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 업계에서 주목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있다. 바로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떠나는 ‘스킵젠 여행Skip-Gen Travel’이다. 2024년 여행 전문 매체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Condé Nast Traveller>는 올해의 주요 여행 트렌드 중 하나로 스킵젠 여행을 선정했으며, 영미권에서는 이미 2019년경부터 다양한 매체에서 이 개념을 조명해왔다. 조부모 세대와 손주 세대가 함께 여행하며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스킵젠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세대 간 유대감을 강화하는 의미 있는 여행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족여행의 새로운 공식, 스킵젠
스킵젠 여행의 개념은 간단하다. 바쁜 부모 세대는 건너뛰고Skip, 조부모와 손주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여행 방식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세대 간 교감을 강화하고, 각 세대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조부모에게 스킵젠 여행은 손주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을 기회가 된다. 은퇴 후 경제적 안정과 시간적 여유를 갖춘 조부모 세대는 가족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로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은퇴한 조부모들은 손주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원하며, 여행이 그 방법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손주들에게도 스킵젠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평소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과 달리, 조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세대를 초월한 지혜와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부모가 아닌 조부모와 함께 여행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익히게 한다. 또한 조부모는 손주를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고 더 여유로운 태도로 여행을 즐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주들은 보다 자유롭게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조부모가 손주에게 여행의 선택권을 일부 넘겨주며, 손주가 원하는 활동을 함께 체험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계획한다고 한다.
부모 세대에도 스킵젠 여행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바쁜 업무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육아 부담이 커지는 현대사회에서 조부모가 일정 기간 손주를 맡아주는 것은 부모 세대의 휴식과 재충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3대에 걸쳐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아이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조부모 역시 손주와 교류함으로써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정서적 이점 덕분에 스킵젠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세대 간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회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세대가 만족하는 여행 설계법
스킵젠 여행을 성공적으로 계획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여행 일정과 목적지를 손주의 연령대에 맞춰 선정하는 것이다. 유아나 어린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장시간 이동이 필요한 일정은 피하고, 어린이 친화적인 관광지를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반면, 청소년 손주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역사적 도시나 테마파크 등 액티비티 중심의 여행지를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손주에게 여행지를 직접 선택할 기회를 주거나, 일정 중 일부는 손주의 취향을 반영한 활동을 포함하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유럽 여행을 떠난다면 조부모가 원하는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정과 손주가 기대하는 테마파크 방문을 모두 포함해 일정을 짜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여행을 더욱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해외여행을 떠날 경우, 손주를 동반한 여행자에게 필요한 서류를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부모의 동의서나 공증된 여행 허가서를 요구하는 국가도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는것이 필수다. 또한 응급 상황에 대비해 여행지에서 가까운 병원 위치를 파악하고, 손주가 자주 먹는 음식이나 약품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조부모의 체력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평소 복용하는 약이나 휴대품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어디로 갈까? 세대 초월 여행 추천 목적지
스킵젠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조부모와 손주가 모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연령대와 관심사에 따라 최적의 여행지가 달라질 수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적으로 추천할 만한 유형이 있다.
어린 손주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테마파크가 바람직한 선택지 중 하나다. 도쿄 디즈니랜드, 홍콩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오사카, 유니버설 베이징 리조트,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리조트 월드 등은 아시아권에서 접근성이 뛰어나고 가족 친화적 시설을 잘 갖춘 대표적 테마파크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나 인기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을 직접 만나고, 다양한 테마의 놀이기구를 타며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쿄 디즈니랜드의 ‘잇츠 어 스몰 월드’나 홍콩 디즈니랜드의 ‘마블 테마 존’,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슈퍼 닌텐도 월드’와 ‘해리 포터 마을’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아시아 지역은 짧은 비행으로 갈 수 있는 가족 맞춤형 테마파크 여행지가 다양하게 포진해 있어 체력 부담을 줄이면서도 만족도 높은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지도 스킵젠 여행에 적합하다. 유럽의 로마·파리·런던 같은 도시는 조부모가 손주에게 자연스럽게 세계사와 예술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직접 감상하거나, 콜로세움을 걸으며 과거 로마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조부모의 경험과 해설이 더해지면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다만 유럽 여행의 경우 장거리 이동에 따른 체력 저하를 고려해 너무 무리하지 않고 한 번에 한두 개 도시를 여유 있게 돌아보는 여정이 알맞다.

최근 각광받는 크루즈 여행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즐기기에 이상적인 방식이다. 배 안에는 워터파크, 키즈 클럽, 청소년 라운지, 실내 수영장, 게임 룸, 가족 영화관 등 다양한 액티비티와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어 손주가 쉽게 지루해하지 않으며, 조부모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로열 캐리비안Royal Caribbean의 오아시스 클래스 크루즈는 아쿠아 쇼, 카페 거리, 아이스링크 공연, 어린이 과학 체험 교실 어드벤처 오션Adventure Ocean 등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디즈니 크루즈 라인Disney Cruise Line도 매우 인기 있는 선택지다. 디즈니 캐릭터들과의 만남, 뮤지컬 쇼, 키즈풀, 가족 전용 액티비티 구역 등 아이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가 풍부하며, 조부모에게는 성인 전용 스파와 라운지에서 휴식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한다. 크루즈는 또한 도시 여러 곳을 한 번에 방문하는 장점이 있어 손주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처럼 스킵젠 여행지는 손주의 연령과 관심사, 그리고 조부모의 체력과 선호도에 맞춰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장소보다는 함께하는 시간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두 세대가 같이 떠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다영(여행 트렌드 연구소 히치하이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