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엔터테인먼트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레거시 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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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여행에도 취향과 트렌드가 담긴다. 시간이 멈춘 듯 긴 역사와 유산을 품은 도시는 그 자체로 여행자의 마음을 뛰게 만든다. 오랜 세월이 쌓여 깊은 정취를 자아내는 전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새로운 것만이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아니다. 긴 역사와 유산을 품은 여행지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레거시 트래블Legacy Travel’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욕심부려 서두르기만 하다 쉽게 사라지고 마는 여정 대신 묵직한 여운과 긴 잔영을 남기는, 전 세계 곳곳의 유구한 땅들을 찾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절정을 만나는 곳, 이탈리아 토스카나

 

 

 

토스카나Toscana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드넓은 포도밭을 가르며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시골길, 그 주변에 촘촘하게 늘어선 사이프러스나무들, 부드러운 곡선의 구릉과 올리브나무 군락, 중세 시대 건축물과 소박한 농가들로 이뤄진 서정적 경관. 발도르차Val d’Orcia로 부르는 이 지역은 수려한 풍경의 아름다움과 14~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성 덕에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이프러스나무 길로 유명한 발도르차

 

 

 

 

 

발도르차의 가치와 미학을 한곳에서 경험하고 싶다면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Castiglion del Bosco가 완벽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8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이 리조트는 중세 마을 전체를 ‘리조트’라는 호스피탤리티 서비스로 경험할 수 있는 곳. 12세기에 지은 중세 요새와 산 미켈레 교회Pieve di San Michele Arcangelo 사이를 산책하며 과거로 건너가거나, 이탈리아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생산하는 와이너리에서 시음 및 피크닉, 헬기 투어, 트러플 헌팅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미를 눈에 담고 싶다면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로 향하자. 중세의 화려한 마천루를 감상할 수 있어 ‘중세 맨해튼’이란 별칭으로 일컫는 이 도시는 11~13세기 귀족 가문이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고도’에 한껏 집중한 72개 탑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14개 탑만 남아 당대 슈퍼리치들의 야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유명한 탑은 높이 54m의 토레 그로사Torre Grossa로, 218개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오르면 토스카나의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피엔차Pienza는 르네상스 시대가 꿈꾼 유토피아를 현실로 옮긴 도시. 인간 중심의 도시계획을 구현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두오모 대성당을 중심으로 공공 및 종교 건축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배치돼 있다.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고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전 건축에 관심이 많다면 생애 한번쯤 들러봐야 할 곳이다.

 

 

 

 

 

르네상스 이상향의 도시, 피엔차

 

 

 

 

 

 

 

고성의 낙원, 프랑스 루아르 밸리

 

 

 

프랑스 중부, 루아르강을 따라 펼쳐진 280여km의 길을 따라 형성된 루아르 밸리Loire Valley는 300여 개 성을 간직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어로 샤토Château로 불리는 이 성들은 르네상스·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이 중 100여 개 성이 일반인에게 문을 열고 있다. 성의 낭만을 좇는 여행자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샤토 드 샹보르Château de Chambord.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사는 성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1519년, 프랑수아 1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다. 440여 개 방과 365개 벽난로를 갖춘 화려한 내부 공간을 관람한 후엔 바깥으로 나와 수려하기로 이름난 프랑스 정원의 정수를 만끽해보자.

 

 

 

샤토 드 슈농소Château de Chenonceau는 프랑스 역사 속에 이름을 새긴 당대의 여성들이 만들고 가꾸며 건축미를 완성한 성이다. 16세기에 프랑스를 섭정한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메디시스, 앙리 2세의 정부 디안 드푸아티에를 비롯해 앙리 3세의 왕비 루이즈 드로렌, 사교계의 명사이자 지식인인 루이즈 뒤팽, 마담 펠루즈가 슈농소성의 안팎을 꾸미고 만들었다. 성과 바깥을 잇는 셰르Cher 강 위의 다리부터 유럽 거장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탑, 정원과 밭 등을 천천히 둘러보며 왕가와 귀족가 여성들의 우아하고 수준 높은 미감을 눈에 담아보자.

 

 

 

정원과 조경 예술에 관심이 많다면 샤토 드 빌랑드리Château de Villandry로 향해야 한다. 12세기 중세의 요새이던 곳에 16세기 프랑수아 1세 시대의 재무장관 장르 브레통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이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6헥타르 부지에 펼쳐진 정원이다. 각각 태양·물·장식·키친을 주제로 꾸민 이 공간은 프랑스 정원이 추구하는 미학, 수학적 대칭과 선형적 구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야생성을 제거한 장식 예술처럼 배치된 조경의 우아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르네상스 정원으로 유명한 샤토 드 빌랑드리

 

 

 

 

 

 

 

헤리티지에서 누리는 느린 삶, 영국 코츠월드

 

 

 

코츠월드Cotswold는 영국 중서부, 옥스퍼드셔와 워릭셔, 글로스터셔와 서머싯 등의 지역에 걸친 구릉지대. 양을 치는 오두막Cots과 구릉Wold의 조합, ‘양이 풀을 뜯는 언덕’을 지명으로 정한 곳답게 소박하고 서정적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영화 <해리포터>, 드라마 <브리저튼>과 <다운튼 애비> 등의 로케이션으로 유명하며, 영국인들 사이에선 ‘가장 영국적인 풍경’, ‘영국 시골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코츠월드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버리Bibury는 14세기 양모 산업 지역의 흔적인 양모 창고부터 17세기 방직공들의 집으로 쓰인 코티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시인이자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찬사를 남긴 곳답게 이상적인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3~5세기 전의 옛집들과 단정하고 소박한 숲, 송어와 오리가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강이 어우러진 동화 속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히드코트 매너 가든Hidcote Manor Garden은 비버리에서 차로 약 50분 거리에 위치한 정원으로, 영국식 고전 정원의 교과서로 일컫는 곳이다. 11에이커 부지 위에 펼쳐진 이 정원은 각기 다른 28개 ‘가든 룸’을 품은 독특한 구조가 특징. 오직 ‘흰색’ 식물로만 꾸민 화이트 가든,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의 대비가 인상적인 푸크시아 가든과 레드 보더스 등 주제가 명확한 조경 디자인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여정이 허락한다면 이른 아침, 안개가 옅게 낀 고요한 순간에 찾아 진한 꽃과 풀 내음을 함께 만끽해볼 것.

