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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안해야 회사가 굴러간다

클로이

2018.09.28 20:06 조회수 1658

일을 안해야 회사가 굴러간다

최근 다니고 있는 회사의 조직이 개편되면서 꽤나 힘이 들었습니다. 하던 일을 계속 관리하면서 안 하던 일을 도맡게 되어 정신이 없었죠. 

누가 달력을 반으로 탁 접어 월요일과 금요일을 붙여버린 것처럼 한 주가 순식간에 흘러가버렸습니다. 내내 발을 동동 거리며 동분서주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여기저기서 빈틈이 생겨났습니다. 한꺼번에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치고 고기도 굽는 기분이었달까요.

당연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일을 끝까지 다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일은 원래 끝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맥락 없이 마구 쏟아지는 일을 쳐내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동기부여도 안 되고 성취감도 떨어졌습니다,

나는 고기를 더 잘 굽기 위해서 프라이팬 대신 석쇠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동네 마실 갔던 시어머니가 돌아와서 나물을 두 종류 더 무치고 기왕이면 밥상도 나무 소반에서 대리석 식탁으로 바꾸라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에 어떤 이유로 밥상을 차리려고 했는지 잊었나? 불만이 매 순간마다 터져 나오면서 식사를 준비할 의욕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고기가 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습니다. 

신경쇠약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에도 꼭두새벽부터 눈이 번쩍 떠지면서 다 해놓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마구 휘젓고 다녔습니다. 내가 왜 일에 끌려다녀야 하지? 내 힘에 맞게 끌고 갈 수는 없을까?

참 감사하게도 저에게는 멘토가 있어서 이런 고민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멘토의 그늘에서 벗어나 강단 있게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역시나 운을 떼기가 무섭게 눈물바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지만, 그것이 다음 스텝을 그릴 수 있는 실질적인 이정표가 되었기에 이렇게 글로 공유합니다. 

 "일을 잘라내라."

지금 문제로 보이는 모든 일을 다 고치는 것보다, 큰 맥락 속에서 일을 잘라내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는 원래 문제가 많다. 모든 파트에 온갖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게 회사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때에는, (그렇게 일이 내려오면 안 되겠지만 그런 일은 흔하니까)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고 그러므로 다 똑같이 잘 할 필요도 없다. 일을 잘라내라. 중요도를 놓고 리소스를 조금 덜 분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우선 순위의 과제가 아니라면 팀원에게 맡겨놓고 머릿속에서 아예 잊어버려라. 이건 무책임과 다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일을 잘라내야 회사가 제대로 굴러간다. 이를테면 다양한 플로리스트의 꽃다발을 모아서 파는 플랫폼이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해서 입점한 플로리스트가 몇 안 된다. 지금 그 회사에서 사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미션은 플로리스트의 수를 많이 늘리는 것이다. 영업파트는 0월까지 00명 이상의 플로리스트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함께하는 플로리스트가 적다 보니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는 꽃다발의 샘플이 많지 않고, 그렇다 보니 메인 화면에 철이 지난 꽃들이 종종 눈에 띈다. 

아, 저건 여름 꽃이라 11월에는 좀 적합하지 않은 게 아닌가... 꽃은 시즌이 중요한데. 언뜻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같다. 시즌이 지난 꽃은 화면에서 노출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우리 철 지난 꽃은 화면에서 숨김 처리 하자",라고 디렉션을 주는 순간 일이 엉키기 시작한다. 

영업 파트에서는 '인지도 있는 플로리스트', 그리고 그 플로리스트가 '지원할 수 있는 샘플' 두 가지만을 고려하다가, 갑자기 '지원받을 수 있는 샘플의 시즌 적합성'까지 따져야 한다. 영업의 속도가 느려진다.

콘텐츠 파트에서도 덩달아 안 하던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제껏 가지고 있던 샘플로만 준비해놓은 콘셉트들은 어떡하지? 새로 짜야되나?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화면에 철 지난 꽃이 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고객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있더라도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영업이 확보한 플로리스트와 샘플 수가 많아지고 나면, 철 지난 꽃을 어떻게 진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표/운영진만 디렉션을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직급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맥락에서 주어진 일을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일을 잘 해내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인 조직일수록  문제는 더 쉽게 보이고 해결해야 할 리스트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고가 아닌 최적의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버림의 미학이 가득한 일터를 만들기 위하여 다음주에도 다시 힘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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