플레이어가 직접 대화하고 서로의 행동에 반응하는 ‘이머시브 테마’를 최근의 주요 흐름 중 하나로 보고 있어요.
아예 퍼즐을 거의 없앤 콘텐츠도 등장했어요. 괴담저장소의 〈제일기숙학원〉이나 〈한강대 담력훈련〉 같은 작품이 그래요. 자물쇠를 푸는 게임이라기보다, 여러 공간을 오가며 배우와 함께 사건을 겪는 체험에 가까워요.
가격도 달라졌죠. 배우가 등장하는 일부 콘텐츠는 한 팀 기준 이용료가 20만~28만 원에 이르러요. 일반적인 방탈출의 가격대를 넘어서는 만큼, 관객이 기대하는 경험도 달라지는 거예요. 방탈출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작품의 후기를 두고 “이걸 방탈출 게시판에 써야 하나, 연극 게시판에 써야 하나” 고민하는 반응까지 나와요.
방탈출은 이야기와 배우가 더해지면서 연극을 닮아갔어요. 반대로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직접 선택하고 움직이게 하면서 게임을 닮아갔고요. 두 장르가 닮아가는 건 형식 때문만은 아니에요. 관객에게 맡기는 역할이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어디로 갈지 고르고 직접 움직여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방탈출에서는 내 행동이 사건을 풀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고, 이머시브 공연에서는 어떤 장면을 볼지 결정하는 선택이 돼요.
같이 들어갔는데, 전혀 다른 공연을 보고 나왔어요
그렇다면 공연에서 관객이 직접 선택하고 움직인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요?
앞서 소개한 〈슬립노모어〉로 돌아가 볼게요. 〈슬립노모어〉는 흔히 ‘객석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연’으로 소개돼요.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단순히 이동의 자유를 주는 데 그치지 않아요. 함께 온 일행과 떨어져, 혼자 이야기를 마주하게 하거든요.
저는 작년, 10년간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 〈슬립노모어 상하이〉를 폐막 전에 동료들과 함께 관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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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노모어 상하이>는 2016년 문을 연 뒤 약 2,670회 공연됐고, 누적 관객은 70만 명 이상이었어요. |
입장하면 가장 먼저 트럼프 카드 한 장을 받아요. 캄캄한 복도를 지나면 재즈 바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음악과 공연을 즐기며 기다리죠. 앞서 받은 카드 번호에 따라 입장 순서가 정해져요. 자기 차례가 되면 휴대폰을 맡기고 하얀 가면을 써요. 그제야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들어가요. 이때부터 일행과 떨어지기 시작해요. 서로 다른 카드를 받으면 입장 순서부터 갈릴 수 있어요. 운 좋게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함께 움직이기는 쉽지 않죠. 층마다 멈춰 관객을 한 명씩 내보내거든요. 저도 그렇게 혼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됐어요. 문이 닫히고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동묘지 한가운데였죠. 함께 온 사람을 다시 찾으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공연장 안에서는 모두 똑같은 하얀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니까요.
입장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관람’이 아니라 ‘나의 관람’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모든 갈림길이 선택이 돼요.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배우를 따라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과 반대로 걸어갈 수도 있어요.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남아 서랍을 열어볼 수도 있고요. 누구를 따라가고 어느 문을 여느냐에 따라 내가 만나는 장면이 달라져요.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함께 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각자 본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달라요.
“나는 공동묘지에서 시작했어. 너는?”
“그런 공간이 있었어? 난 못 봤는데?”
“나는 계속 이 배우만 따라갔는데. 네가 말한 배우는 누구야?”
같은 표를 샀는데도 전혀 다른 공연을 보고 나온 것처럼 느껴지죠. 이렇게 각자 움직이다 보니 〈슬립노모어〉에는 ‘나만 본 장면’이 생겨요. 뉴욕판에는 하룻밤에 극소수의 관객만 볼 수 있었던 장면도 있었고, 상하이에서는 같은 공연을 무려 500번 넘게 관람한 사람까지 등장했어요.
