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B2B 마케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B2B 마케팅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는 편인 것 같아요. B2C처럼 트렌드에 민감하거나, 판매 성과를 빨리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점 때문일텐데요. 저는 분명 B2B 마케팅만이 지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느리다고 여겨지는 B2B 분야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인데요. 제가 미국 IT 기업에서 일하며 피부로 느끼고 있는 몇가지의 핵심 변화들을 소개해봅니다.
🌸 한 때는 대세였던, 리드젠
B2B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계시다면 한 번 쯤 들어보셨을만한 마케팅 용어가 있어요. 바로 ‘리드 제너레이션(이하 리드젠)’ 인데요. 고객의 정보 혹은 연락처를 뜻하는 ‘리드(Lead)’를 획득하는 활동을 뜻합니다.
B2B 마케팅에서 ‘리드’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B2C 제품/서비스는 가격이 비싸지 않고, 개인이 구매의 주체이기에 의사 결정이 빠르고 감정적인 구매를 할 여지도 있습니다. 반면, B2B는 여러 명의 승인을 거쳐 구매하는 고관여 제품/서비스가 많아 의사 결정 과정이 길고 복잡한 편이죠.
그래서 조직 내 의사 결정권자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파악하고 타겟팅하는게 중요한데요. '리드'는 (기업 내) 개인을 세분화하고 마케팅 활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잠재고객을 구매 가능성과 관심도에 따라 구분하고,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단계별로 관리하기 위함이죠.
리드젠의 KPI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획득한(생성한) 리드 수’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리드를 더 낮은 리드 당 비용(CPL)으로 생성하는지가 중요한건데요. 대표적인 리드젠 활동으로는 잠재고객이 웹사이트나 SNS에서 양식을 제출하여 콘텐츠를 다운로드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디지털 채널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 고객 연락처를 얻기도 어려웠던 시기에는 이 ‘리드젠’ 방식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리드 수’를 목표로 하다보니 구매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양의 리드를 확보하는데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 영업팀이 가능성이 가능성이 낮은 잠재 고객에게 연락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특히, 서드파티 벤더에게서 리드를 구매하는 콘텐츠 신디케이션 (Content Syndication) 프로그램이 좋은 예시입니다. 다량의 트래픽을 보유한 벤더의 미디어 사이트와 고객 데이터베이스에 우리 콘텐츠(예: 이북)를 홍보하고, 이를 다운로드한 리드의 정보를 공급받는 방식인데요. (콘텐츠 상호작용 없이 리드만 구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 테크 분야의 경우, 리드 당 대략 $30에서 시작해 $200가 넘는 가격을 제시하는 벤더들도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유입된 잠재고객은 우리 브랜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데요. 당연히 이들에게 영업을 시도한다 해도 전환율이 매우 낮아 효율이 떨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리드의 양에만 초점을 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MQL’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획득한 리드에게 바로 연락을 취하는 대신, 일정한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먼저 너쳐링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고객 프로필과 더 적합할수록, 리드가 다양한 상호작용(웹사이트 방문, 양식 제출 등)을 많이 할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시스템입니다. (이를 리드 스코어링이라고 불러요.)
특정 점수를 넘은 리드는 마케팅이 퀄리티를 검증했다는 의미로 ‘MQL(Marketing Qualified Lead)’이라고 명명하고 영업 팀 혹은 SDR 팀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MQL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리드 대신 MQL 숫자를 높이기 위해 비슷한 활동을 했고, MQL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모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리드에서 MQL로 기준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MQL에서 계약 성사로의 전환율이 현저히 낮아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래 설명해드릴 여러가지 이유로) 오늘날에는 ‘리드젠’이 더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방식임을 깨닫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적용하는 기업이 많아졌습니다.
♾️ B2B 마케팅은 디맨젠으로 진화하는 중

리드젠은 아직 구매 준비가 되지 않은 잠재 고객일지라도 일단 최대한 빠르게 연락처를 획득(전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모든 콘텐츠를 접근 제한하여 양식을 제출해야지만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되어있죠. (이를 게이티드 (gated) 콘텐츠로 표현하곤 합니다.) 또한 전 퍼널의 활동이 모두 '리드 생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드젠에서 소셜 광고의 KPI는 언제나 '리드 수'와 'CPL'입니다. 디맨젠의 경우, 잠재고객에게 우리 브랜드와 콘텐츠를 노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셜 광고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 때 KPI는 '도달'이 되며 전체 구매 여정 중에 접점을 하나 더한 것에 더 큰 의의를 둡니다. 우리 광고를 본 잠재고객이 구매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히 상호작용과 리서치를 끝낸 후 스스로 사이트에 찾아와 전환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죠.
디맨젠은 이렇게 (리드 획득 전 단계에서) 지속적인 너처링을 통해 리드가 영업 팀과 ‘만날 준비가 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문의하도록 하여 효율을 높이는게 목적입니다. 구매 의도가 높은 리드만 영업팀에 전달되어, 리소스를 절약하고 거래에 걸리는 기간도 단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디맨젠은 CPL이 아닌 고객 유치 비용(CAC)과 예상 계약 매출액(Pipeline)을 기준으로 최적화합니다.
