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인사이트

60년 투자 원칙을 관통하는 한 가지 질문

550
0
2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투자의 신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 헤서웨이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찰리 멍거. 세상은 찰리 멍거를 단순한 투자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돈의 흐름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격자를 설계한 사람이었다.

세상은 많은 투자자를 기억하지만, 찰리 멍거Charlie Munger는 단순한 투자자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는 돈의 흐름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격자를 설계한 사람이었다. 평생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지식을 확장한 그는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줬다. 찰리 멍거가 남긴 것은 수익률 표가 아니라 망치를 내려놓고 더 많은 도구를 쌓으라는 지혜였다.

 

 

‘투자의 현자’로 불리는 찰리 멍거(1924~2023)©Bloomberg News

 

 

 

한 세기를 관통한 생각의 설계자

 

2023년 11월 28일, 찰리 멍거Charlie Munger는 백수百壽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투자의 신’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 해서웨이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그는 평생을 투자자로 불렸지만, 정작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가 떠난 직후 버크셔 주주총회 현장에 울려 퍼진 30분짜리 추모 영상은 멍거라는 사람이 왜 특별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무대에 선 버핏은 그를 “버크셔의 설계자이자 나의 지적 안전망”이라 불렀다. 총회 내내 버핏은 멍거의 이름을 수십 번이나 언급했다. 버핏이 옆자리에 앉은 후계자 그레그 에이블 부회장을 무심코 ‘찰리’라고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버크셔의 정신엔 늘 멍거가 스며 있었다. 1965년 버크셔를 인수한 이후 60년 넘게 이어진 이 두 거인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지만, 그들이 남긴 통찰은 오히려 더욱 강력한 ‘생각의 유산’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운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의 관계는 단순한 동업을 넘어 철학과 가치를 함께 설계한 진정한 동반자였다. ©Robyn Twomey/Redux/laif

 

 

 

멍거리즘, 세상을 바라보는 격자들

 

사람들은 찰리 멍거의 신랄한 농담과 날카로운 통찰을 한데 묶어 ‘멍거리즘Mungerism’이라 부른다. 이는 단순한 투자 조언을 넘어 인생 전체를 꿰뚫는 사고방식이다. 그가 남긴 핵심 철학은 ‘세상의 지혜Worldly Wisdom’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1994년 USC 경영대학원 졸업식 연설에서 멍거는 ‘생각의 격자Latticework of Mental Models’라는 개념을 학생들에게 처음 공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분리된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다. 머릿속에 서로 맞물린 격자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모델들이 촘촘히 연결될 때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에게 좋은 투자자란 결국 세상을 해석하는 모델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서로 충돌 없이 유기적으로 쌓아 올렸는지에 달려 있었다.

 

멍거는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위험을 누구보다 경계했다. 전문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를 ‘망치 든 사람 편향Man with a Hammer Syndrome’으로 설명했다. 1998년 하버드 로스쿨 50주년 동창회 강연에서 그는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빌려 전문가 집단을 비틀었다. “모든 직업은 평신도에 대한 음모다.” 16세기 성직자들이 <성경> 번역을 막아 평민들이 진리를 읽지 못하게 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전문가들이 무의식적으로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오류를 경계했다. 첫째는 인센티브 편향이다. 전문가에게 좋은 것이 고객에게도 좋다고 믿어 버리는 자기 합리화다. 둘째는 망치 든 사람이다. 수많은 전문가가 자신의 도구 하나만으로 현실을 해석하려다 결국 큰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멍거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어봤다.

 

멍거는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 다학제적 사고를 제시했다. 멍거야말로 이 함정을 피해간 산증인이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기상학을 배웠고, 제대 후에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하나의 길에 머물지 않고 과학과 인문을 오가며 쌓아 올린 그의 지적 체력은 단순히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법정에서 계약서를 뜯어보고, 건축설계에 관여하고, 지인들의 사업 모델을 분석하며 그는 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읽어내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투자란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정직하게,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지적 근력의 문제였다. 지식은 단편적 사실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스스로 연결되고 서로 다른 질문과 만나며 다시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바로 그 격자가 있기에 멍거의 말은 지금도 단순한 투자 전략을 넘어 복잡한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 지혜로 남아 있다.

 

 

 

베팅하지 않을 시기를 아는 지혜

 

멍거는 평생 동안 월가를 지배해온 ‘효율적 시장 가설EMH’에 늘 회의적이었다. 교과서에서는 주식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어서 누구도 장기적으로 초과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멍거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의 일화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새뮤얼슨은 교과서에서 “시장은 완벽히 효율적”이라 가르쳤지만, 정작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매수해 부자가 됐다. 그는 “모든 정보는 가격에 반영된다”는 깨끗한 이론보다 가끔 등장하는 ‘가격 오류Mispriced Bet’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고 봤다.

 

멍거가 비유로 즐겨 삼은 경마장의 ‘패리 뮤추얼Pari Mutual 베팅 시스템’은 이런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경마에서는 정보가 널리 공유되고 배당률은 실시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배당률이 바뀐 덕분에 무조건 승산이 높은 말에 베팅한다고 해서 돈을 따는 것은 아니다. 멍거는 젊은 시절, 친구 한 명이 마차 경주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즐겨 꺼냈다. 그 친구는 확실한 정보가 있을 때만 돈을 걸었고, 그렇지 않으면 철저히 기다렸다. 멍거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승산이 있을 때만 크게 걸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버핏도 이 말을 빌려 평생 20장의 투자 티켓만 쓸 수 있다면 누구나 훨씬 신중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멍거리즘은 결국 ‘언제 베팅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지혜나 다름없다.

 

 

202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다음 날 열린 5km 단축 마라톤 코스에 설치된 멍거리즘 포스터 ©김재현

 

 

 

멍거가 남긴 가장 큰 유산

 

1986년 LA의 하버드 스쿨 졸업식 연설은 멍거리즘의 상징 같은 순간이다. 멍거는 졸업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물었다. 많은 졸업생이 “우리와 전혀 다른 세대의 노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질문이 됐다”고 회고했다.

 

다학제적 사고, 끊임없는 학습,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 멍거의 말들은 하버드 스쿨 졸업생뿐 아니라 지금도 멍거리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멍거가 남긴 진짜 유산은 3조 원이 넘는 자산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이다. 버핏과 함께 지킨 60년의 투자 원칙을 관통하는 한 가지 질문 “망치만 들고 있지 않은가?”라는 한 문장은 그렇게 다음 세대가 살아갈 하나의 지표가 된다.

 

 

글. 김재현(머니투데이 전문위원, <찰리 멍거 바이블> 저자)

 

#찰리멍거 #버크셔해서웨이 #투자 #생각의격자 #멍거리즘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수록 인사이트가 커집니다.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