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오래된 게임이론 전략인 팃포탯은 신뢰와 경계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신에는 배신으로 맞서는 팃포탯은 국제 외교, 기업의 브랜딩, AI 알고리즘 설계까지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신에는 즉각 보복으로 대응하는 맞대응의 원칙, ‘팃포탯Tit-for-Tat’. 이 상호주의 전략은 외교부터 AI 알고리즘까지 신뢰와 경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원칙으로 작동한다. 팃포탯은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며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끝없는 대립으로 남을지, 작은 관용으로 협력을 되살릴지. 결국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왜 팃포탯 전략인가?
오래된 게임이론 전략인 ‘팃포탯Tit-for-Tat’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IT 기반의 초연결 시대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팃포탯 전략은 신뢰와 경계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적 알고리즘이다. 상대가 협력하면 협력으로, 배신하면 즉각 배신으로 맞서는 원리다. 팃포탯은 1980년대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 교수가 주최한 ‘죄수의 딜레마’ 반복 게임에서 가장 우수한 해법으로 확인되며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단순해 보이는 이 논리가 오히려 협력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선의로 협력을 시작했으나 상대가 배신하면 단호히 응징하면서도 다시금 빠르게 용서하는 팃포탯 전략은 일상의 갈등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이 된다. 표면적으로는 치열한 보복과 응징의 전략 같지만, 본질은 상대를 거울처럼 비추며 신뢰와 위험을 관리하는 ‘관계의 알고리즘’이다. 이 같은 특징 덕분에 팃포탯 논리는 오늘날 국제 외교는 물론, 기업의 브랜딩과 인공지능 알고리즘 설계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관계 설계의 원칙으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국제 외교에서 팃포탯의 힘
국제 외교에서 팃포탯 전략의 가치는 상대의 행동에 정확히 상응하는 대응으로 과도한 충돌과 갈등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자국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면 감정적 분풀이가 아니라 대칭적이고 계산된 보복으로 대응해왔다. 최근 불거진 미·중 무역 분쟁에서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해 중국이 동일한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며 맞선 경우가 그렇다. 전문가들은 이를 노골적 확전이 아니라 경제적 타격은 주면서도 향후 협상의 여지를 남긴 정교한 대응으로 평가한다.
중국의 팃포탯 전략은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때도 드러났다. 중국은 단체 관광을 막고 한류 콘텐츠를 제한하며 사실상 경제 보복에 나섰고,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은 판매 부진과 관광·제조업 전반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조치는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팃포탯식 압박 전략으로 평가된다. 2018년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대중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동일한 규모로 맞대응하며 무역 전쟁이 본격화됐다. 이후 미국은 반도체·기술·금융 분야로 보복과 대응을 반복하며 압박과 협상력을 유지했다. 협력은 하되 배신에는 단호히 응징하는 이 계산된 팃포탯 전략은 국제 외교에서 신뢰와 위험을 관리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배신에는 응징, 신뢰에는 지지
기업과 개인 사이에서도 팃포탯의 역학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쪽이 신의를 저버리면 다른 쪽도 즉각 보복으로 맞서고,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반드시 성의 있는 조치로 응답해야 한다. 2018년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 고객이 부당하게 체포되자 전역으로 불매운동이 확산됐고, 스타벅스는 큰 매출 감소와 경영난에 직면했다.
결국 CEO의 직접 사과와 전국 매장 일시 폐쇄, 인종차별 예방 교육 이후에야 사태는 진정됐다. 스웨덴 의류 기업 H&M도 ‘정글 최고의 원숭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흑인 아동에게 입힌 광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자 경영진은 즉시 이미지를 철회하고 정중히 사과하며 신뢰 회복에 나섰다. 이런 사례들은 소비자가 느낀 모욕과 부당함을 동등한 수준으로 되갚아 대응하는 팃포탯의 전형적인 논리를 보여준다.

반대로 신뢰에는 지지가 따른다. 파타고니아는 윤리적 공급망과 환경보호 철학을 꾸준히 실천하며 소비자들의 자발적 지지를 얻었다. 중고 제품을 다시 구매·판매하는 ‘원 웨어Worn Wear’ 프로그램처럼 브랜드가 준 신뢰는 평생 고객으로 돌아온다. 코스트코 역시 ‘무조건 환불’에 가까운 과감한 환불 정책을 통해 매년 90% 이상의 높은 멤버십 갱신율로 화답받고 있다. 브랜드가 진심으로 사람을 존중하고 협력할 때 사람들도 구매와 추천으로 신뢰를 돌려주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결국 브랜드와 개인 관계에도 팃포탯의 논리는 작동한다. 기업이 주는 신뢰가 지지로 돌아올지, 응징으로 돌아올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결과다.

주는 대로 받는다, AI 팃포탯 알고리즘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까?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디지털 세계에서도 팃포탯의 원리는 작동한다. 예를 들어 파일 공유 네트워크인 비트토렌트BitTorrent 프로토콜은 업로드와 다운로드 자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팃포탯 전략을 활용한다. 참여자가 다른 사용자에게 데이터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더 빠른 다운로드 속도로 보상받고, 반대로 공유에 비협조적인 사용자는 업로드 슬롯이 제한된다. 이렇게 ‘주는대로 받는’ 원칙 덕분에 비트토렌트 네트워크는 무임승차자를 걸러내고 협력적으로 파일을 공유하는 자율 분산 시스템을 유지한다.
챗GPT 역시 마찬가지다. 챗GPT는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응답을 조율하고, 피드백에 따라 출력 결과를 강화하거나 부정적 평가가 쌓이면 해당 방향의 응답 확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학습한다. 이 역시 인간과 AI 간 상호 작용에 나타나는 팃포탯의 한 형태다. 사용자의 억양·말투·반응에 따라 답변 태도를 조절하는 챗봇도 같은 맥락이다. 팃포탯의 원리는 디지털 알고리즘 세계에서도 피드백에 따라 적응하고 보상과 응징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그 바탕에는 인간 사회처럼 상호 호혜적 대응 논리가 깔려 있다.

보복과 협력 사이, 팃포탯 전략의 균형점
결국 팃포탯 전략의 핵심은 ‘끝까지 맞대응하며 대립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협력으로 선순환의 계기를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게임이론 연구에 따르면 팃포탯 대결에서는 쌍방이 한번 엇갈리면 상호 보복의 악순환에 쉽게 갇힌다. 이 교착 상태를 깨는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쪽이 먼저 관용을 베푸는 것. 즉 한 번의 배신을 너그럽게 넘기고 다시 협력을 시도하면 무너진 신뢰의 고리가 다시 복원될 수 있다.
실제로 팃포탯을 변형한 ‘관대한 팃포탯’ 전략은 상대의 배신을 때로는 감수하고 협력을 유지함으로써 영원한 적대 관계에 머물지 않도록 설계됐다. “눈에는 눈으로만 대응하면 모두가 장님이 된다”는 말이 있듯 상대의 실수를 한 번쯤 눈감아줄 때에야 비로소 출구가 열린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협력하면 모두가 이익’이라는 진리가 팃포탯이 협력을 이끌어내는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관계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때로는 맞서되 궁극적으로는 협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하는 일이다.
글. 류주한(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