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문을 연 공유 서재 ‘물밑서재’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일찍부터 입소문을 탄 공간입니다.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는 공간’이라는 것이 많은 이용자들의 후기인데요.
덕분에 개인 이용자뿐 아니라 인터뷰나 팝업 장소로도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디자인 축제로 꼽히는 ‘서울디자인2024’의 디자인 스폿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멋진 공간을 운영하는 최민정 대표는, 사실 교육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민정 씨는 낮에는 IT 기획자로, 퇴근 후 밤에는 물밑서재의 서재지기로 이중생활을 즐기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서재 정리부터 북 큐레이션, 공간 예약, SNS 관리, 서재 프로그램 기획까지. 모두 민정 씨가 할 일이거든요.
하지만 민정 씨는 “공유 서재 운영은 힘들기보다, 그동안 내가 진짜 원했던 꿈에 한발짝 다가가는 일인 동시에 직장을 다니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IT기획자로 일하며 ‘물밑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서재지기 최민정입니다.
Q. 공유 서재를 운영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직장생활 10년차가 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돌아보니, 저는 혼자 책상에 앉아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또 서점을 많이 다니면서, 책과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동네마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분명 누군가 제 생각에 공감할 거라고 믿었고요. 그렇게 공유 서재를 기획하고, 운영하게 됐습니다. 대신 직장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무인’으로 운영하게 됐고요.
Q. 공간을 오픈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결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A. 사실 서재를 오픈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건 아니에요. 책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고, ‘공유서재’ 창업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건 올해 4월부터죠. 그러니까 고민하고, 실천하기까지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진짜 원하는 걸 찾고 나니, 물 흐르듯 진행된 셈이에요.
Q. ‘물밑서재’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이게 됐나요?
A. 공간을 구상할 때,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 서재의 이름이었어요. 제가 원하는 걸 키워드로 정리해 보니 책, 사람, 그리고 연결이더라고요. ‘이 3가지를 종합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어떤 배우의 수상소감이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허우적거리면서, 물 위로 얼굴이라도 내밀어야지. 허둥지둥하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인상 깊더라고요. 이렇듯 물 위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물 아래 시간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물밑서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Q. 서재에 프린트해 놓은 두 개의 글이 눈에 띄어요. 소개해 줄 수 있나요?
A. 김구의 시 ‘나로부터의 시작’과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 축사입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고, 이용자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 프린트해 두었어요. 두 글 모두 ‘나로서도 괜찮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서재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란다”_허준이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_백범 김구, ‘나로부터의 시’
Q. 북 큐레이션이 마치 독립서점에 온 듯한 느낌이에요. 어떤 기준으로 책을 진열해 두었나요?
A. 기준은 그냥 저예요! 제가 읽으면서 용기를 얻었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었던 책들을 큐레이션 했습니다. 자기계발, 에세이, 소설, 그림책 등 분야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또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어른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림책을 많이 두었고요. 책을 소개할 수 있는 한 줄 카피도 넣었어요. 저처럼 이용자 분들도 많은 도움과 영감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네요.
Q. 물밑서재가 국내 최대 디자인 축제 ‘서울디자인2024’의 디자인 스폿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공간을 꾸밀 때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요?
A. 공간을 구성할 때 제가 가장 고려했던 부분은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었는데요. 이용자들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세련된 소재 대신 목재를 이용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노란 조명을 배치했어요. 또 몰입과 자유로운 기록을 위해 여러 소품을 놓기도 했고요. 이곳에서 많은 이용자들이 위로를 받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Q. 물밑서재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소개해주세요.
A. 이용자들간의 ‘연결’을 위해 명상과 독서모임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명상을 지도하시는 분도 서재에 놀러 온 손님이었는데요. 제가 프로그램 운영을 제안 드려서 같이 진행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연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Q. 공유서재 운영이 민정님께 어떤 장점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A. 공유서재를 운영하면 좋은 점이 정말 많아요. 먼저 이용자분들이 남겨주시는 후기가 저에게 큰 도움이 돼요. ‘공간의 분위기 덕분에 몰입이 잘 되서 미루던 일을 다 끝냈다’는 등의 후기가, ‘제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많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물밑서재에서 진행되는 모임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생기는 느슨한 연대가 좋아요. 함께 재밌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그 느슨한 연대 안에서 저와 결이 잘 맞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커뮤니티가 생긴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일하는 게 좋거든요. 저처럼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걸 늘 꿈꿔왔어요. 제가 서재를 열고 용기를 내니 함께 하고 싶다는 이들이 생겼고, 지금은 그들과 일놀놀일(일하듯이 놀고 놀듯이 일한다) 하고 싶어서 각자의 아이디어를 다듬고 있습니다.
Q. 직장생활과 공유 서재 운영을 병행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A. 물론 직장생활과 공유 서재 운영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요즘 더 재밌는 일이 물밑서재 운영이라, 자연스레 서재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에 대한 권태가 자주 찾아옵니다. 그래서 출근길에는 직장인 모드로, 퇴근 길에는 서재지기 모드로 스스로 주문을 걸기도 해요!
Q. 공유 서재를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을 것 같아요!
A.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물밑서재를 운영하면서 그 말을 제대로 체감하고 있어요. 서재에 좋은 분들이 참 많이 오시는데요. 제가 힘을 얻고 용기를 내는 건 늘 사람 덕분이에요. 사실 용기를 드리려고 시작한 서재인데 어쩌다 보니 제가 더 용기를 얻고 있어요.
나를 긍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는 의도로 시작한 일은 과정 중에도 즐겁고, 결국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잘 안되고 실패하면 어때요? 다시 해서 결국 잘되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