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유원재는 150만원짜리 파인다이닝인가, 온천 브랜드인가

2025.07.1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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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프리미엄 온천 리조트, 유원재. 그런데 쉼의 가치를 전하는 온천 리조트가 왜 150만원대 숙박비와 파인다이닝 이라는 키워드로만 소비되는걸까요? 느린 가치를 전하는 브랜드의 딜레마를 파헤쳐봅니다.

‘1박에 150만원.‘

 

유원재 온천 호텔이 처음 오픈했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 숫자에 주목했습니다.

온천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던 이들에게 ‘프리미엄 온천 호텔’이라는 말은 낯설고, 가격은 파격적이었죠.

 

유원재가 주고자한 가치는? ‘쉼’ 입니다.

 

그런데요, 정작 온라인 후기에서 회자되는 건 2시간짜리 파인다이닝 저녁과 13첩 한식 조식.

사람들이 기억하고, 인증하고, 공유하는 건 결국 가격과 식사입니다.

 

 

150만원의 정체는 쉼이 아니라, 파인다이닝?

 

충주의 온천마을 수안보 한가운데 2023년 새롭게 문을 연 ‘유원재’는 한국 최초의 프라이빗 온천 호텔을 표방합니다. 

단 16객실만 운영하며, 모든 객실에 노천탕과 마당이 있는 리조트형 공간이죠.

150만원의 금액에는 석식과 조식, 카페의 디저트와 라운지에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간식거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특히 석식은 약 2시간에 걸쳐 제공되는 9코스 파인다이닝.

조식은 보양탕부터 소고기와 생선, 제철 반찬, 나물까지 갖춘 13첩 한상차림.

다기는 한국 작가의 도예 작품을 사용했습니다.

 

호텔 전체에서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히는 곳도, 가장 많은 리뷰가 남겨지는 곳도 이 식탁 위입니다.

고객들은 왜 “쉼” 이 아닌 “식사”에 더 주목할까요? 

유원재가 줄 수 있는 진짜 가치는 쉼을 컨셉으로 내세운 150만원짜리 파인다이닝일까요?

 

 

파인다이닝 스타일의 석식 코스

 

 

 

느린 가치를 지닌 공간의 딜레마

 

유원재의 딜레마는 명확합니다.

 

온천과 쉼은 느리고 은근한 가치입니다. 반면 2시간짜리 파인다이닝과 13첩 조식은 비주얼적으로 강렬하고 인증하기 좋죠.

 

이는 단순히 유원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거시적 흐름과 맞닿아 있죠. 사람들은 SNS를 통해 빠른 자극과 즉각적인 만족을 원합니다. 쉼의 가치는 분명 이 시대에 필요하지만, 이런 느린 가치는 본질적으로 체험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고, 전파 속도 또한 매우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을 유치하려면 SNS를 통한 빠른 후킹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유원재는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와 마케팅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유원재는 식사의 비주얼과 가격이라는 마케팅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호텔 빙수를 10만원에 파는 구조와 닮아 있죠. 본래 브랜딩은 가치가 가격을 정당화해야 하는데, 유원재는 거꾸로 가격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구조에 기댄 면이 있습니다. 가격이 곧 화제성을 만들고, 그 화제성으로 방문 이유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석식과 조식의 경험은 분명 좋았고, 고객들에게도 먹혔습니다. 빠른 자극으로 후킹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죠.

 

이제 유원재의 다음 과제는 명확합니다. 이렇게 유입된 고객들에게 경험을 통한 진정한 만족도를 제공하고, 그것을 재방문으로 연결해내는 것입니다. 느린 가치를 지닌 모든 브랜드가 마주하는 숙제이기도 하죠.

 

 

‘한 번 다녀왔어요’로 끝나는 공간의 위험

 

빠른 자극으로 후킹하는 전략은 분명 효과적입니다. 

인증욕을 자극하는 사람들에게 비주얼적인 식사 같은 요소는 매력적인 인증거리가 되죠. 

하지만 인증은 1회성이고 자극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유원재가 마주한 진짜 도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재방문을 유도하는 건 결국 '쉼'이라는 경험의 디테일이 얼마나 150만원 이상의 매력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느냐입니다.

 

그런 점에서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본의 “호시노야” 입니다. 

