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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공간은 '빛'부터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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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조명은 어떤 가구보다 먼저 공간을 완성한다.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오래된 것을 되살리고 삶을 연결한다.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조명은 단순한 가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낡은 집에 스며든 작은 조명 하나가 공간의 표정을 바꾼다. 빛은 벽지나 가구보다 먼저 분위기를 만들고, 시간이 쌓인 이야기를 오늘의 무드로 이어준다. 그래서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오래된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따뜻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유원재의 로비 조명은 단순한 밝기 조절을 넘어 장소의 정체성과 휴식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 ©Bitzro & Partners

 

 

  

오래된 공간, 빛으로 다시 깨어나다

 

레노베이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벽도 바닥도 손대지 않고 조명만 바꿨을 뿐인데 공기가 달라졌다.” 충주에 있는 유원재 로비는 이 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무심하고 삭막했던 건물 입구가 따스한 빛 하나로 얼굴을 바꿨다. 낮에는 자연광처럼 스며들어 품격을 더하고, 밤이 되면 호텔 로비 못지않은 은은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빛 하나로 사람이 머무는 시간의 밀도는 물론, 대화의 온도가 달라진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는 빛으로 첫인상이 바뀐 도시의 얼굴이다. 과거엔 산업화의 상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버려지고 잊혔다. 그러던 건물이 어둠이 내리면 LED 미디어 파사드로 도시의 밤을 수놓는다. 빛은 고정된 벽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투사한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서고, 빛으로 덮인 거대한 캔버스는 다시 도시를 상징하는 풍경이 된다. 빛은 단지 낡은 것을 덮는 장치가 아니다. 기억을 덧입히고 미래의 표정을 설계하는 도구다. 그래서 헤리티지 리빙에서 빛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바꿔야 할 것이라 꼽는다.

  

 

빛으로 도시 얼굴을 재창조한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 ©Bitzro & Partners

 

  

 

북유럽의 긴 밤, 빛으로 지켜낸 따뜻함

 

조명을 이야기할 때 북유럽만큼 상징적 무대는 없다. 밤이 유독 길고 어두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같은 북유럽에서는 빛이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삶의 재료였다.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 긴 겨울의 카모스Kaamos. 사람들은 그 오랜 어둠 속에서 스탠드 하나, 펜던트 하나에 진심을 담았다.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의 대표작 PH 아티초크PH Artichoke는 빛이 사람을 어떻게 품는지 보여준다. 빛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퍼져 공간을 감싸안는다. 그 빛의 결은 밤공기를 다독이고, 긴 어둠을 견디게 한다.

 

북유럽 조명 디자인은 자연광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마음까지 설계하는 데서 출발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는 겨울에도 사람들은 불빛 아래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 오늘날 헤리티지 리빙에서 빛이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다. 지금의 공간은 무언가를 완전히 새로 짓기보다는 남아 있는 것을 품어야 한다. 긴 밤을 견디기 위해 이어져온 북유럽의 빛처럼 오래된 집에 스며드는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음을 묶는 감각의 리듬이다.

  

 

루이스 폴센을 대표하는 PH 아티초크는 과거와 현재, 감성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상징적 조명이다. ©Louis Poulsen

 

  

 

빛은 취향을 비추고 기억을 담는다

 

헤리티지 리빙의 본질은 단절이 아니라 계승이다. 경복궁의 야간 조명은 그 본질을 빛으로 보여준다. 근정전부터 향원정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달빛을 닮은 조명이 궁궐의 위계를 비춘다. 수백 년의 건축이 지니는 은근한 품격이 빛으로 드러나고, LED와 IT 기술은 자연 달빛처럼 변하지 않는 빛의 흐름을 연출한다. 수원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넓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빛에 따라 멈추고, 이야기하고, 다시 걷는다. 빛은 시간을 흐르게 하고, 세대를 잇는 감각의 흐름이 된다.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처럼 빛은 도시의 얼굴을 다시 쓰는 언어가 된다.

 

빛은 기술과 감성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최근엔 AI와 연계된 스마트 조명이나 인간 중심 조명Human Centric Lighting이 사람의 생체리듬과 자연광의 변화를 모방해 시간대별로 색온도와 밝기를 섬세하게 조절해준다. 이제 빛은 낮과 밤, 계절과 기분을 넘어 사람의 리듬과 함께 숨 쉰다. 기술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것은 따뜻함이다.

 

  

1 빛이 역사적 공간과 어우러져 궁궐의 정체성과 기억을 현재로 되살려낸 경복궁 조명 ©Bitzro & Partners  

2 간접조명이 인상적인 수원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 ©Bitzro & Partners

 

 

작은 빛이 공간의 서사를 완성한다 조명이 중요한 이유는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벽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가구보다 더 깊이 공간의 공기와 이야기를 바꾼다. 무인양품, 이케아, 까사미아 같은 브랜드가 단순한 가구를 넘어 ‘빛’을 다시 설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성비 가구를 대표하던 브랜드들이 이제는 은은한 빛의 질감을 파는 시대다. 무인양품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간접조명을 통해 작은 방 한쪽에도 부드러운 ‘쉼의 공간’을 만든다. 따뜻한 스탠드 하나가 공간의 무드를 바꾼다. 이케아는 감성과 기능을 동시에 잡는다. 낮에는 밝고 시원한 빛, 밤에는 조도를 낮춘 무드등으로 하루의 리듬을 조율한다. 스마트 전구와 앱을 연동해 시간대별로 빛의 톤을 바꿀 수 있는 것도 결국 ‘빛은 생활을 설계하는 기술’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까사미아는 호텔 라운지에 온 듯한 고급스러운 느낌을 조명으로 완성한다. 은은한 펜던트와 따뜻한 간접광으로 ‘조명 하나 바꿨을 뿐인데 집이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가구보다 먼저 빛으로 공간의 품격을 높이는 셈이다. 결국 빛은 공간의 첫인상을 만들고, 그 인상은 머무는 사람의 기분과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작은 조도 차이만으로도 대화의 톤이 달라지고, 가족이 모이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진다. 낮에는 자연광처럼 스며들고, 밤에는 경계 없이 은은하게 흐르며 공간을 완성한다.

 

좋은 조명은 공간의 기능을 넘어 기억을 설계한다. 누군가는 그 불빛 아래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누군가는 같은 빛 아래서 오랜 대화를 나눈다. 형태는 없지만 마음에는 남는다. 그래서 빛은 오늘날 헤리티지 리빙이 말하는 ‘계승의 미학’을 가장 부드럽게 실현한다. 있는 것을 허물지 않고도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는 가장 유연한 도구. 조명 하나로 집의 표정이 바뀌면 그 표정은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어준다.

 

 

글. 고기영(비츠로앤파트너스 대표)

 

#조명 #빛 #인테리어 #공간 #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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