리드젠에서 디맨젠으로 가기 위해 마케팅 실행에 단순한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B2B 기업의 매출 성장에 있어서의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각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B2B 마케팅이 영업 팀을 보조하는 역할로 보여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B2B 마케터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알림으로써 ‘구매 의도’를 갖게하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마케터가 수요를 만들어내고 포착하는’ 전문가라면, 영업 팀은 구매할 준비가 된 고객을 전환하는 ‘셀링’에 특화된 전문가인 것이죠.
무엇보다 단기적인 성과를 좇는 대신 진정으로 (잠재)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사적인 마인드셋(혹은 문화)이 꼭 필요합니다. 디맨젠을 적용하면 마케팅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달라지기에 이에 대한 내부적인 협의와 조율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한 이유 때문에 팀장/임원/대표 급 리더들이 ‘디맨젠’의 가치를 인지하고 실무자를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전에 ‘내 마케팅 성과가 저조한 이유 (외부요인 편)’에서 다루었듯이, 마케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전략에 대한 전사적인 협의와 리더십 팀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 왜 변화하고 있는가
(출처: Summit Partners | 이미지: 디지오션)
✅ 더욱 복잡해진 구매 여정 (다크 퍼널)
과거에는 전시회, 우편, 전화, 이메일 등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 이메일, 리뷰 사이트, 웹사이트, 광고, 디지털 옥외 광고 등 잠재고객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출처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커뮤니티, 메시징 앱, 영상 회의 플랫폼 등 동료(peer) 집단이나 지인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프라이빗한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기여도 측정 툴로 추적이 불가능한 채널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다크 퍼널'이라고 부릅니다.
Forrester 설문 결과에 따르면 B2B 구매자들은 구매 여정 전체에 걸쳐 평균 27회의 상호작용을 한다고 해요. 또한 거래의 60% 이상이 4명 이상이 구매 과정에 관여했다고 해요. 이렇게 점점 구매 여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추적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크 퍼널에서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언급되고 추천되도록, 잠재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데 집중하는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 B2B 마케팅, 핵심 변화 5가지


3️⃣ 임원부터 직원까지, 총동원!
작년에 김대호 아나운서가 뜨거운 인기를 얻으며 떠오른 ‘임플로이언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직원(Employee)과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합친 신조어인데요. 직장 생활이나 회사 제품/서비스 대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앞서 말했듯 기업의 공식 계정이나 회사 이름으로 발행하는 콘텐츠는 참여도가 낮은 편입니다. 대부분 보자마자 ’홍보겠거니’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직원들이 ‘임플로이언서’가 되어 자신의 개인 계정에서 회사의 소셜 게시물을 공유하고 반응하도록 하는 건데요. 이런 방식을 Employee Advocacy(임플로이 애드보커시)라고 부르며, 많은 B2B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광고 없이 콘텐츠로 도달할 수 있는 사용자는 전체 팔로워의 약 5% 밖에 되지 않습니다. 팔로워가 성장해도 여전히 도달을 위해 광고를 태워야하는 상황이 되버린건데요. 임직원을 활용하면 비용이 따로 들지 않고, 직원의 개인 계정으로 정보를 공유하여 신뢰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4️⃣ 영상 콘텐츠로, Thought Leadership!
B2B 소셜 플랫폼 링크드인은 최근 틱톡 같은 숏폼 영상 피드를 테스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링크드인 사용자 역시 영상 형태의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유튜브처럼 영상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시험 중이라고 얘기했는데요.
이는 B2B 브랜드들이 영상(특히 숏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긴 웨비나 영상을 여러개의 짧은 영상으로 편집하기도 하구요. 기업의 임원이나 전문가 직원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전하는 숏폼 콘텐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Thought Leadership이라고 하며, 직역하면 '생각/사고 리더십'입니다.)
잠재 고객에게 특정 행동(데모 요청, 문의하기, 구매 등)을 강요하는 대신 브랜드의 콘텐츠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임원이나 직원을 통해 ‘휴먼 터치’를 더하려는 트렌드는 계속 될 거에요.
(실제로 저도 회사에서 기존의 클릭을 유도하는 제품/홍보 위주의 포스팅에서 숏폼과 카드뉴스(캐러셀)처럼 플랫폼에서 바로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 후에 도달과 참여율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5️⃣ ABM과 디맨젠을 함께, 하이브리드 모델
타겟 기업 목록을 바탕으로 해당 기업들에게만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어카운트 베이스드 마케팅(ABM)은 B2B 마케팅의 기본인데요. ABM은 가치가 높은 기업들에 마케팅 & 영업 리소스를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목록에 없는 잠재고객을 놓칠 수 있는 위험도 있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ABM과 디맨젠 활동을 통합적으로 진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ABM 리스트에 없더라도 디맨젠을 통해 ICP(이상적인 고객 프로필; Ideal Customer Profile)에 부합하는 더 광범위한 잠재고객을 타겟팅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ABM은 핵심 기업 목록에 초점을 맞추고, 디멘젠은 퍼널 전체에 걸쳐 전반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죠. 영업/마케팅 부서가 긴밀한 협력하여 하이브리드 전략을 잘 실행한다면, ABM과 디맨젠 활동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호 보완하기가 더욱 쉬워집니다.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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