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황금홀에 울려 퍼지던 왈츠, 라이프치히의 교회에서 흐르던 칸타타, 프라하의 강변을 따라 퍼지던 오페라. 수백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선율은 그 도시의 풍경과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모차르트가 숨 쉬던 프라하, 베토벤이 산책하던 빈, 바흐가 묻힌 라이프치히, 베르디가 영감을 얻은 베로나까지. 악보 위의 이름들이 다시 살아나는 도시로 클래식 듣는 여행을 떠나보자.
클래식 음악의 수도,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수도는 두 개 이름으로 불린다. 영어로는 비엔나Vienna, 독일어로는 빈Wien이다. 둘 중 빈이 더 익숙하다면 음악 애호가일 확률이 높다. 비엔나커피보다 빈 필하모닉, 빈 소년 합창단 속 지명을 더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는 수식어가 붙은 빈 필하모닉의 팬들은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황금홀의 위치와 공연 일정을 가장 먼저 체크한다. 음악가들의 버킷 리스트로도 유명한 신년 음악회부터 상징적 공연 중 하나인 빈 모차르트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올해 빈을 찾는다면 이 도시와 역사를 함께한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를 제치고 가장 먼저 좇아야 할 이름이 있다.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 불릴 만큼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도시 전체가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가장 먼저 향할 곳은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 그의 손때 묻은 가구와 악기, 초상화 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새롭게 탄생한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에선 그가 음악적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바이브를 고스란히 담은 공연과 이벤트가 열린다.

빈에서 놓치면 안 될 또 다른 이름은 베토벤이다. 애호가들은 그가 생전 살았던 집이자 삶의 서사를 펼친 방대한 아카이브를 소장한 베토벤 하우스가 있는 하일리겐슈타트를 빼놓지 않고 들른다. 베토벤 하우스를 다 둘러본 후엔 그가 생전 즐겨 걸은 길인 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 산책로를 걸으며 세기의 음악가에게 영감을 준 풍경을 음미해보자.
빈을 찾은 여행자라면 물 흐르듯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빈의 중심가 케른트너 슈트라세에서 음대 학생 및 프로 음악가들이 펼치는 수준 높은 거리 공연을 관람하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결혼식 및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열린 슈테판 대성당에서 이 도시의 음악사와 궤를 함께한 이름들의 삶을 훑어보는 것도 좋겠다.

