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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 고객이라는 환상

STONE

2020.01.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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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부의 가치

 

 

<백투더퓨처2, 마티 맥플라이. 영화의 초반, 2015년 미래를 담은 씬은 수 많은 관객들을 설레게 했더랬다>

 

백투더퓨처2에 나오는 스포츠연감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티가 미래(2015년. 이미 과거ㅜㅜ)에서 가져오려던 1950년부터 2000년까지의 스포츠 매치 결과들이죠. 결국 악당 비프가 그 스포츠연감을 가로채 과거의 자신에게 전달해 엄청난 부자가 되며 과거가 꼬인다는 줄거리입니다. 경기의 결과들을 다 알고 미리 베팅을 할 수 있었으니 주인공, 악당 할 거 없이 노릴만한 물건이었죠. 2015년에 왔다가 1985로 돌아간다면 사실 나이키와 애플의 주식을 사는 게 저 스포츠 결과 베팅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반대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가져오고 싶은 물건도 있습니다.

 

한국통신의 자회사였던 한국전화번호부는 1966년부터 전화번호부 책자를 발행하여 전화 가입자에게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전화번호부는 1년에 1천만 부 이상이 발행되었으며, 시간이 지나 CD-Rom으로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2005년판 발행 이후에 중단됐다고 합니다.

 

 

 

<인명편은 그야말로 전국민의 전화 번호가 기록된 주소록. 하나의 개정판 발행에 사용되는 종이만 1,500톤에 달했다고 한다. 이미지출처:코리아헤럴드>

 

바로 이 전화번호부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마케팅 활동은 바로 이 개별 사람들의 연락처 하나를 얻는 일(Leads)일지도 모릅니다. 법적인 문제를 배제했을 때지만, 그들의 주소지에 근거해 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카톡을 보내거나 최소한 그들이 전화번호로 가입된 SNS에 광고를 하는 등 직접적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도 있죠. 실제로 과거 대부분의 텔레마케팅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 불쏘시개로 쓰이거나 차력사의 괴력에 짖이겨 나간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역시나 법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들고 있는 전화번호는 그 가치가 미비합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4인 가족에게 적합한 SUV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봤자 냉담한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대답이나 돌아오면 다행이죠. 전화를 건 대상이 자녀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주의 운이 맞아들어가 마침 커다란 SUV 구매를 고려 중인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 대상이 “어떤 차가 제게 적합 할 지는 제가 알아보도록 하지요.” 또는 “제시하신 가격 할인율도 인상적이지만 다이렉트 시장을 통해 여러 셀러들의 견적을 앱으로 쉽게 알아볼께요.” 라고 하면 통화는 거기서 종료됩니다. 애써 연락한 통신 비용과 시간에 대한 세일즈 기회비용만 소모한 셈이죠.

 

아마도 그 전화번호의 주인공은 소위, 잠재 고객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잠재 고객의 모순


현재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많은 마케팅 행위는, 광고를 통해 잠재 고객을 찾고, 잠재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해(리타겟팅) 전환 고객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잠재 고객이라는 말은 사실 다소 어폐가 있습니다. 요즘 마케팅에서는 잠재 고객을 영어로 오디언스라고 많이 부르는데요. 네, 로열 오디언스(Loyal Audience)의 그 오디언스입니다. 오디언스와 고객이 어떻게 다른지는 ‘로열 오디언스의 가치’를 보시면 아실 수 있고요.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구글 애널리틱스 기준으로 잠재 고객은 해당 콘텐츠와 브랜드 플랫폼에 관심을 보이거나 방문을 한 적이 있는 대상들을 이릅니다. 상품을 광고했고 그 광고로 상품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유입되었으니 ‘잠재적으로’ 고객이 될 가능성이 큰 대상임에는 분명합니다. 실제로 리타겟팅 광고를 집행해 본 사람이라면 전환율이 일반 광고에 비해서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문제는 작금의 마케팅 논리에서는 전환, 즉 판매가 이루어지기까지 직접적인 상품 광고 보다 더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오디언스라는 뜻도 그래서 ‘관망’의 의미가 더 큽니다. 관심이 생기기 때문에 관중(Audience)이 되려는 것이겠지만 그걸 구매의 욕망으로 해석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이 오디언스를 육성(Nurturing)하는 일이 1차 오디언스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콘텐츠를 타겟에 맞게 정확하게 만들었다면, 디지털 광고 시스템들은 우리가 오디언스를 찾는 것을 수월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은 잠재 고객을, 여차하면 지갑을 열 대상이 아니라 적확하게 꽂히는 콘텐츠로 열렬히 나를 신뢰하고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야 합니다. 무대에 오르는 디바처럼 말이죠. 디바는 오디언스를 위해서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합니다. 야바위꾼처럼 지갑을 탐하진 않죠. ‘잠재된’ 고객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윱니다.

