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미의 매거진

대성당과 우주인의 타임슬립

최연미

2019.07.1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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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00년, 당시 학교에서 전공이었던 스페인어를 현지에서 배우고 싶어 휴학을 했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내려가 영어강사로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서울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으기에는 하숙비와 생활비가 들기에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일을 하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꿈에 그리던 스페인 어학연수를 6개월간 다녀왔다. 내가 살았던 곳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떨어진 살라망카 Salamanca라는 대학 도시였다. 살라망카는 1282년에 스페인 최초의 대학인 살라망카 대학이 세워진 곳이다. 현재에도 스페인어(까스떼야노) 표준 사전을 살라망카 대학에서 집필하고 있다. 살라망카는 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과 나와 같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어학 연수생, 그리고 관광객들이 기존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작은 도시였다. 걸어서 끝에서 끝이 40분이면 충분한 작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살라망카 대성당에 숨겨진 우주인

 

  

 

도시 자체가 예쁘고 볼거리가 많아서 늘 관광객이 많았는데 관광객이 꼭 방문하는 살라망카 대성당에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대성당 외벽 조각에 작게 우주인 조각이 숨겨져 있었고 처음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 우주인을 찾아내는 것이 일종의 미션이었다. 스페인 대성당은 16세기에 완공되었는데 우주인에 대한 개념이 성립되기 전에 지어진 건축이다. 아폴로 달 착륙이  1969년이니까 그전에 어떻게 이 우주인 조각상을 넣었을까 싶다. 16세기에 지어진 건축에 우주인의 옷과 헬멧을 착용한 조각상이 있다니 처음에는 나 같은 관광객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을 놀리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정말 대성당의 외벽 조각에 어슴푸레하게 우주인처럼 보이는 조각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주인의 의복을 갖춘 조각상이 있었다.

 

 

  

 

위에서 보이는 왼쪽 사진이 개보수하기 전 팔이 부러진 우주인이고 지금은 부러진 팔과 뭉개진 얼굴을 보수한 우주인 조각상이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로 제작되어 있다. 이렇게 거대하고 복잡한 성당 외벽 조각상에서 이 작고 장난기 가득한  우주인 조각상을 나 혼자 힘으로 처음 찾아내었을 때 '와우' 탄성이 나왔다. 우주복, 헬멧, 통신장치, 호흡기, 부츠까지 정확하고 세밀하게 조각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원래는 다른 모양과 의복이었는데 지금 우리 눈에 우주인으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살라망카 대성당 우주인에는 여러 설이 있었다. 우주인이 과거로 타임슬립을 하여 살았기 때문에 조각상에 반영되었다는 설과, 당시 고대 사람들이 미래로 넘어가서 미리 우주인을 보고 과거로 다시 돌아가 조각상에 반영하였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았다. 살라망카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을 낳기에 충분한 우주인 조각 찾기였다. 혹시 스페인에 여행 가서 살라망카에 들릴 시간이 있다면 이 우주인을 한 번 찾아보면 재미있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여러 설 중에서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스페인 지역에서 채굴되는 특유의 노란색톤을 띠는 돌(일명 Yellow stone)을 사용하여 대성당이나  대학 및 큰 구조의 건축물들을 쌓아 올렸는데 그 돌은 조각하기에 유연한 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점점 퇴색되고 파손이 될 경우 약간의 개보수 작업을 하는데, 근대에 들어서 개보수 작업을 하면서 위트 있게 우주인을 넣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 강화 성당

강화도에 가면 한옥 건물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 있다. 성당을 다니진 않지만 이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고 싶어 몇 년 전 혼자 차를 몰고 갔었다. 한옥 외관이었고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침 미사 시간이 아니라 아무도 없었고 조용한 실내에 혼자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 들어서니 시원한 공기가 실내에 맴돌았다. 마치 오래된 유럽의 어느 도서관에 들어선 듯 오래된 나무 냄새도 기분 좋게 풍겼다. 짙은 밤색으로 칠해진 반질 반질한 나무 기둥과 오래된 목조 의자들이 가지런히 앞을 보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샹들리에 조명이 머리 위에 높이 놓여있었고 그곳이 성당임을 알 수 있게 여러 조각상들과 성당 교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국내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의 박해받던 순간들이 마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원형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중남미 성당의 갈색 예수상

