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아의 매거진

기획을 잘하는 7가지 방법 :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를 읽고

한원아

2020.08.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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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 있다. 광고인 서재근의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예상컨대 올해 가장 좋았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획자라면 또는 기획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이 책을 올해 첫 책으로 읽게 되어 영광이다.

 

이 책은 조금 독특하지만 재미있는 형태의 책이다. 한 광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인가 하면 이렇다.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종합광고대행사의 대리가 전략기획팀, 이른바 타스케팀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담아냈으며 중간중간에 7가지의 기획에 관한 인사이트가 작가의 말로 서술되어 있다.

 

기획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이 책에서 소개한 7가지를 하나씩 뜯어보고 즐기길 바란다. 렛츠기릿.

 

 

1. 전문가의 생각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또한 대가들이 밟아온 경험과 이론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할 수 있고, 우리는 그런 과정을 대학교 전공 수업으로 보고 듣고 배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회에, 즉 회사에 입사하여 실무를 하게 된다. 첫 회사에 발을 딛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학교 때 배웠던 대가들의 이론을 통해 실무에 적용해본다. 실패한다.

 

나는 필립 코틀러를 믿지 않네, 나는 오직 소비자만을 믿지."

책 내용중 종합광고대행사 라퓨타커뮤니케이션의 사장이 한 말이다. 필립 코틀러가 시키는 대로 소비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움직이는 걸 필립 코틀러가 따라간 것이고 그것을 이론화한 걸 우리가 배우고 있을 뿐이다.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맹신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다. 거기서 나아가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잘 어우러져 새로운 생각으로 빚어지는 생각의 삼투압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2. 고정관념을 좋아하다


 

아 그거 원래 그런 거야."

라고 말해 본 적 있는 사람 손. 세상에는 원래 그런 게 원래 안 그랬던 거에 비해 얼마나 될까. 하루에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오고 가는 중에 내가 하는 말들 속에서 고정관념은 몇 개나 될까. 이 책을 읽고 무의식 속에 내가 하는 말들을 하나하나 붙잡아봤더니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상당히 많았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별로(아니 거의 상당수) 없다.

 

 

이런 거 말고..

 

영어는 왜 존댓말이 없을까?"

타스케 팀장이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여러분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1분 드릴 테니 여기서 잠시 멈춰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1분 끝. 타스케 팀장은 영어에 존댓말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말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덧붙인다.

 

사실상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고정관념이 '있냐', '없냐'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는 고정관념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정관념은 내 삶의 축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그 고정관념을 붙잡아야 한다. 고정관념이 고정관념임을 인지하고 씹고, 뜯고, 찾아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고정관념을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과정을 '역발상'이라 부른다.

 

 

3. 입체적으로 생각하다

종이컵을 한번 떠올려 보자. 대부분 아래와 같은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안녕하세요. 종이컵입니다만...

 

당연히 우리는 종이컵을 떠올렸을 때, 이미지와 같은 사다리꼴을 세워놓은 모양을 생각할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사고를 단면적 사고라 부른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의 영역이다.

단면적 사고를 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편할지 모르나 그 단면적 사고를 하나의 전체적 정보라 인식하게 되며 사고는 닫히게 되고 만다. 종이컵은 어떤 시야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다리꼴을 뒤집어 놓은 모양일 수도 있으며, 원형일 수도 있으며, 점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종이컵을 생각하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잣대로 정의하고 단정 지으면 새로운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해버리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4.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지구가 돌기 전에 내가 돌겠군..(물론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천동설이 상식이었던 시대에 지동설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근데, 지금은? 지동설이 상식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의 기원을 쫓아가 보면 태초에 그것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상한 소리는 수많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남들이 하지 못한 생각이며 남들이 머무른 생각에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잡스는 아이폰을 만들었고,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근마켓은 지역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다...ㅎㅎ)

 

주변에 그런 친구 한 명쯤 있을 것이다. 천재 아니면 바보 같은 그런 친구. 이상한 소리를 밥 먹듯 하는 그런 친구 말이다. (어쩌면 그게 나는 아닌지 자문해보라)

그 친구의 말을 한번 유심히 곱씹어 보라. 어쩌면 거기서 재밌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보장은 못하겠다)

 

 

5. 프로세스에 연연하지 않는다


 

고도로 체계화된 조직일수록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 즉 업무 프로세스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p.262

