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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땅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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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인간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자연의 회복력을 돕는 '리와일딩'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연 보전 패러다임이다. 거대한 복원의 서사를 마주하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자.

사라졌던 야생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옐로스톤의 늑대, 토르투게로의 바다거북, 루자티아의 숲, 아이슬란드의 빙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원. 각기 다른 대륙의 이야기는 모두 ‘리와일딩’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이 거대한 복원의 서사를 마주하는 가장 특별한 경험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 ©Unsplash Nicolasintravel

 

 

  

야생의 강을 되찾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1995년, 약 70년 만에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 늑대가 돌아왔다. 미국 정부가 캐나다에서 데려온 ‘캐나디안 그레이 울프Canadian Grey Wolf’는 1926년 마지막 늑대가 사라진 뒤 폭발적으로 늘어난 엘크Elk의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도입된 존재였다. 포식자가 돌아오자 숲의 질서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작은 설치류와 새들이 되돌아왔고, 강은 다시 생명으로 가득 찼다. 전문가들은 이 놀라운 변화를 ‘먹이사슬의 연쇄 회복Trophic Cascade’이라 부른다. 인간이 부재했던 본래의 균형이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캐나디안 그레이 울프 ©Unsplash Judy Beth Morris

  

 

리와일딩Rewilding에 성공한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은 오늘날 여행자들에게도 야생의 숨결을 직접 느낄 기회를 준다. 드넓은 초원과 화산 지대 곳곳은 살아 있는 지질 교과서이자, 여전히 원시 지구의 맥박이 뛰는 무대다. 그중에서도 단연 상징적인 장소는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Old Faithful Geyser’. 이름처럼 ‘오래된 믿음직한 친구’라는 뜻을 지닌 이 간헐천은 90분마다 알람처럼 정확하게 물줄기를 분출한다. 최대 55m 높이까지 솟구치는 하얀 수증기 기둥은 마치 지구가 숨을 내쉬는 듯, 땅속 깊은 심장이 박동하는 순간을 연상케 한다.

 

또 하나의 아이콘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은 보는 이들의 기억에 색으로 각인된다. 깊고 짙푸른 중심에서 시작해 초록, 노랑, 주황, 빨강으로 펼쳐지는 동심원은 거대한 화가의 팔레트를 닮았다. 이 오묘한 색채는 수온 차이에 따라 서식하는 미생물 군락이 빚어낸 결과다.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신비롭고도 원초적이다. ‘지구의 눈’이라 불리는 이 온천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미드웨이 간헐천 분지의 보드워크를 따라 가까이에서 감각을 느껴보거나, 페어리 폭포Fairy Falls 전망대에 올라 전체 풍광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장 좋다. 햇빛의 각도와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른 색채로 반짝이는 이 광경은 단 한 번의 방문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남긴다.

 

 

 

바다거북의 귀환, 코스타리카 토르투게로 국립공원

 

코스타리카에서 커피만큼이나 유명한 존재가 있다. 바로 ‘녹색바다거북Green Sea Turtle’이다. 카리브해에 면한 북동부 토르투게로Tortuguero는 ‘작은 아마존’이라 불릴 만큼 원시적인 자연을 간직한 곳으로, 밀림과 강, 운하가 뒤엉킨 지형은 바다거북뿐 아니라 재규어, 원숭이, 갖가지 열대 조류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매년 여름 수천 킬로미터의 바다를 건너온 바다거북들이 모래사장에 알을 낳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엄한 드라마다. 달빛 아래 거대한 어미가 조용히 모래를 파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숨죽인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때 주민들이 알을 채취해 팔고, 여행자들이 산란을 방해하면서 멸종 위기가 고조되었다.

  

 

토르투게로의 해변은 바다와 열대우림이 맞닿은 생명의 경계선이다.

 

 

1959년, 미국 해양생물학자 아치 카Archie Carr가 ‘시 터틀 컨서번시Sea Turtle Conservancy, STC’를 설립해 보존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그 결과 산란율이 크게 높아졌고, 개체 수는 400% 이상 증가했다는 연구도 나왔다. 오늘날 토르투게로의 밤 해변은 여전히 긴장과 경이의 무대다. STC는 불법 채란을 막기 위해 주민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켰고, 이제 마을 사람의 80% 이상이 생태 관광 산업에 종사한다. 

 

여행자들은 STC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나 G 어드벤처스G Adventures, 내추럴 해비탯 어드벤처스Natural Habitat Adventures를 통해 야간 순찰, 거북 관찰, 정글 트레킹을 결합한 여정에 동참할 수 있다. 모래 위에서 생명을 낳고, 다시 바다로 향하는 거북의 여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순간, 여행자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위대한 서사에 동참하는 증인이 된다.

