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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이 잘 되면 영업은 필요가 없을까? - 상

브랜드부스터

2018.12.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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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년 전에 친한 카피라이터와 밤새 술을 마시면서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과연 브랜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자리였다. 브랜딩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화였다. 사실 이 대화는 정답이 없는 토론이다(정답이 있으면 토론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가 칼로 자르듯이 선언한 말이 꽤 불편하게 들렸다.

 

“브랜딩이 잘 되면 영업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지나지게 브랜딩을 신뢰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취해서 그 뒤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 문장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이 지면을 빌려 저 말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검증해보려 한다.

 

 

2.

우선 영업, 마케팅, 브랜딩이 탄생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 배경 속에서 세 개념을 각각 정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영업과 마케팅과 브랜딩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개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념이 세분화되어 이름이 붙여지면서 갈라졌을 뿐, 셋 다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 근간을 둔 같은 형제다.

 

 

① 영업

포괄적으로 본다면 기업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영업이다. 조금 더 명확하게 정의하자면 영업이란 고객을 창출하고 유지발전시키는 모든 행위다. 길거리에서 호떡 파는 아저씨가 호떡 10개 사면 하나 서비스하는 것도 영업이고, 보험사 아주머니가 집에 찾아와서 좋은 상품 나왔다며 웃는 것도 영업이다. 별 일 없어도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니며 얼굴 한 번 비추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도 있다. 저금하러 은행갔는데 직원이 웃으면서 적금상품 권하는 것도 영업행위다. 광고대행사 AE가 광고주 팀장 생일에 케이크를 보내주는 것도 영업이고 가전회사에서 에어컨 신제품이 나왔다며 끙끙거리며 들고가서 하이마트 담당자에게 보여주며 매장 내 전시영역을 많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영업의 일환이다. 영업직이 잠재고객 또는 고객을 만나거나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모든 행위가 영업에 속한다.

 

 

 

 영업은 고객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고객=이익'이므로 영업의 고객창출은 이익창출을 의미한다. 따라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기 때문에 회사에서 가장 대접받고 발언권이 센 편이다. 영업은 재무에서 가장 좋아한다. 왜? 돈을 벌어다주니까. 영업실적은 가시적이어서 확인하기 쉽다. 가전매장에서 제습기 사면 반찬통 준다는 이야기 듣고 제습기를 사는 순간 당신은 이번 달 영업에서 기획한 프로모션 정책의 실적을 올려준 셈이다. 영업결과를 매달, 매주, 매일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적만 잘 내면 제일 돋보이기 좋은 직무다.

 

 

한편, 영업의 범위는 단순히 개인 대 개인, 혹은 개인 대 기업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기업과 기업, 기업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에도 영업은 존재한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각국의 정상과 회담하고 현지의 기업인과 이야기하는 것도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 그룹 회장에게 쌍용차 문제를 논의한 것도 영업활동이다. (출처: 연합뉴스)

 

 

윤태호 作 '미생'에 등장하는 원인터내셔널은 무역상사다. 팔릴 만한 아이템을 확보하여 이문을 붙여서 파는 무역은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무역상사는 이러한 무역을 주도하는 기업이며 수많은 회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망이 유지되는 근간은 영업이다. 이처럼 영업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이익창출 활동이다.

 

 

 

미생에 나오는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상사도 영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다. (출처: 미생)

 

 

한 때 영업을 무시한 적이 있었다. 마케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회의에 들어와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업을 이해하게 되면서 영업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 밝히듯이 영업이 없다면 마케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② 마케팅

마케팅의 고향인 미국의 마케팅학회에서 정의하는 마케팅은 다음과 같다.

 

마케팅은 조직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의사소통을 전달하며,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조직 기능이자 프로세스의 집합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마케팅 원서에서 나올 법한 문구다. 2004년 버전의 정의가 나오기까지 두 번의 수정을 거쳤으며, 한국 마케팅학회의 정의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도 마케터지만 저런 길고 복잡한 정의는 외우지 못한다. 내 기준에서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 정의하면 마케팅은 시장을 형성하고 유지발전시키는 모든 행위다. 특히 Marketing에서 진행을 의미하는 -ing에 주목한다면, 시장은 한 순간에 멈추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시장'이란 상점들이 모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어떤 제품(서비스)을 구입(사용)하는 소비자(사용자)의 총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마케팅에서 말하는 시장은 같은 니즈를 가진 소비자 집단이다.

 

예를 들어 '음료'시장을 살펴보자.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니즈(needs)를 가진 모든 소비자는 이 음료시장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세부니즈가 존재한다. 그냥 생수를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밖에 커피나 이온음료, 주스를 원할 수도 있다. 또한 커피를 마시더라도 아메리카노, 콜드브루, 라테와 같이 취향이 갈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장은 소비자의 니즈를 기준으로 생성되며, 기업 또한 이 니즈에 맞춰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시장을 창출하거나 유지발전시킨다.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다양한 시장세분화가 가능하다.

