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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팀 쿡 CEO가 말하고 싶은 ‘서비스’란?

블로터

2019.03.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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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5일, 애플이 봄 이벤트를 열었다. 애플의 봄 이벤트는 어느새 거의 매년 이뤄지는 정기 이벤트가 됐지만 그 내용은 매년 다른 카테고리로 채워지곤 했다. 애플워치, 아이폰SE, 6세대 아이패드가 최근 봄 이벤트를 통해 애플이 꺼내 놓은 제품들이다.

 

이번에도 연초부터 애플이 여러 기기들로 봄 이벤트를 채울 것이라는 소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애플은 보란듯이 소문으로 돌던 제품들을 예고했던 키노트 일정 전인 지난 18일부터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그날은 제품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 25일 키노트에서는 손에 쥘 수 있는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팀 쿡 CEO는 무대에 올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서비스의 통합’을 이야기했다. 팀 쿡 CEO는 ‘서비스는 무엇일까?’라는 다소 어려운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이날 발표의 무게는 시작부터 확실히 서비스에 실려 있었다.

 

 


 

“아이폰은 강력한 하드웨어고 iOS와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클라우드를 비롯한 서비스들로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기억과 경험이 공유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서비스는 애플에게 중요하고, 이를 통합하는 것은 우리가 잘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애플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지만 그 하드웨어가 잘 팔리도록 하는 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초기 매킨토시 컴퓨터가 잘 팔린 것은 그 시스템OS 위에서 성장한 음악, 출판, 영상 등의 소프트웨어의 힘이었고, 아이팟이 기존 MP3와 다른 기기로 머릿속에 기억된 것도 아이튠즈라는 음악 유통 플랫폼 때문이다. 아이폰이 세상을 바꾸어 놓은 것도 터치스크린이나 잘 만든 디자인이 아니라 앱스토어와 그 안의 수많은 앱을 통해 기기의 역할이 무한히 확장되는 경험 때문이다.


애플의 기기가 다른 가치를 갖는 것은 디자인이나 새로운 기술 뿐 아니라 그 사용 환경까지 아우르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얄미울 수도 있지만 아이튠즈 라이브러리의 음악이나 앱스토어의 게임과 앱은 기기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된다. 물론 이는 아이폰 이후의 구글과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와 윈도우를 비롯한 모든 운영체제들의 숙제가 됐고, 당연한 방향성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애플은 이번 키노트를 통해 “우리는 하드웨어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는 점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운영체제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64비트 프로세서, 곡면 모서리, 홈 버튼 등 하드웨어를 손보는 것이 애플이었고, 최근에도 앱스토어에 앱을 올리는 개발사들이 증강현실과 머신러닝, 메탈 등 새로운 기술과 프레임워크를 쓰도록 하고 있다.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원하는 방향성을 생태계에 뿌리고, 그 결과물을 받아내는 ‘하드웨어 플랫폼’이 바로 애플의 하드웨어다.


애플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키노트를 통해 애플이 쏟아놓은 것들을 단순하게 보면 매거진, 신용카드, 동영상 콘텐츠로 구분할 수 있다. 콘텐츠와 서비스다. “이제 잡지는 아이폰으로 보고, TV는 애플TV로, 신용카드도 애플을 쓰라”고 이야기했을까? 아니다. 애플은 단순히 기존에 있던 것을 모바일 기기로 올리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미묘하지만 이번 키노트의 핵심은 ‘리거시(Legacy)’를 갈아엎는 데에 있다.


리거시는 우리가 이제까지 익숙하게 살아오던 환경을 말한다. 애플은 이 리거시를 하루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 놓는 것을 잘 한다. 스마트폰에서 3.5mm 이어폰 잭을 없앴고, 하루 아침에 기기에서 USB 단자 모양을 바꾼다. 이제부터 그건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시장은 대개 초반에 반발하고, 경쟁자들은 이를 놀리지만 애플의 선택은 사실 업계가 가야 할 방향성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애플은 뚜렷한 방향을 두고 확실히 새로운 환경으로 넘어간다.


이번 키노트는 콘텐츠의 리거시를 이야기한다. 뉴스와 매거진 콘텐츠의 형태와 유통이 수 십년 동안 머무르는 것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했고 이제는 일상이 된 신용카드도 전통적인 16자리 번호와 더 많은 돈을 쓰게 유도하고 그 안에서 수익을 늘리는 전통적인 금융을 벗어나고자 했다. 우리는 여전히 잡지를 읽고 신용카드를 쓰지만 그 방법과 경험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답은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걸쳐 있는 수많은 리거시들은 늘 어려운 문제다.


 

 


애플은 ‘애플뉴스 플러스’로 직접 매거진의 콘텐츠를 디지털 플랫폼에 맞춰 디자인하고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공개한 셈이다. 이 시도는 아이패드가 처음 등장했던 10년 전에 활발하게 이뤄졌다. 태블릿은 잡지 시장이 디지털로 옮겨가는 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콘텐츠를 만들기 어려웠고, 유통도 쉽지 않았다. 이는 곧 ‘돈이 많이 든다’는 말로 통한다. 결국 매거진과 태블릿은 이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시도 사이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애플이 애플뉴스 플러스를 내놓고 300여개 매거진을 끌어안은 것은 결국 그 답을 찾아주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래 전 iOS의 뉴스 스탠드가 그저 콘텐츠를 보여주는 역할이었다면 애플뉴스 플러스는 콘텐츠를 편집하고 올리는 플랫폼이다. 마치 앱스토어처럼 기본 프레임워크와 유통, 결제까지 다 도맡아 해주는 것이다. 애플이 지난 10여년 동안 매거진 시장을 바라보다가 내놓은 하나의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카드도 마찬가지다. 애플페이를 통해 애플은 결제 시장에 대해 많은 경험을 얻었다.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리거시를 둔 이해 관계에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을 게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간편 결제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팀 쿡 CEO는 골드만삭스를 애플카드의 파트너로 소개하면서 “이제까지 신용카드 서비스를 안 해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신용카드의 불편한 부분들을 아예 처음부터 새로 그려냈다.


 


 

이번 이벤트의 주인공 격인 영상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TV와 극장으로 대변되던 영상 콘텐츠는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로 넘어온 지 오래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할 수 있다. 애플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영상 서비스를 상상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은 넷플릭스와 아마존, 유튜브와 비슷하지만 그 지향점에는 차이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은 무대에 올라 새로운 이야기 속에 담고 싶은 생각들을 아주 신명나게 풀어 놓았다. 애플은 이들을 위해 꽤 긴 시간을 내어 주었다. 새로운 애플TV는 콘텐츠를 모으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들이 모이는 플랫폼으로 정비됐고, 애플TV 플러스는 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애플 스스로의 한 채널로서의 콘셉트인 셈이다.


팀 쿡 CEO는 키노트를 마무리하며 “엔터테인먼트부터 지식까지 정보를 공유하고 더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언급했다. 애플에게 콘텐츠와 플랫폼, 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아이폰 등장 이후 계속해서 변화, 발전하고 있다. 적지 않은 통신사들이 아이폰에 대해 반발했지만 그 방향성이 맞았고, 변화는 당연하게 찾아왔다. 미디어와 콘텐츠 환경도 변하고 있다. 당장 애플의 답이 옳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이 꺼내놓은 것들은 그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풀어내는 하나의 방향이다. 세상이 또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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