  

 

 

늑대의 복귀, 독일 루자티아 자연공원

 

독일 동쪽,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경계에 자리한 루자티아Lusatia는 과거 갈탄 채굴로 황폐화된 광산지대였다. 깊게 팬 채굴 흔적은 인간이 남긴 상처처럼 드러났지만, 독일 통일 이후 늑대가 돌아오면서 풍경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첫 늑대 무리가 나타났고, 2000년대 초 새끼 늑대의 탄생은 이 지역이 다시 안정적 서식지가 되었음을 알렸다. 포식자가 돌아오자 숲은 질서를 되찾았다. 사슴과 멧돼지가 무턱대고 풀밭을 헤집지 않게 되자 초지에는 풀과 나무가 자랐고, 곤충과 새가 돌아왔다. 숲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복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변화는 리와일딩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루자티아의 여행자는 회복의 과정을 추적하는 탐험가가 된다. 브란덴부르크 관광청의 ‘늑대 트레킹Wolf Hikes in the Niederlausitz Region’에서는 가이드와 함께 발자국, 배설물, 사냥 흔적을 찾아보며 숲을 탐사한다. 더 깊은 체험을 원한다면 ‘페를렌펭거Perlenfänger’의 ‘울프 익스피리언스 위켄드Wolf Experience Weekend’ 프로그램이 있다. 늑대 연구자와 야밤에 숲을 순찰하며 모니터링 장비로 울음소리와 활동을 직접 관찰하는 경험은 인간과 자연이 다시 맺는 관계의 깊이를 체감하게 만든다.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재생의 땅 루자티아의 대표 도시 중 하나인 괴를리츠 ©Expedia

 

 

  

사라진 빙하의 기록, 아이슬란드 오크 빙하 메모리얼

 

2019년 8월, 아이슬란드에서 전 세계의 시선을 모은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기후변화로 사라진 첫번째 빙하, ‘오크Ok’였다. 아이슬란드 정부와 미 항공우주국 나사가 주도한 이 의식에서 세운 추모비에는 작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Andri Snær Magnason의 ‘미래에게 보내는 편지’가 새겨졌다. 

 

“오크는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빙하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앞으로 200년 안에 대부분의 빙하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을 후대에 전합니다.” 이 간결한 문장은 얼음이 사라진 풍경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세대 간의 언어로 새겨 넣는다. 여행자들은 추모비 앞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책임을 절감하게 된다.

 

‘언글레이셔 투어Un-Glacier Tour’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교과서다. 빙하가 물러나며 드러난 ‘오크 크레이터Ok Crater’를 걷다 보면, 대지는 마치 껍질이 벗겨진 듯 붉은 화산암과 검은 화산재가 노출되고, 곳곳에 이끼가 점처럼 퍼져 있다. 수천 년 동안 얼음 속에 감춰졌던 지형이 갑자기 드러난 풍경은 지구의 나이를 새삼스레 실감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실버 서클Silver Circle’ 루트는 이 여정의 연장선이다. 거대한 용암 동굴 군락인 ‘하들뮌다르흐뢰운Hallmundarhraun’, 중세 석조 온천 ‘스노랄뢰이흐Snorralaug’ 그리고 크뢰이마Krauma 스파까지. 지열수와 빙하수가 섞인 온천에 몸을 담그면, 추위와 열기가 동시에 스며드는 체험 속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이 수천 년간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온 삶의 지혜가 느껴진다. 란드만날뢰이가르Landmannalaugar처럼,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이 땅에서 오크의 죽음을 기리는 여행은 결국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오래된 관계를 다시 묻는 성찰의 길이 된다.

  

 

여름철 트레킹 명소로도 꼽히는 아이슬란드의 란드만날뢰이가르

 

  

 

아프리카의 초원을 되살리다, 남아공 곤드와나 프라이빗 게임 리저브

 

케이프타운에서 차로 4시간, 웨스턴케이프 모셀베이Mossel Bay에 위치한 곤드와나 프라이빗 게임 리저브Gondwana Private Game Reserve는 리와일딩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한 초원의 무대다. 2003년, 설립자 마크 & 웬디 러더퍼드Mark & Wendy Rutherford 부부는 1만1,000헥타르에 달하는 농지를 사들였다. 한때 소와 양이 풀을 뜯던 땅에서 방목을 중단하고, 외래종을 제거하자 땅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토착 식생이 되살아났고, 풀과 나무가 다시 자리 잡자 임팔라·얼룩말·기린 같은 초식동물이 되돌아왔다. 그 뒤를 따라 사자, 치타, 코끼리, 코뿔소까지 나타나며 마침내 ‘빅 파이브Big Five’라 불리는 아프리카 야생의 주인공들이 복귀했다. 수십 년간 인간이 이용했던 땅이 불과 20여 년 만에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은 장면은 리와일딩의 기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곤드와나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에코 캠프Eco Camp’에서 코끼리 배설물을 분석하거나, 표범 출현지를 카메라로 모니터링하며 보존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사륜구동차 대신 도보 트레킹으로 초원을 건너다 보면 풀잎의 바스락거림, 바람의 흐름, 멀리서 들려오는 사자의 포효까지 온몸으로 와닿는다. 

 

숙소는 생태 건축 방식으로 지어 태양광과 빗물로 자급자족하며, 지역 주민 고용이 함께 이뤄진다. 덕분에 곤드와나는 자연 보전·지역사회·경제가 조화를 잘 이루는 모델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이곳의 여정은 ‘관찰자’가 아니라 ‘동참자’로서 자연을 경험하게 한다. 초원의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을 바라보는 순간, 여행자는 깨닫는다. 곤드와나가 되찾은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자연과 맺어야 했던 관계 자체라는 것을.

  

 

곤드와나 프라이빗 게임 리저브는 토착 초원 생태계를 되살린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Gondwana Private Game Reserve

  

 

 

글. 류진(여행 매거진 <헤이 트래블> 디렉터)

#리와일딩 #여행 #트렌드 #자연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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