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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로랑 브랜드스토리 : 그는 디자이너이자 혁명가였다

라우드소싱

2020.06.05 17:17 조회수 2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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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우드매거진의 에디터 SSong입니다:D 이번 호에서 소개드릴 브랜드는 프랑스의 패션과 뷰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입생로랑'입니다. 아마 여성 독자분들은 대부분 알고 계실 것 같고, 남성 독자분들은 여성분들 선물을 준비하면서 많이 접하셨을 거예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를 통해 이 브랜드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게 되시면 입생로랑 제품에 더욱 애착이 가실 것 같습니다.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입생로랑'을 함께 만나보시죠~

 

 

이번 호 스포일러

1. 이브 생 로랑, 패션계를 발칵 뒤집다.

2. 패션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다.

3. 로고에도 드러난 브랜드 아이덴티티

 

 

1. 이브 생 로랑, 패션계를 발칵 뒤집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홈페이지

 

 

입생로랑의 브랜드 네임은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바로 입생로랑을 만든 디자이너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음이 편하도록 입생로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브 생 로랑'이 맞는 표현인데요.

 

위의 사진 속 남자가 바로 '이브 앙리 도나 마티유 생 로랑' 디자이너입니다. 이브 생 로랑은 1936년 8월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게 되죠.

 

 

 

사진출처 : 입생로랑

 

 

이브 생 로랑은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집에서도 어머니가 보시던 패션잡지를 읽으면서 흥미를 가졌죠. 그러다 어느 날 한 연극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극 중 배우가 입은 고전 의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디자이너의 꿈이 시작되었죠.

 

그가 즐겨 했던 놀이는 패션 잡지에서 좋아하는 모델을 잘라내어 물감으로 옷을 직접 디자인하여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패션 감각과 예술을 자유롭게 표현해냈습니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17살이 된 이브 생 로랑은 패션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인 국제양모사무국의 디자인 콘테스트에 패션 디자인 스케치를 출품하였습니다. 이 콘테스트의 심사위원은 크리스찬 디올, 위베르 드 지방시 등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심사위원으로 자리한 경쟁력 있는 콘테스트였는데요. (위 사진의 왼쪽이 크리스찬 디올, 오른쪽이 이브 생 로랑)

 

 

 

사진출처 : 입생로랑

 

 

여기서 이브 생 로랑이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3등을 거머쥡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패션잡지사 보그의 편집장 '미셸 드 브루노프'을 만나는데 그가 이브 생 로랑의 재능을 눈 여겨보죠.

 

이후, 디자인과 의상 재단을 좀 더 심도 있게 배우기 위해 파리 의상 조합에 입학하게 되지만, 딱딱한 이론과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표현하지 못하는 방식에 지루함을 느끼고 자퇴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3등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던 그 디자인 콘테스트에 다시 한번 도전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1등을 차지하여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이브 생 로랑은 보그 편집장 미셸을 만나 자신의 새로운 스케치를 보여주는데 미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인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미셸은 이브 생 로랑을 크리스찬 디올에게 소개해 주고, 그 스케치를 본 디올은 그를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채용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 포토그래피 바이블

 

 

위의 작품은 이브 생 로랑의 첫 드레스 디자인입니다. 작품 이름은 '코끼리들과 함께 있는 도비마'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포토그래퍼 리차드 아베든의 대표 작품으로도 유명하죠. 

 

1957년에는 디올의 가을 겨울 컬렉션에서 무려 35벌의 옷을 디자인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었는데요. 그 해 10월 디올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 디올

 

 

이브 생 로랑은 디올의 첫 번째 첫 번째 컬렉션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펼치지만 점차 디올의 주 고객인 보수적인 상류층 중년들이 추구하는 보수적인 패션에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위의 사진들과 같이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고 다소 개방적인 패션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는데요. 젊은 사람들은 그의 디자인을 좋아했지만 디올의 주 고객들은 이브 생 로랑이 제안한 디자인에 대해 '충격적이다', '경악스럽다' 등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결국 디올의 소유주였던 마르셀 부삭은 그에게 군입대를 권하게 됩니다.

2. 패션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이브 생 로랑은 군입대를 하지만 3주 만에 신경 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가 뽑혀 디올에서 해고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죠.