보통 공연은 내용을 알고 나면 두 번째 관람에서 새로움이 줄어들어요. 하지만 〈슬립노모어〉는 한 번 보고 나서야 ‘아직 못 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돼요. 다시 찾는 일도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기보다는 흩어진 이야기 조각을 조금씩 모으는 경험에 가깝죠. 기억에 남는 것도 작품의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배우를 따라간 것도, 아무도 없는 방의 서랍을 열어본 것도 내가 한 선택이니까요.
영화 한 편 보는데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오라고요?
〈시크릿시네마〉 007 카지노 로얄 | ©SECRET CINEMA
무엇을 볼지 고르는 데서 나아가, 아예 이야기 속 인물의 역할을 맡는다면 어떨까요?
영국의 〈시크릿시네마〉가 그런 경험을 만들어요. 2007년 시작한 시크릿시네마는 영화를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 세계를 현실 공간에 구현해왔어요.
2019년 진행된 〈007 카지노 로얄〉이 대표적이에요. 당시 드레스코드는 파티에 어울리는 연회복이었어요. 남성은 정장, 여성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행사장에 들어갔죠. 그들을 맞이한 건 007 영화 속에 나올 법한 화려한 파티장이었어요. 처음에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연회를 즐겼어요. 음악을 듣고, 공간 곳곳을 둘러보고,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했죠. 그러다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무장한 테러범들이 파티장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혼란이 벌어지는 순간 제임스 본드가 나타나 상황을 수습하죠.
〈시크릿시네마〉 007 카지노 로얄, 자세히 보면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고 있는 관객들이 눈에 띈다 | ©SECRET CINEMA
관객은 그 모습을 객석에 앉아 바라보지 않았어요. 본드의 움직임을 따라 공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이벤트를 자유롭게 경험했고, 마지막에야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를 관람했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007의 세계 안에서 살아본’ 셈이에요. 이 사례의 핵심은 정교한 세트에만 있지 않아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구경하던 관객이 이야기 속 인물로 바뀐다는 점이 중요하죠.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뜻밖의 상황에 휘말리기도 해요.
역할을 맡으면 주변을 보는 방식도 달라져요. “자유롭게 관람해 주세요”라는 말 대신 “숨겨진 단서를 찾아보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전까지 지나쳤을 서랍과 표지판을 눈여겨보고 배우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죠. ‘혹시 이게 중요한 단서 아닐까?’ 하고요.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달라지는 거예요.
편하게 보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할까요?
나만의 장면을 발견하고 이야기 속 역할을 맡는 재미는 알겠어요. 하지만 몇 시간씩 걷고,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겪는 수고까지 기꺼이 감수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요?
좋은 이머시브는 재미있는 장면뿐 아니라,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고, 평소라면 망설였을 행동도 해보게 하죠.
혼자서는 만들기 어려운 ‘몰입할 조건’을 콘텐츠가 대신 설계해주는 셈이에요.
📵 휴대폰을 내려놓을 핑계가 생겨요
우리는 하루 종일 콘텐츠를 봐요. 출퇴근길에도 보고, 밥을 먹으면서도 보고, 잠들기 전까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죠. 그런데 정작 하나의 콘텐츠에만 푹 빠져 있는 시간은 점점 귀해지고 있어요.
이머시브 콘텐츠는 잠시나마 휴대폰에서 벗어나 눈앞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줘요. 〈슬립노모어〉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제한해요. 시크릿시네마도 일상에서 벗어나 영화 속 세계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주는 데 공을 들였고요. 이벤트 플랫폼 Eventbrite의 자체 데이터에서도 ‘Phone-Free’를 내건 이벤트가 2024년에서 2025년 사이 크게 늘었어요. 디지털을 싫어하게 됐다기보다는, 스스로 휴대폰을 내려놓기 어려우니 잠깐이라도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쪽에 가까울 거예요.
🤝 처음 본 사람과도 금세 ‘같은 편’이 돼요
참여형 콘텐츠의 규모가 커지면서 함께 즐기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방 하나를 통째로 예약하는 방식이 익숙했죠. 요즘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회차에 들어가 플레이하는 ‘오픈룸’도 여러 업체에서 운영해요. 처음 보는 사이여도 체험이 시작되면 금세 같은 편이 돼요. 길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말을 주고받게 되죠.
