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꺼져가던 조선소 불빛, 다시 살아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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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지난 10여 년간 세계 조선업은 거센 파도를 맞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조선업은 회복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며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울산의 용접 불꽃, 거제의 조선 클러스터, 목포의 장인 정신이 이어 붙인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그것이 곧 한국 조선업의 힘이다. 한국은 지금 기술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세계에 수출하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쓰고 있다.

 

  

위기를 넘어 다시 선두로

 

지난 10여 년간 세계 조선업은 거센 파도를 맞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발주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조선 강국’으로 불렸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점유율이 급락하며 큰 위기를 겪었다. 많은 이가 ‘한국 조선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한국 조선업은 회복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며 다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다. 첫째, 탄소 중립 시대가 열리면서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LNG 운반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쇄빙 LNG선, 첨단 군함은 세계가 필요로 하지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배들이다. 둘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불안정, 미중 갈등 등으로 세계는 다시 ‘에너지 안보’와 ‘해양 패권’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안정적 해상 물류망과 강한 해군력이 국가의 힘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안정적 해상 물류망과 해군력 강화를 서두르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시대적 필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즉 한국 조선업 르네상스는 산업적 부활을 넘어 지정학·에너지·안보 패러다임 전환을 반영하는 시대적 메시지다.

 

 

 

보이지 않는 힘, 산업 생태계와 장인 정신

 

한국 조선업의 진짜 힘은 대형 조선소의 눈부신 실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울산·거제·목포 등지에 뿌리내린 수백 개 중견·중소 협력 업체와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선박 한 척은 단일 기업의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용접봉 하나, 도장재 한 통, 전장 부품 하나까지 빈틈없이 최적화된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초대형 LNG 운반선이나 최첨단 군함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특히 현장의 숙련 기술자들은 한국 조선업의 숨은 자산이다. 용접·도장·배관·전기·시운전 등 수십 가지 공정이 정밀하게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장인들은 오랜 경험과 감각을 총동원한다. 불꽃의 온도가 1℃만 달라져도 용접선의 강도가 흔들리고, 배관 곡선의 각도가 미세하게 틀어져도 선박의 효율성이 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차이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장인 정신이며, 그 축적된 노하우가 선박의 생명과 직결된다. 그래서 글로벌 선주들이 한국산 선박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것은 가격이나 납기보다도 ‘보이지 않는 신뢰’다.

 

또 한국의 조선업 생태계는 지역사회와도 맞물려 있다. 울산의 항구, 거제의 조선소, 목포의 부두에서 사람들은 조선업을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이어 간다. 세대를 거쳐 가업처럼 이어지는 용접 장인의 손길, 지역 학교에서 배출되는 젊은 기술자, 협력 업체의 안정적 공급망이 한데 얽혀 지역 경제와 생활 문화를 함께 키워왔다.

 

이런 유기적 구조가 바로 한국형 산업 모델의 특징이며, 국영기업 체제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중국식 모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렇듯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하나의 조선소’가 아닌 ‘하나의 생태계’다. 그 안에는 사람·지역·산업·사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거대한 네트워크가 바다 위의 초대형 선박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엔진’으로 작동한다.

 

 

  

지난 6월, HD한국조선해양은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 조선소와 전략적·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는 한미 조선 기술 협력과 북미 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의미다. ©HD현대

 

 

 

미국 조선업의 몰락과 마스가 프로젝트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조선업의 몰락이다. 한때 세계 최강의 조선 능력을 자랑하던 미국은 현재 상선·상업용 조선업에서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 고비용 구조·인력 단절·민간 발주 부재로 상선 건조 능력은 사실상 붕괴되었고, 군함 분야에서도 수주 잔량 대비 생산능력과 정비·수리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MASGA,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최대 1,500억 달러약 215조1,450억 원 규모로 예상되는 이 협력 사업은 선박을 수주하는 것에서 한국의 기술과 인력 그리고 산업 생태계 자체를 수출하는 전례 없는 도전이다.

 

다만 ‘현지화’라는 과제가 뒤따른다. 미국의 존스법, 번스-톨레프슨법Byrnes-Tollefson Act,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 노동조합 문제, 인력 수급 등 복합적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 3사인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지만, 선박 수출에서 그치지 않는 현지 생태계 재건이라는 더 복잡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함께 쇠퇴한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려는 전략적 협력의 의지를 담고 있는 마스가 모자 ©한경DB

 

 

 

르네상스의 본질, 생태계 수출

 

현재 한국 조선업이 직면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인력 부족이다. 고숙련 인력이 은퇴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현장에서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려온다. 수십 년간 용접·도장·배관·전장 기술을 축적해온 이들의 공백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협력 업체들은 원가 상승과 납품 단가 압박에 시달리며 경영난에 내몰리고 있다. 조선업의 최전선은 이미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에 새로운 시험대이자 기회다. 선박을 건조하는 조력자를 넘어 인력 양성과 협력 업체 네트워크, 나아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수출하는 국가 모델로 도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 한국형 인력 양성 체계와 기자재 공급망, 협력 업체 패키지를 이식하지 못한다면 프로젝트의 성공은 요원하다. 반대로 이 모델을 완벽히 이식한다면 마스가는 산업 협력을 넘어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한화는 국내 조선사 중 처음으로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인수함으로써 글로벌 네트워크를 단순한 수주 중심에서 생산 기반까지 확장했다. ©Hanwha Philly Shipyard

 

 

앞으로 경쟁은 수주가 아니라 조선업 생태계 자체를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속도보다 정밀한 설계, 즉 세 가지 가드레일이 요구된다.

첫째는 정책·제도 정비다. 미국의 규제와 충돌하지 않도록 협력 구조를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조선 및 항만 인프라법SHIPS Act, 번스-톨레프슨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자국 산업 보호 기조와 충돌하지 않도록 한미 조선 협의체Shipbuilding Consultative Group 설립 등을 통해 원자재·인력·기술·MRO를 포괄하는 협력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인력 양성과 산업 생태계 보장이다. 교육·훈련 체계를 갖춘 인력 양성 센터를 운영하고, 한국산 기자재와 부품의 조달 비중을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협력 업체와 현지 조선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셋째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조율이다. 마스가는 경제를 넘어 안보 협력의 축으로 확장된다. 방산 선박에서 상업용 선박까지 이어지는 패키지 전략을 구축하고, 군수 지원 표준화와 기술이전·보안 규제 합의가 뒤따라야만 진정한 동맹이 완성된다. 마스가는 한미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기회의 창이다. 성공은 선박 한 척의 납품이 아니라, 정책·산업·전략 세 축을 아우르는 촘촘한 가드레일을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

 

르네상스의 본질은 과거의 영광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 창조에 있다. 한국 조선업이 그 길을 연다면 세계 1위 탈환은 목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다.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은 선박이지만, 그 배를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산업의 결이다. 한국 조선업의 르네상스는 바로 그 결을 세계로 확장하는 여정이다.

 

 

 

글. 문근식(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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