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인사이트

2026년 본격 시행, 경제의 언어가 된 저탄소♻️

84
0
0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2026년부터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본격 시행한다. '저탄소'가 소비와 가격을 움직이며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2026년, 국경을 넘는 상품의 가격표에는 새로운 숫자가 붙는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탄소국경세가 본격 시행되면서 철강·알루미늄·시멘트 같은 핵심 산업재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탄소의 무게’를 지닌 채 거래된다. 이제 무역의 경쟁력은 가격과 품질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탄소 비용까지 함께 셈해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무역 장벽의 등장

 

유럽연합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는 기후 위기 대응과 무역 규범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전례 없는 제도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핏 포 55Fit for 55’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으며, CBAM은 그 핵심 수단이다. 유럽 기업들이 감내해온 탄소 비용이 해외의 느슨한 규제로 무력화되지 않도록, 즉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을 막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값싼 고탄소 수입품이 유럽산 제품을 대체하거나, 기업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순간 기후 목표와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어진 국제 기후 관련 회의의 논의가 구체화된 결과가 CBAM이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현장 모습 ©Reuters

 

  

CBAM은 기존의 반덤핑이나 세이프가드가 가격과 물량을 조정하던 것과 달리 환경과 통상이 결합한 새로운 무역 장벽이다. 원칙은 단순하다. ‘같은 탄소 배출에는 같은 비용을 내라’는 것. 제도는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는 전환기로,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대해 수입업자가 분기별로 배출량을 보고한다.

 

그러나 2026년부터는 본격 시행되어 수입업자는 해당 제품이 유럽에서 생산될 경우 부담해야 하는 탄소 비용과 동일한 수준의 CBAM 인증서를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 철강 기업이 톤당 60유로를 이미 지불했다면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ETS 가격이 톤당 100유로일 경우 그 차액인 40유로만큼 인증서를 사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 설계가 WTO 규범에 부합한다고 주장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입품에 관세형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구조다. 결국 CBAM은 국제무역 질서에 새로운 공식을 심어 넣었고, 탄소가 곧 비용이자 경쟁력의 잣대가 되는 시대를 열었다.

 

 

 

탄소를 둘러싼 패권 경쟁

 

CBAM은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곧바로 국제무역의 힘겨루기로 번졌다. 가장 먼저 반발한 쪽은 신흥국이다. 중국·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은 CBAM을 ‘차별적인 보호무역주의’라 규정하며 강력히 반대했고, 인도산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유럽 수출 시 20~35%의 추가 비용이 붙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개발도상국의 눈에 CBAM은 선진국이 자국의 기준으로 세운 새로운 장벽에 불과하다.

 

미국은 다른 해법을 꺼냈다.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유럽연합의 규제의 채찍과 달리 전기차·배터리·재생에너지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내세웠다. 그러나 IRA가 미국산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자 유럽연합이 반발했고, 맞불로 CBAM 부담금에서 미국산 제품을 면제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2023년 미국·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탄소 클럽Carbon Club’ 구상이 논의되며 갈등은 봉합됐지만, 기후 산업 패권을 둘러싼 신경전은 여전히 팽팽하다.

 

중국은 경계와 대응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CBAM이 수출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이를 산업 전환의 기회로 삼았다. 2021년 세계 최대 규모의 배출권거래제를 출범시키고, 태양광·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기술혁신과 규모의 경제로 주도권을 쥐려는 전략이다. 결국 CBAM은 환경 정책의 틀을 넘어 국제 통상 질서를 다시 쓰는 실험대가 되었다. 협력과 갈등, 견제와 타협이 얽히는 무대 위에서 CBAM은 기후 위기 대응 수단이자 경제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유럽연합-중국 고위급 환경·기후 대화 공식 회의HECD 장면. HECD는 기후 정책을 둘러싼 새로운 국제질서의 실험대로 평가받고 있다. ©Zhang Ling/Xinhua

 

  

 

탄소국경세, 한국 산업의 미래를 묻다

 

CBAM은 한국에도 예외 없는 도전이다. 특히 철강산업이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다. 환경부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대유럽연합 수출품 중 CBAM 적용 품목의 93.6%가 철강이며, 6.4%가 알루미늄이다. 사실상 철강업계 전체가 정조준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는 기회도 있다. 국내 철강 회사들은 수소 환원 제철 시험로 구축과 고로용광로의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 전환 같은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며 단순한 설비 변경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공정 효율화, 연료 전환,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도입으로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과 부담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저탄소 제조’라는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에 맞춰 산업 지원 예산을 확대하고, 기업의 전환 비용을 줄일 제도적 장치를 마련 중이다. 규제 일변도가 아니라 지원과 유도를 결합해 녹색 전환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인식이다. 과거에는 환경 규제를 비용만 늘리는 걸림돌로 여겼지만, 이제는 저탄소 전환을 주저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는 사실을 경영자들이 깨닫고 있다. 친환경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며, 장기 경쟁력의 토대다. ‘지속 가능성=비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경쟁력’이라는 공식이 한국 산업계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탄소 라벨 시대의 소비 풍경

 

CBAM의 여파는 산업 현장을 넘어 결국 소비자의 일상으로 번져간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철강과 알루미늄이 탄소 비용을 안게 되면 완성차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구나 고로용광로를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 바꾸는 과정 자체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해 생산비 상승은 곧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CBAM은 탄소가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가격을 움직이는 새로운 변수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부담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저탄소 제품과 친환경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는 이미 뚜렷한 흐름이다. 유럽의 대형 유통망은 식품과 생활용품에 ‘탄소 발자국 라벨’을 부착해 제품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안내한다. 소비자들은 이를 참고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고, 기업들은 저탄소 제품 개발에 압박을 받는다.

 

  

유니레버는 일부 제품의 패키지에 탄소 배출량 수치를 표기하는 시범 단계에 돌입했다. ©Unilever

 

 

한국 역시 저탄소 제품 인증제를 확대하고, 공공 조달의 경우 친환경 제품에 가산점을 주는 등 ‘녹색 소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CBAM이 불러온 변화는 소비와 생산의 선순환을 향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상승과 물가 압력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전환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든다.

 

CBAM은 국경에 세워진 장벽인 동시에 미래로 들어서는 문이다. 탄소가 비용에서 경쟁력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지속 가능성과 성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누가 먼저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혁신을 이루는가에 따라 CBAM 시대의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결국이 제도는 불편한 장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제로 향하는 초대장이다.

 

  

1 영국 기반 음료 브랜드 텐징은 제품의 탄소 배출량 정보를 제공하면서 탄소 중립·투명성 이미지를 강조한다. ©Tenzing  

2 올버즈는 자사의 운동화 제품에 대한 탄소 발자국 수치를 계산해 공개하고, 일부 제품에는 이 수치를 제품 정보나 라벨에 명시하고 있다. ©Allbirds

 

 

 

글. 이정환(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저탄소 #CBAM #EU #친환경 #경제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수록 인사이트가 커집니다.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