 

 

호시노야는 단순히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 아닌, 일본 온천 문화를 럭셔리 브랜드로 재정의한 케이스입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호시노야가 얼마나 경험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갖췄는가, 그리고 쉼의 미학을 어떻게 완성도 높게 전달했는가입니다.

 

그들의 핵심은 모든 요소를 일관된 스토리로 연결한 것입니다. 일본의 전통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 설계, 고객이 말하기 전에 필요를 파악하는 '오모테나시' 서비스, 그리고 각 지점마다 그 지역만의 자연과 문화를 공간에 녹여낸 맥락까지. 

 

호시노야 카루이자와가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경험을, 교토는 천년 고도의 맥락 안에서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것 처럼요.

 

이런 경험의 완성도 덕분에 호시노야는 100만원 초반대 가격임에도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아시아 럭셔리 호텔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습니다.

 

 

호시노야 교토 전경 (출처 : 호시노야 공식 홈페이지)

 

 

 

호시노야는 왜 기억에 남고, 유원재는 왜 머뭇거리게 되는가

 

유원재도 이 방향성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시노야와 같은 경험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몇 가지 영역에서 더 발전 가능성이 보입니다.

 

유원재가 마주한 진짜 과제는 빠른 자극으로 온 고객들이 "진짜 쉼"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 객실은 약 16평 정도에 객실, 거실, 노천탕, 마당으로 넓고 프라이빗하게 구성되어 있어 쉼을 위한 공간으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쉼이라는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연결이 필요해 보입니다. 

 

입구부터 로비까지의 진입 동선이 짧고 객실로 향하는 복도가 기능적 배치에 그쳐 일상에서 특별한 공간으로 전환되는 감각이 부족합니다. 한국 작가 도예작품들로 이루어진 로비의 갤러리는 온천과 쉼이라는 가치와의 연결에 명확한 맥락이 없어 단순한 장식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죠. 서비스 역시 친절하지만 고객의 상태를 먼저 읽는 섬세함보다는 정제된 응대에 그쳐, 브랜드 철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못합니다.

 

 

수안보 온천 관광단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입구부터 로비까지 동선이 짧아 비일상적 공간으로의 몰입이 어려운 진입경험

 

 

 

이런 아쉬움들은 공간과 스토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도예의 느린 제작 과정과 온천에서의 느린 쉼을 연결하거나, 흙과 물이라는 온천과 도예의 공통된 소재를 공간 마감소재와 엮어 유원재가 말하고자 하는 쉼의 스토리로 엮어낸다면 어떨까요? 애프터눈 티 대신 한국 전통 차문화를 카페에서 경험하게 한다던지, 서비스 역시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의 상태를 먼저 읽는 조용한 주도성을 더해나간다면, 고객들은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쉼"이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어 재방문하게 되겠죠.

 

 

150만원짜리 파인다이닝에서 진정한 쉼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한국형 온천 호텔이라는 유원재의 방향성은 분명 반갑습니다. 

사우나 문화에 묻혀버린 온천의 가능성을 다시 꺼내고, '쉼'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시도는 한국 관광산업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유원재는 150만원짜리 파인다이닝으로 소비되는건 아쉬운 일입니다. 

온천과 쉼이라는 본질적 가치보다는 비싼 가격을 소비한다는 욕망, 그리고 비주얼적으로 강렬한 식사 경험이 브랜드의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느린 가치인 쉼을 빠른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이는 비단 유원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쉼의 가치를 가진 많은 브랜드가 마주하는 공통된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유원재가 정말 한국형 프리미엄 온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고객 경험의 디테일을 더 섬세하게 다듬어야 하죠. 진입 경험, 공간감, 서비스, 그리고 브랜드 스토리텔링까지 럭셔리 공간이 갖춰야 할 핵심 요소들에서 150만원에 걸맞은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쉼'이라는 가치를 정말 브랜드의 핵심으로 만들어가려면, 이제는 고객이 경험의 중간에 가격을 셈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가격과 식사 중심의 후킹에서 벗어나, 진정한 쉼의 경험 자체가 재방문의 이유가 되도록 말이죠.

 

브랜드는 결국 경험의 흔적입니다. 유원재가 지금까지 화제성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면, 다음 단계는 그들이 다시 찾고 싶어하는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죠.

 

유원재가 '한 번 가봤다'는 공간이 아닌, '다시 가고 싶은 쉼'의 브랜드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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