 

 

소비자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마케터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마케터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으며, 마케터들이 중시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마케팅 그루인 세스 고딘은 어떻게 해도 마케터는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할까요?

 

“마케터는 소비자를 이용하여 회사의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마케팅을 이용하여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도 했죠. 즉,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마케터는 소비자로부터 위와 같은 반응 밖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당신은 타겟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얼마나 많은 마케터들이 클라언트의 운영자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던 말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네, 알고 말고요). 저는 몇 번이나 대놓고 앉은 자리에서 클라이언트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골프채도, 이동통신상품도, 화장품도, 유아 교재도, 위스키도 팔아봤습니다만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때 마다 깨달았던 것 중에 하나는 해당 상품 군의 핵심 타겟 군에 포함되는 마케터라고 해도 꼭 마케팅을 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케터가 해당 상품의 핵심 타겟과 유사할 경우 더 무딘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 되는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그 상품과 시장을 일반화하기 때문입니다. 시장과 타겟에 대한 분석은 편협해지고, 하여 방법론도 고루해집니다. 알면서도 그 ‘시각’을 빠져 나오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소위 긍정오류 또는 부정오류에서 자유로운 운영진 역시 흔치 않습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철저하게 리서치하고 다양한 호기심과 시각으로 통찰력을 지닌 마케터들이 대부분 마케팅을 새로운 국면으로 가져갔습니다. 저 같은 경우, 골프 브랜드를 진행했음에도 환경론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골프장에서 직접 라운딩을 한 적이 없습니다. 클라이언트는 담당 마케터인 제가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을 처음에 용인하기 힘들어 했지만 결국 해당 에이전시에서 해당 브랜드는 제가 담당하는 동안 7년이라는 최장기 리테이너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아를 해본 적도 없고, 화장품을 쓰거나 생리대를 사용해 본 적도 없지만 그 상품들을 마케팅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요. 제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반대로 1년 차든 10년 차든 어떤 마케터의 말도 쉽게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그런 적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입소문이라는 달콤한 주문


“입소문이 많이 나도록 진행해주세요.”

 

한 가지 더, 마케터의 마음을 대변하자면 이겁니다. 이렇게 요청하는 고객사들이 부지기수죠. 다양한 유사 주문이 있습니다. “온라인 버즈가 일어날 수 있도록”, “WOM가 가장 중요하죠. WOM가 확대되는 것을 목표로…”.

 

입소문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입소문은 해당 제품 구매를 강렬하게 원하는 그룹이 형성된 이후의 단계라는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나겠금” 요청하는 클라이언트 주문을 들으면서, 저는 클라이언트가 팔고자 하는 상품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일단,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입소문이 나길 기대하는 건 요행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제대로 만들어졌고 적으나 이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애정 가득한 사람들이 이 상품에서 어떤 가치를 치켜세우는지 세심하게 찾아내야 합니다. 그게 첫번 째의 일입니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입소문을 촉진하는 방법론도 있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타이밍(마포대교의 안위를 잘 알고 있는 곽철용 신드롬 같은)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확산이 된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검증도 집요하게 따라온다는 뜻이죠. 한 두 번 재밌어서 될 수도 없고, 그것의 가치가 반짝하고 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함을 입증해야 합니다. 즉, 상품이든 콘텐츠든 그것이 잘 만들어져야 하고 가치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잘 만들어진 제품


‘잘 만들어진 제품’ 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품의 컨셉이 타겟에 정중앙 되는 멋진 것이어야겠죠(Concept). 컨셉이 타겟을 정확히 흔들려면 그들의 needs, 그리고 unmet needs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ACB. Accepted Consumer Belief), 그 상품이 타겟의 위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약속(Benefit),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제품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주는 근거와 팩트(RTB. Reason To Believe)가 있어야 마케팅에서 말하는 ‘잘 만들어진 제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적용해보자면,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과연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요.

