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당신의 진짜 일은 무엇입니까?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 마케터는 일의 맥락을 이해하고 업무를 분해해 위임하며 결과를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더 깊은 판단에 써야 합니다.
“그걸 왜 본인이 하고 있어요? AI한테 시키면 되잖아요.”
최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한 말이다. 신규 브랜드의 마케팅 실행 전략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직접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심코 던진 이야기였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 역시 반대편에 있었다. AI에게 설명하고 결과를 기다리느니 내가 직접 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AI와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겼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다시 정의해야 하는 것은 AI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송길영 박사는 최근 신간 《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에서 ‘어떤 수고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웬만한 일은 AI와 기술이 대신할 수 있는 시대라면, 오히려 내가 직접 시간을 들여야 할 일을 더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해야 할 ‘원본’의 일을 찾고, 나의 ‘사본’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위임하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AI 시대의 일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과거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 일을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자료를 빨리 찾고, 문서를 잘 만들고, 정보를 정리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중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남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하는 일’보다 ‘정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고,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직접 할지 판단하고, 마지막 결과가 맞는지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결국 AI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실행의 속도가 아니라 판단의 질이다.
마케팅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일을 세 단계로 나눠 생각한다.
1. 먼저, 일의 맥락을 이해한다
AI에게 가장 먼저 일을 시키고 싶겠지만, 그 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마케팅 업무는 외부 클라이언트나 내부 개발·연구 부서의 요청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신제품을 알리고 싶다”,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 “매출을 올리고 싶다”는 식으로 과제가 주어진다. 하지만 요청받은 문장 자체가 진짜 문제인 경우는 많지 않다.
신제품 출시라면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어떤 소비자의 불편에서 출발했는지, 기존 제품과 무엇이 다른지, 회사는 이 제품을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이해해야 한다. 고객의 맥락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언제 이 제품군을 찾는지,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는지, 기존 제품에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무엇을 조사할지’, ‘무엇을 강조할지’,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 AI는 질문에 빠르게 답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까지 항상 알려주지는 않는다. 좋은 질문은 맥락을 이해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2. 일을 분해하고, 맡길 일을 정한다
맥락을 이해했다면 다음은 일을 쪼개는 단계다.
예를 들어 신제품 출시를 위해 인플루언서, 바이럴 콘텐츠, SNS, PR 등을 활용하는 IMC 마케팅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자. ‘마케팅 전략을 만든다’는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보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일을 잘게 나누면 달라진다. 시장 사례 조사, 경쟁사 분석, 소비자 반응 조사, 인플루언서 후보 탐색, 과거 콘텐츠 성과 분석, 아이디어 초안 작성처럼 업무를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AI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는 것이다. 과거 자사 제품을 다뤘던 인플루언서를 찾거나, 경쟁 제품을 소개한 콘텐츠를 조사하고, 조회수와 인게이지먼트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은 AI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사람이 몇 시간씩 자료를 복사하고 표에 옮기는 동안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비교하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굳이 사람이 써야 할까. AI 시대의 업무 능력은 모든 일을 직접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게 나누고 어디까지 위임할지 판단하는 능력에 가까워지고 있다.

3. 마지막으로, 판단의 깊이를 높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시작된다. AI를 통해 시간을 아꼈다면 그 시간을 또 다른 반복 업무로 채워서는 안 된다. 절약한 시간을 생각하는 데 써야 한다.
첫 번째는 검증이다. AI가 조사하고 정리한 결과라고 해서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정보가 틀릴 수도 있고, 맥락을 놓쳤을 수도 있으며, 숫자는 맞지만 결론은 틀릴 수도 있다. 동료에게 업무를 요청했을 때 결과물을 검토하듯 AI가 만든 결과 역시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무엇이 빠졌는지 판단하고 수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심화다. 나는 오랫동안 보고서와 제안서를 만들면서 비슷한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조금 더 많은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라기보다 시간과 자원이 부족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AI는 이 제약을 조금씩 없애고 있다. 이전에는 며칠씩 걸렸을 시장 조사와 데이터 정리를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고, 다양한 플랫폼의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비교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다. 생각할 재료가 많아지고, 그 재료를 확보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은 그만큼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우리가 놓친 변수가 있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AI가 실행의 시간을 줄여준 만큼 사람은 판단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AI 시대의 생산성이다.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쓰던 시간을 줄이고 중요한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
그래서 AI 시대에 사람의 일은 점점 ‘하는 것’에서 ‘정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지 정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하고, 무엇을 AI에게 맡길지 정하고, 마지막 결과에 책임지는 일. 결국 이것이 사람에게 남는 일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그랬듯 AI 역시 업무의 기본 도구가 되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AI에게 넘기는 것도, 모든 일을 내가 직접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수고를 내가 직접 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AI가 우리의 수고를 줄여줄수록 이 선택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중 정말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은 그 일에 충분한 시간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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