 

 

 

정교한 수공예의 예술적 가치를 제창한 ‘아츠 앤드 크래프트 운동’의 본거지인 치핑캠든Chipping Campden과 코츠월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마켓 타운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까지 하루 혹은 이틀 코스로 묶어 코츠월드 시간 여행을 제대로 즐겨보자.

 

 

 

 

 

코츠월드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이라 일컫는다. ©Unsplash Vicky Hincks

 

 

 

 

 

 

 

장인이 지켜온 도시, 모로코 페스

 

 

 

모로코 페스Fès에선 9라는 숫자를 기억해야 한다. 9세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구시가지 메디나, 9,000여 개 골목으로 이뤄진 미로야말로 페스의 상징이자 전 세계 여행자를 이 도시로 이끄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모로코 사람이 영적인 도시로 여기는 페스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국 도시의 흔적을 품고 있다.

 

 

 

황토로 쌓은 성벽을 지나 ‘옛 페스’라는 뜻의 페스 엘 발리Fès el-Bali에 들어서면 구글맵 앱을 끄고 스마트폰을 가방 안에 넣어야 한다. ‘세계 최대의 미로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은 까닭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거미줄 같은 골목길들은 AI마저 무용하게 만든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조차 다닐 수 없는, 오직 걷는 이만 존재하는 순정한 거리에서 가장 먼저 향할 곳은 수공예 장인들의 공방. 슈아라 타너리Chouara Tannery는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으로, 무수한 미디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죽 염색 공방’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여행자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쇼핑 이상이다.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짐승의 생가죽이 우리가 접하는 가죽 형태로 가공되기까지 과정이 펼쳐진다. 자극적 냄새가 걱정된다면 민트잎을 챙겨갈 것. 가죽 냄새로 젖은 코안을 맑은 공기로 씻어내고 싶다면 자르댕 즈난 스빌Jardin Jnane Sbile을 추천한다. 한때 왕궁의 일부였던 이 정원은 정교하고 화려한 모로코 타일 장식과 고대 수로, 분수, 나무 터널 등으로 이뤄진 시민들의 쉼터다.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부 이나니아 마드라사Madrasa Bou Inania, 알 아타린 마드라사Al-Attarine Madrasa의 중정도 메디나의 소란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고요한 장소다. 14세기 전통 궁전을 부티크 호텔로 개조한 리아드 페스Riad Fès에 여장을 풀고 루프톱 테라스에 올라 구시가지와 아틀라스산맥 위로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완벽한 페스 여정이 완성된다.

 

 

 

  

 

모로코 페스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블루 게이트, 바브 부 젤루드 Bab Bou Jeloud

 

 

 

 

 

  

 

미국 남부의 역사와 정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에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Charleston은 종종 등장하는 이름이다. 1670년에 역사가 시작된 이곳은 미국에서 열한번째로 오래된 도시. 미국인들 사이에선 18세기부터 이어진 조지아·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이 줄지어 늘어선 킹 스트리트와 사우스 오브 브로드, 파스텔색의 페인트를 칠한 13채의 조지아풍 연립 건축물이 눈길을 끄는 레인보로Rainbow Row를 비롯해 미국 남부 전통 문화와 아프리카계 미국인Gullah-Geechee 문화가 혼합된 로컨트리Lowcountry, 그리고 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로 등극한 <노트북>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레인보 로는 찰스턴의 상징과 같은 거리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상점과 주거 기능이 결합된 상업 건물 숍하우스Shophouse가 늘어선 길을 뜻한다. 조지아 양식으로 지은 이 건축물이 도시의 슬럼화로 폐쇄 위기에 처했을 때 이 도시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존을 위해 알록달록한 파스텔색으로 칠하며 독특한 미관을 가진 거리이자 명소가 됐다.

 

 

 

남부 특유의 활기, 흑인 문화, 17세기 건축물이 독특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찰스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미식’이다. 찰스턴 항구를 비롯해 도시 곳곳의 온갖 걷기 좋은 거리를 섭렵한 후에는 로컨트리 퀴진의 세계 속으로 입성해보자. 식당을 고르기 전 당신이 알아야할 목록이 있다. 새우와 옥수수로 만든 스튜 슈림프 앤드 그리츠, 꽃게의 풍미가 농밀한 시-크랩 수프, 남부 사람들의 솔 푸드로 종종 꼽히는 호핀스 존 등은 찰스턴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들. 미국 남동부 지역의 전통 요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SNOBSlightly North of Broad나 허스크Husk, 남부 이탈리아와 로컨트리 미식을 결합한 레스토랑 소렐레Sorelle 등 다채로운 선택지가 미식가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찰스턴의 레인보 로는 파스텔 톤 집과 가로수, 고풍스러운 가스등이 있는 거리가 어우러져 낭만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Unsplash Jimmy Woo / ©Unsplash Leo Heisenberg

 

 

 

 

 

 

 

글. 류진(여행 매거진 <헤이트래블> 디렉터)

#여행 #레거시 #역사 #트렌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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