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AI, 그리고 인간 [1부] 역사의 순간, 거대한 파도에 잠길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누구나 디자이너가 되는' 시대를 연 디자인 플랫폼이 거대한 AI의 파도를 마주했습니다. 파도에 잠길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AI 디자인 시대 속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고찰합니다.
"누구나 디자이너가 된다."
이것만 쓰면 누구나 디자인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등장한 디자인 플랫폼 ‘망고보드’가 2016년 10월 자신을 세상에 등장시키면서 내 걸었던 슬로건이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쉽게 편집할 수 있는 고퀄리티 템플릿과 저작권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고급 이미지들. 난이도 높은 디자인 프로그램에게 외면받았던 디자인 비전공자들에게 최초의 한국형 디자인 플랫폼 망고보드는 디자인이라는 닫힌 문을 활짝 열어 줬다.
당시 망고보드 브랜드에 대한 나를 포함한 직원들의 자부심은 단순한 성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만들고 운영하는 서비스가 시대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매일 확인하는 설렘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가끔 대학교로부터 수업시간에 망고보드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갈 때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 첫 페이지에 구텐베르크와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를 띄웠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종교 지도자가 독점했던 라틴어 성경을 일반인들에게 쉬운 모국어로 번역본으로 만들어 배포했던 개혁의 역사를 메타포로 활용하여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망고보드에 역사적인 의미를 거창하게 부여했다. 그리고, 성경의 대량 배포가 가능하게 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망고보드 기술과 연결 지으려고 했다. 듣는 사람들은 중소기업 브랜드 가지고 오버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충만했던 자부심은 그 후 ‘역사’라는 소재를 칼럼으로 써서 여러 미디어에 기고하도록 이끌었다.
제목은 ‘평민 콘텐츠 전성시대를 전진시키는 힘’, 그중에 일부를 추억하며 발췌해 본다.
평민용 콘텐츠 제작 도구를 개발하는 기업들에게는 큰 시각에서 본인들의 업에 대해 의미를 되새기기를 기대해 본다. 이들에게 단순히 돈을 버는 비즈니스 이상의 시대적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평민 미디어 전성시대’라는 현시대를 움직이는 바퀴 중 하나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다. 망고보드 쉬운 디자인 플랫폼의 등장을 ‘역사’라고 말했던 나를 무안하게 만든, 진짜 거대한 ‘역사’에 나는 직면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온 인류 전체가 AI를 처음으로 맞이하는 시대를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2022년 말 등장한 Chat GPT라 불리는 LLM AI 모델은 질문에 똑똑하게 답변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솜씨까지 뽐내었다.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이미지 AI 모델들보다 더 많은 사용자들을 확보한 Chat GPT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는 한 때 전 세계인의 프샤(프로필 사진)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미지 생성 이후 AI가 손을 뻗칠 곳은 어디 일지를 생각했을 텐데, 그것이 ‘디자인’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용자들은 놀랄만한 이미지들을 생산해 내는 AI에 환호하면서 기대감을 더 키워 나갔고, 디자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나와 동료들은 당시 일종의 위협감을 느꼈다.
Open AI, 구글, 앤트로픽 같은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파도에 잠겨서 침몰할 것 같은 두려움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몰아 치는 파도에 삼켜지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것도 있다. 서핑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파도에 올라타서 그 속도를 자기의 속도로 만들면서 즐긴다.
역사의 순간,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잠길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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