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눈치게임 시작합니다👀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재생에너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전 세계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에너지 질서를 잡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시대,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석탄과 석유 중심의 시대가 저물고, 태양과 바람 및 물과 수소로 전력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대전환의 시대다. 각국은 이미 재생에너지를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치열한 경쟁에 나섰다. 기술과 자본, 공급망과 거버넌스가 얽혀 다시 세워지는 글로벌 에너지 질서 속에서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기후 위기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면서 재생에너지는 이미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됐다. 태양·바람·물·수소 등 지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은 오랜 시간 ‘구호’로만 머무르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정책과 산업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파리협정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약속한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2030년까지 43% 감축’ 같은 구체적 목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목표와 현실은 늘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 속도는 여전히 빨라 결과는 더디게 다가온다. 하지만 긴 싸움 끝에 지키고자 하는 건 결국 다음 세대의 삶이다.
세계는 지금 에너지 전환 경쟁 중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미국은 2022년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덕분에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급속도로 늘었다. 2025년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처음 50% 이하로 떨어졌다는 기록은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 통과시킨 대규모 감세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으로 인해 2032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던 발전용 세액공제 종료 시점이 2027년으로 대폭 앞당겨졌다. 일부 보조금 요건도 강화돼 미국 내 재생에너지 투자와 생산 계획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현지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추진하던 한국 기업들도 향후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동시에 IRA는 ‘제조업 보호주의’라는 새로운 논쟁도 만들어냈다. 자국 내 생산과 공급망 보호를 강조하면서 유럽연합의 탄소국경 조정제도CBAM와 경쟁하고, 중국과의 무역 갈등도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의 80%를 차지하며 ‘그린 제조 강국’으로 부상했다. 리튬·희토류 등 전략 광물을 통합 관리하고, BYD·CATL 같은 전기차 배터리 기업은 수소 충전 기술까지 확장하며 공급망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다만 최근엔 과잉생산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한편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에 집중했지만, 2024년 탄소중립산업법NZIA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체계를 다시금 다지고 있다.
민간 시장에서 공공 재생에너지로
흥미로운 점은 자유화된 전력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온 재생에너지 산업이 최근 들어 ‘공공성’이라는 키워드와 다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과 운영은 민간투자와 시장 경쟁에 맡겨 왔고, 이는 기술 발전과 비용 절감이라는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공급망 위기와 원자재 가격 급등, 글로벌 금리 인상 같은 복합 요인으로 인해 민간이 추진하던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시금 국가와 공기업의 역할을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에너지 주권’을 지키고, 장기적 에너지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 개발과 공급망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덴마크의 오스테드Ørsted는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화석연료 기업이던 이 국영기업은 전환의 기로에서 과감히 석탄과 석유 의존을 줄이고, 해상 풍력 중심의 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글로벌 최대 해상 풍력 기업 중 하나로, 다른 국가들로부터 국영기업의 성공적 전환 모델로 주목받는다.

공공의 역할은 단순한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 과학이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시간표는 시장 논리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대응은 이제 기업의 ESG 경영을 넘어 국가와 지역이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다. 이 때문에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와 공기업·민간의 역할 분담, 상생형 거버넌스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지역과 연결될 때 파급력이 커진다. 지역에서 생산·소비하는 분산형 시스템, 주민 참여형 태양광· 풍력은 수익 공유 및 일자리 창출로 지역의 신뢰와 정책 수용성을 높인다. 공공성은 기술과 자본뿐 아니라 사람과 지역을 잇는 다리다. 민간의 혁신과 공공의 책임, 지역사회의 참여가 맞물릴 때 에너지 전환은 실현된다. 결국 이 길은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가야 할 다음 단계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 지금이 분기점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 매년 발표되는 세계에너지협의회WEC ‘에너지 트릴레마Trilemma 지수’를 보면 한국의 경우 에너지 형평성은 비교적 높지만(95.9점), 에너지 안보(62.2점)와 환경적 지속 가능성(63.9점)에서는 여전히 숙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023년 기준 현실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 하는 실정이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한국은 이제 본격적 전환의 기로에 섰다.
새 정부는 ‘K-에너지 전환’의 키워드 아래 도시형 태양광 확대, 제로 에너지 건축 의무화, 공공 주차장 태양광 설치 등 도시와 생활공간 곳곳에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내놓았다. 특히 서해안과 한반도를 U자형으로 잇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송전 벨트를 구상한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는 상징성이 크다. 이는 지역별 자원을 효율적으로 묶고, 깨끗한 전력을 전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설계 수명보다 앞당겨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은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산업 전반과 지역 일자리 및 노동자의 생계를 포괄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 발전이 집중된 지역 사회가 새로운 에너지 산업으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산업 전환과 일자리 교육, 보상과 지원 프로그램을 촘촘히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또 주민 수용성과 생태적 타당성도 중요하다. 대규모 풍력 단지나 태양광 단지가 지역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지역사회의 반발과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장의 발목을 잡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지역 주민이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발전 수익을 공유하며, 자연 생태계를 지키는 ‘참여형·분산형 모델’을 더 많이 도입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1단계 시범 사업과 선언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전환점을 지나려 한다.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기업·지역사회 모두의 협력이 맞물 린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가를 분기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장은 더 이상 선언으로 그쳐서는 절대 안 된다. IRA로 대표되는 미국의 클린 테크 붐, 중국의 그린 제조 실리콘밸리 전략, 유럽의 새로운 탈탄소 산업법은 국가의 성장 동력이자 생존 전략으로 작동한다. 다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이 통과되면서 IRA의 일부 혜택이 축소되고 있어 미국 내 클린테크 투자 흐름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한국도 이를 따라잡기 위한 제도와 기술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제는 속도가 중요하다. 상상하던 전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속도. 그것만이 현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가 살아갈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
글. 이정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