“저쪽에 뭐 있었어요?”
“아까 받은 거 한번 보여주세요.”
“우리 이쪽부터 찾아볼까요?”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 대화할 이유가 자연스럽게 생겨요. 18~35세 4,0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응답자의 58%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건 중요하지만, 사람을 사귀는 것 자체가 모임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어요.
이런 체험에서는 친해지려고 애써 화제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눈앞의 문제를 함께 풀다 보면 대화가 시작되니까요. 관계를 먼저 만들고 콘텐츠를 즐기는 게 아니라, 콘텐츠가 서로 어울릴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죠.
🎭 평소의 나와 조금 다른 행동을 해볼 수 있어요
이머시브 공간에 들어가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될 때가 많아요. 낯선 사람을 따라 어두운 복도를 뛰어가기도 하고, 닫혀 있는 서랍을 열어보기도 하고, 처음 본 배우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죠.
〈슬립노모어〉의 하얀 가면도 이런 변화를 돕는 장치예요. 얼굴을 가리고 평소의 나를 잠시 내려놓으면 조금 더 대담하게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어요. 연출가 펠릭스 바렛도 가면으로 얼굴을 숨기는 것이 관객의 적극적인 행동을 돕는다고 설명한 적이 있고요. 꼭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고 믿을 필요는 없어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느낌만으로도,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 많아지니까요.
브랜드도 이제 ‘구경하는 사람’만 받지 않아요
브랜드 역시 이런 참여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역할을 주고, 단서를 숨기고,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이 더 이상 게임이나 공연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유죠. 그 변화가 눈에 띄는 곳이 브랜드 팝업스토어예요.
기존 팝업은 대체로 제품을 보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굿즈를 구경하는 방식이었어요. 브랜드가 준비한 장면을 ‘보는’ 경험이 중심이었죠.
최근 일부 팝업은 방문객이 움직이고 선택해야 다음 장면이 열리는 구조를 택해요.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제품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알아가도록 하는 거죠. 방문객의 행동이 경험을 완성하는 거예요.
어쩌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과 마피아 아지트에 잠입했어요
올해 2월, 모바일 추리 게임 〈마피아42〉의 첫 오프라인 팝업이 성수에서 열렸어요. 서비스 12주년을 맞아 게임 속 마피아 아지트를 약 200평 공간에 옮겨 놓은 팝업이었죠.
방문객은 입구에서 6~8명씩 한 조로 묶여요. 처음 보는 사람과도 한 팀이 되고, 모두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가 되어 아지트에 들어가죠. 손에 쥔 건 미션 카드와 연필이에요.
〈마피아42〉 팝업스토어 현장 | ©스위트스팟
마피아 회의실에서는 인물을 프로파일링하고, 청부업자의 방에서는 007 가방과 열쇠, 의뢰서를 살펴보며 단서를 찾아요. 마녀의 집에서는 자외선 조명을 비춰야 숨은 단서가 드러나고요. 그렇게 모은 단서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좁혀 가면서, 마피아 일당에게 들키지 않고 아지트를 빠져나와야 해요.
여기에 생동감을 더한 건 사람이었어요. 전용 의상을 입은 스태프가 곳곳에서 이야기 속 인물을 연기하며 참가자와 함께 문제를 풀었거든요. 체험 후반에는 함께했던 스태프가 바로 참가자들이 찾던 마피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방문 후기에서도 스태프의 연기가 하이라이트로 꼽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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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마피아42〉 팝업 팀42에 따르면 체험 사전 예약은 시작한 지 10분 만에 마감됐고, 운영 기간에는 하루 평균 1,500여 명이 찾았어요. 평일 오전에도 체험존과 굿즈존에 각각 50명 넘는 대기 줄이 생겼고요. |
이 팝업은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어요. 이용자들이 게임에서 반복해온 ‘마피아를 찾기 위해 의심하고 추리하는 행동’을 오프라인으로 옮긴 거예요. 브랜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좋아했던 방식을 몸으로 다시 경험하게 한 셈이죠.