몇 해전 혼자 페루 리마와 마추픽추로 유명한 꾸스꼬(Cusco)에 다녀온 적이 있다.  TVN '꽃보다 청춘' 페루 편에서도 소개되어 잘 알려진 꾸스꼬는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은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챙겨간 약을 먹거나 페루 전통 마테차를 마시는 일이다. 어느 정도 고산지대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마추픽추 일정을 하게 되는데 꾸스꼬 시내는 타임 슬립 한 것처럼 예전 도시의 풍경이 꽤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와이파이(WIFI)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카페 문 앞에 걸려있는 안내표지판이 어색할 만큼 옛 도시의 풍경이 진한 곳이다. 그래서 길에서는 페루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꾸스꼬의 한가운데에 있는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이 스페인 건축 양식으로 중앙 광장을 만들고 그 중앙 광장에 대성당을 지은 것이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중남미 특유의 화려하고 토착적인 장식과 함께 한가운데에 짙은 갈색의 예수상이 모셔져 있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종인 메스티소의 피부톤을 상징하는 것이다. 백인의 예수상을 보아 오고 교육받은 편견이 있다면 낯설 수 있는 장면이다(사실 신이 인간처럼  어떤 피부가 존재한다 생각하진 않는다). 과달루페라고 불리는 중남미의 성모상도 마찬가지로 갈색 피부톤이다.

 

   

페루 꾸스꼬 대성당 

 

지역 특성을 반영하는 조화로움

최근 브랜드 매장 인테리어 트렌드 중 하나가 매장별로 지역 특색에 맞게 다른 인테리어를 적용하는 것이다. 지역이라는 개념은 동네가 될 수도 있고, 주변 건물이나 상권 분위기, 주변 환경이나 유동 인구의 특징, 주변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특징, 날씨 환경까지 감안하여 같은 브랜드 매장이라도 전혀 다른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동일한 인테리어 요소를 복사해서 붙이듯이 일관되고 통일감 있게 매장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제는 각 지역 매장별로 다른 특성을 반영하여 같은 브랜드 매장이라도 같은 지역 안에 있는 매장이라도 전혀 다른 인테리어와 공간적인 구성을 기획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주변 건물과의 조화도 중요하고 그 지역 특유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매장마다 다른 콘셉트와 테마를 정하고 같은 듯 전혀 다른 인테리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블루보틀 커피 매장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교토 '난젠지' 절 근처에 있는 블루보틀 매장이다. 블루보틀 교토 지점은 이미 수많은 한국 고객들이 매일 많이 다녀가고 있는 곳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만나는 포토스폿이기도 하다. 교토 매장이 특히 건축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뛰어난 이유는 일본 전통 마치야 스타일의 100년 된 찻집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변화만 가미하여 블루보틀 커피 매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가 일본의 100년 찻집에서 자리를 품으면 이렇게 된다. 어떤 날씨든 어떤 각도에서는 늘 한 폭의 절제되고 있는 동양화 같은 풍경들이 연출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본 고택을 개조한 블루보틀커피 교토점 

비비고 Bibigo라는 CJ푸드빌의 브랜드가 해외 매장을 오픈할 때에는 한국 전통적 모티브를 모던하게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매장 1,000개를 돌파한 스타벅스의 경우에도 들어서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경주에 있는 스타벅스 보문 DT(드라이브 스루)점에 두 번 들린 적이 있는데 여기 2층 좌석은 좌식으로 되어 있다. 경주와 보문단지라는 지역적 특색과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브랜드 공간은 조화로움과 창의적인 변주 사이에서 균형감을 가져가는 것이 핵심이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브랜드 공간은 트랜드에 맞춰 쉽게 톤을 바꾸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아끼는 공간들이 2년을  못 채우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서의 추억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조화롭게 잘 만들어진 우리의 공간들이 같은 자리에서 최소한 10년에서 20년 이상 변함없이 그 지역의 따뜻한 사랑방으로 남길 바란다.

 

 

  
비비고 UK 매장

 

 

  
좌식 테이블이 있는 스타벅스 경주 보문호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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