 

 

그럼 기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시장을 만들어낼까? 위에서 언급한 니즈를 파악하는 건 기본이다. 그 뒤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어떤 욕망이 있는지 조사하고(수요 파악), 해당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기획하고(상품 기획), 그 해결책의 가치를 설정하고(가격 설정), 해결책과 소비자의 접점을 결정하고(유통망), 이 것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한다(커뮤니케이션).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이 미니오븐을 런칭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걸 만들기 위해 수요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한다. 먹방과 쿡방이 떠오르고, 서점에서 요리책이 잘 팔린다. 스스로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잡힌다. 미니오븐으로 빵을 굽거나 생선을 조리하는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제 잠재 소비자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규모를 따져서 이 미니오븐을 만드는 투자금액을 결정한다. 계산해서 원가 대비 이익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면 미니오븐 기획 및 제작에 투자한다. 

 

상품기획팀의 기획 하에 개발팀에서 미니오븐에 필요한 기술을 조합하고, 디자인팀에서 UI를 개발하고 제품을 디자인한다. 현장에서 판매를 담당할 영업팀과 협의하여 가격을 정하고 해당 제품을 어떤 유통을 통해 판매할지 정한다. 한편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미니오븐을 네이밍하고 로고를 정하고 요리를 즐겨할 것 같은 잠재소비자를 타겟팅하여 이 제품을 어떻게 알릴지 기획한다. 잠재 소비자가 실제 소비자로 전환되는 과정, 즉 구매가 반복되면 미니오븐이 팔린 대수와 판매액규모가 도출된다.

 

어느 날 체크해보니 미니오븐은 이번 상반기에 국내에서 총 20,000대가 팔렸다. 20,000대를 국내 미니오븐 시장의 크기로 볼 수 있다. 그 중 A사의 미니오븐이 3,000대가 팔렸다. 이미 시장에 먼저 진출한 B사는 10,000대가 팔려서 1위, D사는 4,000대가 팔려서 2위다. A사는 우선 B사보다 만만한 D사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더 개선된 미니오븐 개발을 서두른다.

 

 

 

 

 시장은 제품의 판매대수 또는 판매액의 총합으로 그 크기를 가늠한다.

 

 

다시 말하지만 마케팅 기획은 곧 시장을 생성하고 키우는 과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 시장이 아닌 '우리 기업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로 가득 찬 시장'을 기획하는 것이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이유는 영업의 한계 때문이다. 주로 대면을 통해서 고객 창출을 하는 영업만으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소비자와 강력한 경쟁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이 한명 한명 쌓이면서 고객층이 형성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B2B 영업 또는 마케팅이다.)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마케팅을 탄생시켰다. 마케팅은 영업과 달리 고객단위가 아닌 시장단위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한 때 물건을 만들어서 영업만 해도 팔리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공급량이 과잉되면서 차별화가 중요해지자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개념이 정의된 것이지, 그 전에도 제품을 기획하고 가격을 결정하고 어디서 팔지 정하고 어떻게 알릴지 정하는 과정은 이미 존재했다. 단지 그 과정이 체계화되고 정리되어서 마케팅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영업과 구별되었을 뿐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그 개념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힘들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난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여담이지만 아직까지도 영업과 마케팅은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의 조직구조는 기업이 해당 조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케팅팀이 영업본부에 속해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마케팅 팀이 영업 본부에 속해 있으면 아무래도 영업 활동을 지원하는 스태프 역할을 맡게 된다. 제품 카탈로그를 만든다거나 홍보영상을 만들어서 영업사원들이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주로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초반에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뛰어다니는 영업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보험이나 제약에서도 영업은 마케팅보다 중요하다.  

 

 

기업 조직도는 기업이 그 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케팅 기획은 먼저 시장범주부터 설정해야 한다. 해당 니즈를 가진 고객의 총합을 타겟시장으로 규정해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알리는 과정이 마케팅 프로세스다. 가상의 시장 안에 이러이러한 고객이 있다고 믿고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영업인과 마케터는 근본적인 관점이 다르다. 영업인에게 광고를 하기 위해 1억 원을 써야 한다고 하면 판매현장에서 1인당 10만원씩 판촉비로 1,000명에게 쓸 수 있는 돈을 너무 아깝게 쓴다고 타박한다. 상대적으로 마케팅은 영업보다 이익 창출에 시간이 더 걸린다. 신제품이 나와도 유통채널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비용으로 보느냐 투자로 보느냐는 결국 관점의 차이다.

 

 

이익 창출에 시간이 더 걸리지만, 시장 단위로 생각하는 마케팅은 개별고객 단위로 생각하는 영업보다 더 큰 이득을 기업에게 가져다준다. 물론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초반 영업활동이 중요하다. 마케팅을 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기업을 버티게 해주는 역할은 영업이 한다. 신제품이 시장진입에 성공하고 소비자들이 해당 신제품을 인지하고 구매하여 하나의 시장을 이룬다면 시작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매장에 신제품이 가득하고 TV로 대표되는 전파매체와 신문잡지로 대표되는 인쇄매체를 통해서 기업의 광고가 널리널리 퍼진다. 광고를 많이 할수록 인지도가 쌓이고 매출도 늘어난다. 그렇게 마케팅을 거듭하던 기업은 소비자들을 관찰하다가 어떤 현상을 발견한다. 해당 제품을 반복구매하던 소비자가 대상을 '물건'이 아닌 '이름'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격, 기능 등이 아닌 '브랜드'라는 새로운 구매기준의 등장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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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랜드 부스터

- 가끔 요리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남자

-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날것의 언어를 사랑하는 기획자

- 종합광고대행사의 AE였다가 브랜드 마케터로 전향한 직장인

-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며, 브랜드 부스팅 전략을 탐구하는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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