이제 제품은 진열대가 아니라 사건 한가운데에 놓여요
〈마피아42〉가 이용자에게 익숙한 놀이를 현실로 옮겼다면, 제품의 특징 자체를 놀이의 단서로 삼은 팝업도 있어요. 올해 3월 성수에서 열린 롯데칠성음료의 〈새로중앙박물관〉이 그래요. 리뉴얼한 소주 ‘새로’를 알리는 공간이지만, 방문객을 기다리는 건 제품 설명이 아니라 ‘천년의 비법서가 도난당했다’는 사건이에요.
〈새로중앙박물관〉 팝업스토어 현장 | ©키이스케이프
처음에는 도슨트를 따라 전시를 둘러봐요. 그러다 비법서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방문객은 팀을 이뤄 단서를 찾기 시작하죠. 방마다 놓인 물건을 살펴보고 퀴즈를 풀며 흩어진 비법서 조각을 모아요. 박물관을 구경하러 들어왔다가, 어느새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단서를 찾다 보면 제품의 특징도 알게 돼요. 예를 들어 새로의 바뀐 도수인 15.7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정답으로 쓰여요. 제품 정보가 사건을 푸는 데 필요한 단서가 되는 거죠.
보통 브랜드는 정보를 보여주고 방문객이 기억해주길 바라요. 여기서는 그보다 먼저 방문객이 그 정보를 ‘필요로 하게’ 만들어요. 문제를 풀려면 제품을 알아야 하니까요. 체험과 제품 소개가 따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제품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놀이가 돼요.
브랜드 정보를 더 크게 보여주는 대신, 그 정보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이머시브를 브랜드 경험에 적용할 때 특히 눈여겨볼 만한 방식이에요.
모두 다른 경험을 하는데, 왜 같은 이야기가 남을까요?
〈슬립노모어〉의 관객들은 각자 다른 장면을 보고도 매키탄 호텔이라는 같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요. 브랜드 팝업도 비슷하죠. 〈마피아42〉에서는 추리하며 게임의 세계관을 경험하고, 〈새로중앙박물관〉에서는 비법서를 찾으며 제품의 특징을 알아가요. 팀마다 문제를 푸는 과정은 달라도, 그 안에서 만나는 브랜드의 핵심은 같아요.
선택은 관객에게 맡기되, 놓쳐서는 안 될 순간은 설계해두는 거예요.
이머시브는 모든 것을 관객에게 맡기는 방식이 아니에요.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는 부분과 꼭 경험해야 할 부분을 구분해 설계하는 방식이죠. 어떤 공간을 먼저 보고 누구와 움직일지는 달라질 수 있어요. 대신 어떤 길을 택하든 접해야 하는 제품, 전하고 싶은 메시지, 느꼈으면 하는 감정은 분명하게 정해두는 거예요.
그래서 이머시브를 단순히 ‘체험 요소가 많은 공간’으로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쉬워요.
중요한 건 체험의 개수가 아니라, 방문객에게 어떤 의미 있는 선택과 행동을 맡기느냐예요.
마케터가 설계해야 할 대상도 조금 달라져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순서로 움직일지 하나하나 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도 브랜드의 이야기와 만나도록 만드는 거죠. 하나의 완벽한 동선보다, 여러 선택이 가능하면서도 핵심 경험은 놓치지 않는 구조가 중요해지는 거예요.
결국 이머시브의 매력은 잘 만든 이야기를 ‘내가 겪은 일’로 바꿔준다는 데 있어요. 배우를 놓칠까 봐 뛰었던 순간이나 내 손으로 단서를 찾아낸 장면에는 내 행동과 감정이 함께 남죠. 그렇게 콘텐츠는 내가 꺼내 말할 수 있는 경험이 돼요. 비싼 표를 사고 낯선 공간에 들어가는 수고도, 그 안에 내 자리가 생긴다면 기꺼이 감수할 이유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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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브랜드 공간을 기획한다면? 방문객에게 전할 메시지 하나를 골라, 직접 해볼 행동으로 바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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