 

좌절감과 우울에 빠져있던 이브 생 로랑을 도와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입니다. 피에르 베르제의 도움으로 인해 1961년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내걸은 '이브 생 로랑'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 왼쪽이 피에르 베르제)



:: 스모킹룩



  
 

사진출처 : 입생로랑

 

 

자신의 브랜드에서 이브 생 로랑은 훨씬 더 자유롭게 그의 혁신적인 패션디자인을 펼쳐나갔습니다. 대표적으로 '르 스모킹 룩'이 있는데요. 르 스모킹은 턱시도의 프랑스 이름으로 그 당시, 남성들이 담배 냄새가 몸에 베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흡연실에서 입던 옷이었습니다. 이 옷을 여성에게 어울리도록 재탄생시켰고 편안하고 당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패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당시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입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시선이 많았는데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룩'으로 인해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하여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죠.



:: 사하린느 룩



 

사진출처 :  입생로랑

 

 

1968년에는 아프리카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고 '사파리 재킷'을 만들어 '사하린느 룩'을 탄생시킵니다. 사하린느는 사하라 사막의 여인이라는 뜻인데요. 긴 부츠로 여성미를 강조하고 작업복이 지니고 있는 특성인 활동성과 자유로움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패션으로 혁명적인 여성룩을 제안하죠.

 

이 밖에도 선원들의 재킷, 어부의 방수복 등 남성들이 주로 입었던 옷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을 위한 옷으로 재탄생시켜 패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 몬드리안 룩



  
 

사진출처 :  입생로랑

 

 

위의 혁신적인 여성룩 이외에도 이브 생 로랑이 최초로 시도했던 패션이 있습니다. 바로 1965년 선보인 '몬드리안 룩'인데요. 패션계 최초로 예술작품과 패션을 접목시킨 사례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피카소, 앤디워홀, 반 고흐 등의 다양한 컬렉션을 만들어냈죠. 그중에서도 위의 몬드리안 룩은 패션 사전에 등재될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뷰티

 

 

1978년에는 내 옷을 입은 여성에 걸맞은 얼굴을 선사하겠다며 코스메틱 라인 '이브 생 로랑 뷰티'를 론칭하고 글로벌 탑 뷰티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사랑하는 뷰티브랜드로 면세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매 시즌마다 특별한 한정판과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럭셔리한 제품 케이스와 컬러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죠.

 

이렇게 뷰티&패션계에 큰 획을 그은 이브 생 로랑은 2002년 1월 마지막 패션쇼를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죠. 대중들은 1960~1980년대까지 프랑스가 패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브 생 로랑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3. 로고에도 드러난 브랜드 아이덴티티


 


  

사진출처 : 입생로랑

 

 

이브 생 로랑을 얘기하자면 로고 디자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독특한 디자인으로 강렬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먼저 브랜드의 풀네임으로 이루어진 워드마크 로고 디자인을 살펴볼게요! 이 로고는 폰트의 일반적인 규칙을 벗어난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산세리프체, 세리프체, 이탤릭체, 글리프 등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 디자인하였죠. 

 

알파벳의 끝은 날카롭게 뻗어있으며 글자마다 획의 굵기에 변화를 주어 입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폰트 크기, 자간, 기울기 등에서도 변칙적인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YSL 로고는 위의 텍스트 로고보다 더욱 강한 아이덴티티를 가집니다. 이 로고는 주로 뷰티라인에서 많이 사용하고 이 디자인을 제작한 이래로 50년 넘게 이브 생 로랑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죠. 


 

사진출처 : 입생로랑

 

 

 

그리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인 로고디자인입니다. 에디 슬리만이 만든 헬베티카체의 디자인으로 기존의 로고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드는데요. 아예 브랜드 이름까지 생 로랑으로 바꿔 위의 로고를 공개할 당시에 이브 생 로랑 브랜드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위 디자인의 특징적인 점은 SAI'NT'와 LAURE'NT'의 NT를 연결한 게 포인트입니다. 또한 아래 PARIS는 세리프체 장식을 희미하게 사용 중이어서 이브 생 로랑의 기존 로고처럼 독특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 입생로랑 공식 유튜브채널

 

 

지금까지 입생로랑(이브 생 로랑)의 브랜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브 생 로랑 디자이너는 편견 없는 생각으로 보수적인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남성 옷을 여성 옷에 부여하는 대담함을 보였고, 자유분방한 아이디어로 그 시대에 존재했던 고정관념들을 깨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면모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훌륭한 영감을 주는 모티프가 되어 예술계의 성장까지 일으켰죠. 파리와 마라케시에는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아직도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이자 혁명가였던 이브 생 로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오늘의 매거진을 마칩니다:)

 

 

 

  

 

“입생로랑 틴트는 9호, 12호가 몹시 예쁩니다ㅠㅠ”


 

  

 

  • #입생로랑
  • #디자이너
  • #브랜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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