 

백만원 짜리 제품은 그것이 백만원 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 구매할 것입니다. 간혹 뉴스에서 어떤 소비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의 시세를 인지시켜 준답시고 값 싼, 예컨대 짜장면 같은 제품과 가격을 비교해줍니다. 천오백 만원 짜리 시계를 사는 사람이 이보다 몇 백만원 더 싼 브랜드의 제품을 사면 짜장면을 몇 그릇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과연 그 시계를 들고 자신이 가지게 될 위상에 대한 가치를 얼마만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천 만원? 오천 만원? 분명한 건 천오백 만원 보다 더 높은 가치의 위상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구매를 했을 것입니다. 몇 끼의 밥을 굶고라도 교환(구매)하고 싶은 것이 바로 가치죠.

 

마케팅 측면에서 중요한 건, 그 시계가 천오백 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하는지 입니다.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가 착용하며(Benefit), 그들이 광고에서 보여주는 언제나 동경하던 삶에 대한 이미지(ACB)를 갖추었고, 그들의 손목에서 그 시계는 그들의 품격을 유지하는데 있어 너무나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녔고(Concept), 2세기 가깝도록 스위스 장인이 만들어 낸 정확도의 신뢰감, 하여 허영이 아닌 시계 본연으로서 역사와 정밀함에 대한 값어치(RTB)를 구매한다는 안위, 소비자의 머릿 속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단단하고도 유기적으로 얽혔겠지요.

 

 

<사실 1962년 첫번째 제임스 본드의 시계는 롤렉스였다. 1995년부터 제임스 본드는 오메가를 착용하기 시작. 20년이 넘어 이제는 제임스 본드 시계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 롤렉스가 올드하게 느껴지게 만든 건 덤. 출처:Omegawatches.com>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라면 쉽겠지만 또는 해당 브랜드가 이미 명확하게 소비자로 하여금 인지하는 브랜드라면 모르겠지만 새로운 브랜드가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는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워낙에 다들 브랜딩을 잘해서 훌륭한 컨셉과 디자인으로 나온 제품들은 시장에 많지요(Concept). 디지털 플랫폼과 툴을 통해 오디언스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습니다(ACB).

 

취약한 쪽은 RTB일 때가 많은데요, 기존 브랜드처럼 제품 R&D를 치밀하게 준비해오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Concept에 비해 RTB는 눈에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 신규 브랜드는 이를 간과하기 쉽지요.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할 때 취약한 RTB는 독이 되곤 합니다. 구매 버튼을 누르기까지 소비자들은 이 새 제품에 대한 근거와 팩트 검증을 너무나 쉽게, 또 가차없이 감행할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RTB가 미약하면 제품을 통한 위상 고조의 다리가 무너지고 맙니다(Benefit).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해줄 이런 컨셉의 제품이 잘 팔릴 수 밖에 없다’는 판매자의 환상은 그래서 위험하기 그지 없는 것이죠. ‘당신이 타겟이 아닌’ 이유와 상동합니다.

 

 

<무지호텔 : 무지 호텔이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무지가 호텔을 만들면 어떨 것이라는 상상을 쉽사리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 출처:hotel.muji.com>

 

 

마케팅 그 전의 일, 그리고 마케팅의 일

“마케터는 마케팅을 이용하여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을 약속하지 못하는 제품에 기꺼이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희박해 질 것입니다. 당연히 문제 해결은 말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제품으로 증명해내야 합니다.

 

린스타트업에서는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만, 최소기능제품은 최소유효시장(SVM. Smallest Viable Market)에서 적용 가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품은 그 최소유효시장에서 ‘최소라도’ 유효해야겠지요. 십만 명에게 팔든, 백 명에게 팔든 정확한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백 명에게 팔 수 없으면 십 만명에게는 못 팝니다.

 

 


 

< Jussi Pasanen’s MVP 피라미드 모델. ‘작은’ 제품이 아니라 ‘좁은’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 MVP의 핵심. 출처:ux.shopify.com >

 

마케팅은 점점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뜻하면서 반대로 아무런 뜻도 아니게 됩니다. 더이상 제품개발과 마케팅을 서로 다른 일로 보는 기업은 없겠지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었다면, 이제 오디언스를 찾는 겁니다. ‘잠재된’ 고객이 아니라, 가치에 대해서 주의 깊게 바라보는 오디언스(관중)를 말이죠. 마케터라면, 더이상 잠재 고객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김해경

CMO

hara@stone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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