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산업이 민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열렸다. 우주여행을 꿈꾸고, 우주 산업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쟁을 넘어 이제 우주는 안보 전략의 핵심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 세계 강대국들은 앞다퉈 군사 위성과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도 정찰 위성 개발과 우주작전전대 신설 등으로 본격적 대응에 나섰다. 민간과 군이 협력하는 K-우주 방산 모델은 이제 시작 단계다.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과연 어떤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상에서 우주로, 안보 패러다임의 혁명
뉴 스페이스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우주는 이제 과학 탐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전쟁의 방식까지 바꾸는 전략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위성이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는 적의 지휘부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감시 능력이 요구된다. 동시에 짧은 시간 간격으로 같은 지역을 반복 감시할 수 있는 ‘재방문 주기Revisit Time’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우주 기술이 실제 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스타링크Starlink 등 저궤도 위성 기반 통신망은 전장의 핵심 인프라가 되었고, 이를 통해 무인 드론이나 수상정까지 장거리에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되었다. 전장의 상황을 (준)실시간으로 전달 가능한 AI 분석 시스템에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와 스마트 군수 시스템을 결합하면 병사는 총 대신 마우스를 들고 싸우고, AI와 로봇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전투를 수행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전쟁의 속도는 지금보다 10배 이상 빨라질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통적 인공위성을 넘어 궤도상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우주 비행정요격기, 군사용 우주정거장, 심지어 달 기지를 군사 거점으로 활용하는 논의까지 진행 중이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수만 기의 저궤도 위성망 사이에 소형 핵무기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재 어떤 국가도 제대로 된 방어 수단을 갖추지 못한 영역으로, 우주 군비 경쟁의 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제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지구를 지배한다”라는 말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다. 우주가 곧 안보다. 그리고 그 안보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우주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우주 군사 기술 트렌드
뉴 스페이스 시대는 사실상 스페이스X가 촉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가능한 발사체를 통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고, 군용·산업용·상용급COTS 부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저비용 위성 제작 시대를 열었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적 가치를 입증한 스타링크 저궤도 군집 위성 통신망이다. 또한 개발 중인 초대형 로켓 스타십Starship은 지구 전역에 150톤 규모의 군사물자를 1시간 이내에 투사할 수 있는 군사적 잠재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뉴럴링크Neuralink의 성공적 개발이 이뤄지면 생각만으로 전장을 지휘하는 시대까지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블루 오리진Blue Origin, 제너럴 아토믹스General Atomics 등은 NASA와 협력해 핵 추진 우주선을 개발 중이며 향후 언제든 군사 목적으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 스타랩Starlab 등 민간 우주 기업은 현재 과학 탐사 및 의약품 연구 목적으로 소형 우주정거장을 개발 중이다. 이는 군사용 궤도 기지로 손쉽게 전환이 가능하며, 기존 국제우주정거장ISS보다 작고 기동성이 뛰어나 방어 측면에서 효율적 옵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2 민간 우주 기업의 선두 주자 중 하나인 액시엄 스페이스가 프라다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우주복 ©Prada
유럽은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해 원웹OneWeb 저궤도 군집 위성 통신망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스페이스X의 성공에 자극받아 최근에는 군사 목적 중심의 IRIS2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다만, 러시아의 우주 위협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등으로 자금력에 한계가 있어 공격적 우주 무기 개발에는 소극적 상황이다.
중국은 스페이스X에 대응해 ‘궈왕GuoWang’ 프로젝트를 통해 1만 기 이상의 저궤도 군집 통신위성 배치를 시작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 국가로서 글로벌 군사작전 역량을 우주 기반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의 주요 방산 기업은 미사일 및 레이저 무기를 이미 우주에서 시험 완료했으며, 현재 실전 배치를 위한 최종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특히 레이저 무기는 기상 및 거리의 제약이 있어 오히려 우주 기반 무기 체계로 활용 가치가 더욱 크다고 평가된다.
한국 방산 기업, 우주로 향하다
국내 주요 방산 기업도 빠르게 우주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이는 기술 자립과 국방 안보 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며, 각 기업의 전문성과 성장 전략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주 발사체 개발의 최전선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있다. 누리호 발사체의 주관 기업으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주도하며, 재사용이 가능한 메탄 엔진과 고체 발사체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회사인 한화시스템과 쎄트렉아이를 통해 위성 사업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한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위성 제작 분야에서 차세대 중형 위성 사업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6G 기반 저궤도 군집 위성과 AI·무인기 등을 연계한 미래형 복합 방위 체계를 수출 모델로 개발하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전장을 설계하고 있다.

2 국내 최초로 민간 주도 소형 발사체의 상업화를 이룬 이노스페이스 ©한경DB
LIG넥스원은 정밀한 기술 기반의 위성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SAR 및 KPS 항법 탑재체 국산화를 비롯해 군 위성통신 단말기와 기상위성 체계에도 참여하며, 고도화된 위성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모 중이다. 통신 및 감시 기술에 강점을 가진 한화시스템은 군 통신위성과 초소형 위성 체계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드론 대응용 고출력 레이저 무기 기술을 접목하며, 지상과 우주를 잇는 차세대 방산 플랫폼 구축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민간 우주 발사체 시장에서는 이노스페이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브라질 공군과 협력해 한빛-TLV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내 최초로 민간 주도 소형 발사체의 상업화를 이뤘으며, 일부 발사체 재사용 기술도확보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K-우주 방산의 도전과 미래 전략
한국의 우주 방위 산업이 국제 경쟁에서 성공하려면 기술력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위성 제작 비용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매우 높아 국가 예산으로는 필요한 성능의 위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군 통신과 같은 전략적 중요성이 큰 분야를 외국 위성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어 위성 제작 단가를 낮추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개발 초기부터 중동 및 동유럽 국가 등 K-방산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협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시장과 기술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기업에만 책임을 맡기는 방식이 아닌, 정부 주도의 전략적이고 실질적 지원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국제 공동 개발과 생산 단가 절감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산업체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5대 우주 산업 강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국제적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K-우주 방산은 이제 막 도약을 시작한 산업이지만, 기술력·전략·협력이라는 세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한국이 세계 속에서 경쟁력 있는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우주는 더 이상 과학 영역에 머물지 않으며,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의 최전선이다. 지금이 바로 K-우주 방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골든 타임이다.
글. 곽신웅(한국국방우주학회 회장,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