프로세스는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근거가 명확하며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목표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시작하는 체계적인 단계 하나하나를 규정지으며, 그 절차를 밟아서 도출된 결괏값을 정답이라고 믿는 우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프로세스를 위한 프로세스가 되어버리는 셈. (이게 뭔 소릴까 하실 수 있겠지만 조금만 참고 읽어보시길 바란다)

 

 

금메달은 내꺼..☆

 

책에서 든 예로 유명한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의 이야기가 있다. 포스베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뒤집어 뛰기 이전의 높이뛰기 프로세스는 앞으로 뛰거나 옆으로 뛰었다. 그것이 프로세스였고 관습이었다. 포스베리도 물론 초기에는 남들과 똑같이 앞으로 뛰거나 옆으로 뛰었다. 그러다 자신의 한계점을 느끼게 되었고, 프로세스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으며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높이뛰기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되었고 그 이름은 '포스베리 플롭'이 불리게 된다.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곧 진리라 믿을 수 있다. 프로세스는 우리에게 효율성과 일관성을 줄 수 있지만 너무 연연하면 진짜 문제를 놓칠 수 있다.

 

 

6. 진짜 문제를 생각한다

 

 

난 이 이미지를 참 좋아한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p. 308

 

보통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사람들은 사실에 집중하고 그 사실 자체를 문제라 인식하여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사실은 엘리베이터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이고, 결과로는 사람들의 불평, 불만이 급증한다고 했을 때 사실, 즉 엘리베이터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을 문제로 삼으면 해결책으로는 엘리베이터를 개선해 속도를 빠르게 만들자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해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사실은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고 결과로 사람들의 불평, 불만이 급증하는 것인데 그 불평과 불만의 원인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의 지루함이라고 문제를 규정한다면? 엘리베이터에 또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공간에 거울을 하나 설치하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용모나 옷매무새를 신경 쓰면서 그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비용은 1000만 원이 들 수도 있고, 단돈 1만 원이 들 수도 있다. 또한 1만 원짜리 해결책이 1000만 원짜리 해결책을 무참히 무너뜨릴 정도에 큰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사실은 사실일 뿐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 문제를 생각하자.

 

 

7. 숫자를 믿지 않는다


 

Not everything that counts can be counted,

and not everything that can be counted counts.

소중한 모든 것을 숫자로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숫자로 셀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도 아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숫자는 확실하다. '1월보다 2월에 서비스가 개선됐다'라는 문장보다 '1월보다 2월에 서비스가 15% 개선됐다'라는 문장이 더 객관성 있어 보이고 신빙성 있어 보인다. 하지만 숫자를 너무 추종하면 그 이면에 있는 진짜 문제를 놓칠 확률이 높다.

 

 

1인당 소비 전력량(kWh).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p. 356

 

책에서 소개한 전력거래소 국가별 전력 산업 동향 보고서(2009-2010)의 1인당 소비 전력량(kWh)이다.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와, 우리나라(대한민국) 1인당 소비 전력량이 어마어마하네. 미국 다음이잖아?"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 이미지를 보자.

 

 

 

 

전력거래소 국가별 전력 산업 동향 보고서.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p. 356

 

이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앞서 소개한 1인당 소비 전력량(kWh)은 '주거뿐만 아니라 산업용 전력이 포함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게다. 앞에 나온 숫자를 보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전력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국민들의 국민성을 지적하며 '대국민 전기 아끼기'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댈 게 뻔하다. 우리나라의 주거용 전력 소비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사용 전력량의 20%도 안되는데 말이다. (최근 연도 데이터도 별반 다를바 없다)

 

숫자를 통해 우리는 분리된 사실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정할 수 있을 뿐 '인과관계'까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p.358

숫자는 누군가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기 쉽고, 왜곡되기 쉽다. 그렇다고 숫자를 배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숫자의 성질을 인지하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

 

이상 기획 잘하는 7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는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에 약간 고명만 얹은 것이니,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꼭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정직한 시선(5.0/5.0) : 광고인 작가 + 광고업계를 바탕으로 한 소설 + 7가지 작가의 인사이트. 더 이상 말해 뭐해.

삐딱한 시선(4.0/5.0) : 아무리 삐딱하게 쳐다봐도 당최 뵈질 않는다. 음, 책이 한 손에 딱 안들어온다는 점..? (책 사이즈가 정사각형이다)

 

다 읽은 날 : 202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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