바흐와 바그너의 도시, 독일 라이프치히&드레스덴
화려한 바로크건축, 엘베강의 낭만적 풍경이 어우러진 독일 드레스덴은 오페라를 시, 시각적 요소, 음악, 연극적 표현을 하나로 통합한 종합예술로 끌어올린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의 도시다. 1840년 왕립 국장 젬퍼 오페라하우스가 그의 세 번째 작품 <리엔치>를 공연한 것을 계기로 1842년부터 6년 동안 이곳에 살았다. 이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까지 공연한 이곳에선 지금도 바그너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 특유의 휘황찬란한 건축미를 뽐내는 공간에서 그의 전성기를 오감으로 느껴볼 것. 그가 살았던 동네로 알려진 피르나이셰 슈트라세, 브륄셰 테라세 등을 산책하며 과거를 고스란히 품은 엘베강의 평화로운 정취를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를 여행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은 기차로 1시간 15분 정도면 닿는 라이프치히도 함께 들른다. 음악의 아버지, 칸타타의 거장 등으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왕성하게 활동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바흐가 잠든 곳으로 유명한 성 토마스 교회는 그가 약 37년간 칸토어Kantor, 음악 감독로 활동하면서 세기의 명곡과 공연을 선보이며 기량을 펼친 무대다. 합창단 ‘토마너코어’의 정기 공연에 맞춰 방문한다면 바흐의 칸타타, 오라토리오를 감상할 수 있다.
공연을 놓쳐 아쉬운 여행자에겐 교회 바로 맞은편, 생가 터에 새롭게 들어선 바흐 박물관이 있다. 직접 쓴 악기들, 자필 악보 등 음악적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에서도 바흐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흐의 초연작이 펼쳐진 니콜라이 교회,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에서도 비정기적으로 바흐를 주제로 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매년 6월엔 세계에서 온 음악가들이 곳곳에서 바흐의 작품을 공연하는 ‘바흐 페스티벌’도 열린다.
모차르트 vs 스메타나, 체코 프라하
프라하에 머무는 기간이 짧다면 다음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체코의 음악 거장 스메타나, 그리고 모차르트. 전자를 선택한 이는 가야 할 곳이 아주 많다. 프라하에서 나고 자란 스메타나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프라하를 관통하는 도시의 상징, 블타바강이 흐르는 비셰흐라트 지역으로 향해보자.
그가 쓴 악보와 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아카이브를 소장한 스메타나 박물관이 이 동네에 자리한다. 관람을 마친 후엔 그의 대표작 ‘블타바’를 들으며 블타바강을 산책할 차례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프라하의 낭만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해 질 무렵엔 비셰흐라트 언덕에 올라 금빛 노을 아래에서 프라하의 황홀한 전경을 눈에 담아보자. 프라하의 국립극장 내셔널 시어터, 18세기 유럽 바로크양식의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극장 스타보프스케 디바들로는 스메타나의 초연작이 펼쳐진 무대이자 예술의 도시 프라하의 수준 높은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모차르트는 1787년부터 1791년까지 프라하에서 자신의 음악 인생을 펼쳤다. 클래식 문외한도 다 아는 <마술피리>와 <돈 조반니>의 초연지가 바로 이 도시다. 그가 직접 쓴 악보와 즐겨 사용하던 물건 그리고 음악적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 등을 만날 수 있는 모차르트 박물관, <레퀴엠>을 작곡한 곳으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 교회 등이 프라하의 모차르트 스폿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 시기에 이 도시를 찾으면 모차르트와 스메타나의 작품을 정통으로, 혹은 창의적으로 변주한 다양한 공연으로 감각의 호강을 누릴 수 있다.
오페라의 성지, 이탈리아 밀라노 & 베로나
음악 애호가가 밀라노에서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라스칼라 오페라극장이다. 이곳만 들러도 밀라노에 펼쳐진 음악 여정의 절반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 5대 오페라극장중 하나인 이곳은 1778년 문을 연 후 주세페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같은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을 초연한 역사적 무대. <오텔로>, <팔스타프>, <나비 부인>, <투란도트>의 웅장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선율이 라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세상에 첫 음을 드러냈다. 붉은 실크로 감싼 의자에 앉아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황금빛 발코니를 바라보며 공연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18세기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1386년 안토니오 디 살루초 대주교가 착공한 후 600여 년에 걸쳐 완공한 밀라노 대성당도 음악 애호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팬데믹 시기, 안드레아 보첼리가 ‘Music for Hope’라는 타이틀의 콘서트를 열고 파이프오르간 반주자와 단둘이 ‘생명의 양식’, ‘아베마리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전 세계인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미사가 열리는 주말에 찾으면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이 내는 천상의 소리에 귀를 적실 수 있다.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안팎 거리에 자리한 베로나에선 주세페 베르디라는 이름이 이정표가 된다. 매년 6월에 시작하는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여름엔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축제를 찾는 음악인과 애호가로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고대 원형극장의 모습을 띤 공연장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리골레토>를 온몸으로 듣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디의 자취를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그의 집 빌라 베르디가 있는 부세토의 작은 시골 마을 론콜레로 여정을 확장해보자. <리골레토>, <오텔로> 등의 명작이 탄생한 곳으로 베르디가 무려 80년간 살았던 보금자리다.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동상, 그의 이름을 딴 광장,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가 열리는 베르디 극장 등 온 동네 구석구석이 그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드뷔시와 오페라,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클래식을 경험하는 방법은 선택 장애를 불러올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럴 땐 파리를 살짝 벗어나는 것도 한 방법. 시내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약 20km 달리면 닿는 생제르맹앙레에선 한 사람의 이름만 따라가면 된다. 프랑스다운 음악을 창조한 예술가, 달빛과 바다, 물과 바람 등 자연의 움직임을 신비롭고 몽환적 소리로 표현한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 얘기다.
프랑스 왕들의 별장이자 파리지앵의 주말 나들이 명소로 알려진 생제르맹앙레는 드뷔시의 고향이다. 1980년 그가 살았던 생가를 개조해 만든 클로드 드뷔시 박물관엔 그의 악상과 영감의 흔적이 담긴 악보, 악기, 가구, 가족사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친구이자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쓴 헌정 시. 관람을 마친 후엔 드뷔시의 상상력을 자극한 생제르맹앙레의 서정적 풍경을 천천히 산책하며 만끽해보자.

2 오페라 가르니에 내부 모습
파리에선 두말할 것 없이 오페라 가르니에로 향해야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공연 라인업뿐 아니라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에 등장한 대계단, 앙드레 말로가 샤갈에게 의뢰한 천장화 등으로도 유명하다. 올해는 건축 150주년을 맞이해 콘서트, 기념 전시, 작가와의 만남, 다큐멘터리 및 출판물 공개, 테마별 가이드 투어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글. 류진(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